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식물은 어디에 모여 살까? 답이 너무나 뻔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각자 마음속으로 한번 답해보시라. 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산에 모여 산다.”, 또 어떤 사람은 “빛이 잘 드는 곳에 모여 산다.”라고 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방에 다 식물이 살지 않나”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 밖에도 다양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환경 요소를 생각하는 사람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환경 요소는, 빛, 온도, 물, 산소, 이산화탄소 그리고 토양에 있는 각종 무기양분과 유기양분 등이다. 이것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물이 최우선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식물에서 물의 역할을 좀 더 들여다보면 동의하게 될 것이다.

먼저 물은 식물체를 구성하는 물질 중 최소 85% 이상을 차지한다. 사람 몸 중에서 70%가 물인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비율이다. 또, 식물체가 생장하려면 식물 각 부위로 물질이 이동하여야 하는데, 이때 모든 물질은 물에 녹아 또는 물에 섞여 물이 움직이는 곳으로 옮겨간다. 식물이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광합성 작용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때도 물은 매우 중요한데, 광합성의 재료가 바로 물과 이산화탄소이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물 생산이 부족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 식물이나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몸에 저장된 양분을 분해하여야만 하는데, 이때도 산소와 함께 물을 이용해서 분해한다. 집을 따뜻하게 하거나 음식을 요리할 때, 연료를 태우는 것도 분해 과정이다. 이때는 산소만 이용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 밖에도 물은 식물체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준다든지, 물 분자가 공기 중으로 빠져가는 증산 작용을 시작으로 물질을 이동시키는 힘을 발생시킨다든지 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식물에서 이토록 중요한 물은 사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모든 생물에게서 비슷한 역할을 하며 매우 중요하다.

물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물 분자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물은 산소 원자 한 개에 수소 원자 두 개가 붙어있는 구조인데, 산소가 한쪽 편에 서고 그 반대편에 수소 원자들이 몰려있는 형태가 된다. 이때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들 사이에서 전자를 당기는 힘의 불균형 때문에 산소는 음전하(-)를 띠고 수소는 양전하(+)를 띠게 된다. 이로써 물 분자는 양쪽 끝의 전기적 성질이 다른 극성을 나타내게 되고, 물 분자는 다른 물 분자의 전기적 성질이 다른 쪽에 가서 잘 붙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을 접시에 떨어뜨리면 동그랗게 뭉치는 이유가 이렇게 물 분자들 사이에 서로 잘 붙는 특성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 물 근처에만 식물과 사람이 모여 산다. 사진 전정일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 물 근처에만 식물과 사람이 모여 산다. 사진 전정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식물은 어디에 모여 살까? 이제 “물이 있는 곳에 모여 산다.”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식물과 같이 사람도 물이 있는 곳에 모여 산다. 동물들도 물이 있는 곳으로 모인다. 반대로 물이 없는 곳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올여름 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고 있다. 식물 조사를 위해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로 출장을 다녀왔다. 매우 건조한 ‘스텝(steppe) 기후대’ 지역이다.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극명하게 식물이나 사람 모두 물이 있는 곳 일부에 모여 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맞이한 정반대의 상황은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전국이 물 폭탄을 맞아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봄철의 가뭄은 언제 있었냐는 듯 물이 너무 넘쳐나서 문제이다. 정치권에서 홍수 문제의 책임을 2018년부터 2020년에 걸쳐 이전 정부에서 진행된 환경부로의 ‘물관리 일원화’ 정책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있음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정부 어느 부처로의 일원화가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이 원활하게 되고 있는가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부로 일원화되었다고 해서, 물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와 산림청의 역할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환경부를 중심으로 국토교통부와 산림청이 협력하여 국가 물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물과 가까운 곳에 살 수밖에 없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정부 전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8월 3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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