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기차역은 한 도시의 출입구이며 상징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차역은 국내외 여행의 시작 및 종착점이다. 단순히 차를 타고 내리는 기능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한 도시의 품위가 드러나는 곳으로 방문객이 도시의 이미지를 가늠하는 곳이 된다. 아름다운 기차역과 주변 가로, 경관 및 기능적으로 시가지와 잘 어우러진 기차역,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가 풍부한 분위기 있는 기차역과 도시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이용 일반화에 따라 잠시 가려졌던 철도의 매력은 근년에 자동차나 항공교통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부각되며 다시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철도는 이제 속도나 도착시간에서 항공기와 경쟁하고 있으며 안정적 승차감과 정시성으로 편리함에서 승용차나 버스 등에 앞서고 있다. 나아가 환경 친화적이어서 탄소제로의 요구에도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 오랫동안 서울의 입구로서 서울을 대표하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스위스의 루체른(Luzern) 역사(1971년 소실)를 모델로 디자인되었다(안창모, '문화역서울284', 문화재청 소식지 '문화재사랑' 2017.1.3.).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적, 구 서울역사(2015 촬영).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 오랫동안 서울의 입구로서 서울을 대표하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 스위스의 루체른(Luzern) 역사(1971년 소실)를 모델로 디자인되었다(안창모, '문화역서울284', 문화재청 소식지 '문화재사랑' 2017.1.3.). 사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적, 구 서울역사(2015 촬영).

국가와 도시가 밀접하게 연결된 유럽에서는 최근 비행시간 2시간 이내의 항공기 노선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프랑스는 금년 5월23일부터 기차로 2시간 30분 이내인 도시 간 국내선에 적용). 항공기 이용이 시간적으로 철도보다 유리하지 않고 이착륙 때 엄청난 항공유 소비로 환경에도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런던 세인트판크라스(St. Pancras International)역. 유로스타(런던∼파리, 2시간 16분) 출발역. 19세기 고딕양식 역사 뒤편에 개보수를 통하여 설치된 현대식 기차역. 사진: 김기호, 2017
런던 세인트판크라스(St. Pancras International)역. 유로스타(런던∼파리, 2시간 16분) 출발역. 19세기 고딕양식 역사 뒤편에 개보수를 통하여 설치된 현대식 기차역. 사진: 김기호, 2017

이런 현재의 흐름에서 볼 때 도시의 철도역과 역 주변을 좀 더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한 도시(수도의 경우 국가)의 품위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수도 서울역과 주변은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활용하여 좀 더 매력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역지구 가로경관. 좌로부터 KTX 서울역(2004 개관), 롯데 아울렛, 상가건물,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 1925 건축). 지난 100여 년에 걸친 철도역 건축의 변화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구글어스 캡처.
서울역지구 가로경관. 좌로부터 KTX 서울역(2004 개관), 롯데 아울렛, 상가건물,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 1925 건축). 지난 100여 년에 걸친 철도역 건축의 변화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구글어스 캡처.

우선 아름다운 르네상스 건축물인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에 주목해 보자. 시내에서 숭례문을 지나 앞쪽으로 내려다보면 자연스레 청록색 돔(둥근 지붕)이 독특한 건축물이 시야의 가운데 들어온다. 내후년이면 건립 100년이 되는 이 건축물(1925년 경성역으로 준공, 1947년 서울역으로 변경, 건축가;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로 추정)은 아무리 새 역사(驛舍, 2004년 KTX 도입과 함께 개관)가 지어졌어도 역시 서울역의 아이콘이다. 파리(오르세이 미술관(Musee d’Orsay), 1986년 개관, 구 오르세이역) 등의 사례를 차용하여 복합문화시설로 개관했으나 현재는 평범한 대관(貸館)용 전시관이 되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게 되었다. 오히려 철도나 역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여 사람들의 동선과 밀접히 연결하여 아이콘에 걸맞은 역할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품위 있는 대합실 등으로 이용하면서 철도교통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역 앞의 긴 광장. 쾌적한 보행공간이나 외부 휴게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강대로도 적절한 횡단보도를 설치해 역과 시가지를 편하고 밀접하게 연결하면 좋을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18
서울역 앞의 긴 광장. 쾌적한 보행공간이나 외부 휴게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강대로도 적절한 횡단보도를 설치해 역과 시가지를 편하고 밀접하게 연결하면 좋을 것이다. 사진: 김기호, 2018

두 번째는 광장의 활력을 되살리는 것이다. 신구(新舊) 서울역사 앞에는 한강대로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길이 300m, 폭 70m) 광장이 있으나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쾌적함 대신 피해 가야 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구 역사 사이 외부 공간은 신역사 1층 레벨에서 남북으로 길게 난 통로로 쓰이는 테라스 형태의 공간과 그 아래 광장 레벨로 2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신구 역사가 건물 내부를 통하는 연결을 잃어버린 현재 상태에서 테라스 형태의 레벨은 신구 역사를 긴밀히 연결하며 시가지를 조망하는 장소로 조성될 수 있다.

각 역사의 앞이나 옆 마당은 역사나 문화시설 및 상업시설의 내부 활동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면 다양하고 풍부한 휴게 공간으로 사용되며 광장을 좀 더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변 택시나 버스정류장 등과는 녹지나 수목 등으로 경계를 분명히 하며 쾌적함을 보완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보행을 중심으로 서울역 지구 내 동선을 정리하고 이를 주변 시가지 및 대중교통과 안전하고 편리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방문객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하며 서울역과 광장 등을 잘 인지하여 각 공간을 활발히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서울스퀘어빌딩(구 대우빌딩) 쪽에서 넓은 한강대로를 건너 버스환승지대를 지나 서울역으로 올 수 있으나 매우 복잡하고 안전하지 않다. 여기야말로 지하에 버스 환승 등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지상은 버스 환승시설로 좁아진 광장과 녹지 등을 회복하여 쾌적한 외부공간을 제공해야 하는 곳이다. 차도폭도 줄여 역과 시가지가 밀접하게 연결되면 더욱 편리할 것이다. 지하는 차량 등으로 지상은 보행과 녹지 중심으로 꾸려 편리함과 쾌적성을 높일 수 있다.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좌측 고딕식 벽돌 건물, 국제철도 연결)역과 킹스크로스(Kings Cross, 우측 노란 타일 건물로 좌측에 반원형 대합실 증축, 국내선 연결)역.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철도역 건축물을 보존하고 증축해 역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주변지역(두 역 사이 및 후면 부분) 재생 및 재개발로 편리하고 활력있는 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 구글어스 캡처.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좌측 고딕식 벽돌 건물, 국제철도 연결)역과 킹스크로스(Kings Cross, 우측 노란 타일 건물로 좌측에 반원형 대합실 증축, 국내선 연결)역.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철도역 건축물을 보존하고 증축해 역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주변지역(두 역 사이 및 후면 부분) 재생 및 재개발로 편리하고 활력있는 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 구글어스 캡처.

마지막으로 서울역지구를 아름답고 편리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에 대한 전반적 마스터 플랜 마련이 필수다. 지금과 같은 대증요법적 개별 사업 위주의 부분적 개선은 한계가 있다. 서울역지구와 주변을 포함하여 합리적인 건축물 및 기능의 배치, 교통(대중교통 및 보행) 접근성 향상, 광장 등 외부공간의 성격 구분 및 수준 높은 디자인 등과 경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큰 틀의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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