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뷔페(Buffet)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식단(食單)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1960년대 말경까지는 중부 유럽에서도 아주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뷔페가 식당가에 본격 소개되기 전에는 ‘바이킹거(Vaikinger)’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바이킹거는 그 호칭에서 알 수 있듯 북유럽, 즉 노르웨이와 스웨덴이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유래했습니다.

바이킹거는 당시에도 일정 금액을 지불한 손님이 다양하고 화려하게 차려진 음식을 무제한적으로 접시에 담아 마음껏 즐기는 새로운 음식 문화로 등장했습니다. 다양한 음식을 좋아하는 젊은 층에서 인기가 폭발할 만했지요.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독일 등의 중남부 유럽인들이 스톡홀름(Stockholm)과 헬싱키(Helsinki)를 오가는 연락선을 타면, 으레 바이킹거 식당에서 온갖 음식물을 자기 접시에 욕심껏 챙겨놓고는 뒷감당을 하지 못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곤 한 것입니다.

독일 언론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는 물론 1960년대 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바이킹거가 1960년대 말경에는 독일 식당가에 출현했고, 젊은 층 사이에서 ‘새로운 식문화’로 빠르게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뷔페라는 우아한 프랑스어로 변신하여, 마침내 고급 호텔 식당 메뉴로 정착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호텔에서 뷔페가 대세입니다. 인건비를 생각하면, 뷔페의 장점이 확연히 보입니다. 뷔페는 명칭만 달라졌지 사실상 바이킹거였습니다. 

오슬로의 바이킹 선박박물관. 자료: Google 캡처
오슬로의 바이킹 선박박물관. 자료: Google 캡처

필자는 오래전인 1963년 여름방학 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3국을 걸어서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오슬로(Oslo)에서 그 유명한 ‘바이킹 선박박물관(Viking Ship Museum)’을 방문해 옛 목제 바이킹 선박을 본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명합니다. ‘바이킹 선박’하면 으레 거센 풍랑 속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근육질 선원을 떠올립니다. 더러는 해적(海賊, Pirate)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이킹 선박의 구조를 보면, 많은 선원이 식사 시간을 따로 정해놓고 ‘점잖게’ 밥을 먹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음식을 선내 일정한 장소에 수북이 쌓아놓으면, 선원들이 각자 알아서 적당히 가져가 식사를 해결하는 게 최선이었겠지요. 이것이 바로 ‘바이킹거 식사’의 뿌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도보 여행 얘기로 돌아가서, 북극에 가까운 지역으로 갈수록 날씨가 심하게 요동을 쳤습니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가 하면, 곧 천둥과 함께 세찬 비바람이 몰려오곤 했습니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였습니다. 그런 악천후 속에서 필자는 민간인 신분으로 갈 수 있는 구소련과 노르웨이를 가르는 국경 지대의 최북단인 함메르페스트(Hammerfest)까지 갔습니다. ‘북위 70도’라는 팻말과 함께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광풍(狂風) 같은 바람이었습니다. 북극 지방에는 그야말로 바람, 바람, 바람뿐인가 싶었습니다.

문득 생각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근접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0~1506)가 탄 배가 대서양 한복판인 적도 부근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며칠을 멈춰 섰다는 일화가 있는데, 콜럼버스는 북극과 적도 지역의 기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걸 몸소 체험한 셈입니다.

기후 얘기를 하자니, 문득 수시로 변하는 구름 덮인 하늘을 집요하게 화폭에 남긴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가 생각납니다. 독일 추상표현주의(Abstrakt Expressionismus)를 이끈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작품 활동을 한 지역은 독일 최북단에 있는 슐레스비히-홀스타인(Schleswig-Holstein)이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에밀 놀데는 평생 구름과 구름 사이로 뻗어 나가듯 빛나는 햇빛과 달빛 그리고 거센 바람에 춤추듯 역동하는 구름과 출렁거리는 파도를 수없이 화폭에 옮겼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변화무쌍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구름은 다름 아닌 ‘바람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밀 놀데, '풍경'(Landschaft, Nordfriesland) 1920. 종이에 수채화. 34 x 45cm, 소장처:Seebüll 놀데재단. 사진: Google 캡처
에밀 놀데, '풍경'(Landschaft, Nordfriesland) 1920. 종이에 수채화. 34 x 45cm, 소장처:Seebüll 놀데재단. 사진: Google 캡처

필자는 바이킹거, 함메르페스트, 변덕스러운 날씨, 에밀 놀데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세찬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리적·지형적·자연환경적 조건과는 차이가 있어도 많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한반도입니다.

북극 지역에 비하면, 한반도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파라다이스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가 대체 에너지의 일환으로 풍력발전에 매달리는 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같은 북반부에 속하는 북독일 또는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나라에 비하면, ‘바람의 세기’가 약해도 너무 약한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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