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27일 “올해 7월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달이 될 것”이란 관측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이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 온난화 시대(The era of global warming)는 끝났다. 지구가 끓는 시대(The era of global boiling)가 시작됐다.” 한편 외신들은 극한 폭염, 홍수, 폭풍 등 기상 이변이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됐다고 보도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인류는 파괴의 길에 들어섰고 그 증거는 도처에 있다”며 북미·아시아·아프리카·유럽이 ‘잔인한 여름’을 맞게 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많은 국가와 기업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10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협”이라며 연방 정부 차원에서 미국 전 지역에 폭염 경보 조치를 발령하고 “근로자들을 위협적인 고온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발령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는 또 가뭄 피해가 극심한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워싱턴 주의 저수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1억 5200만 달러 상당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매년 미국에서 폭염으로 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기후 위기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조차도 폭염이 미국인들에 미치는 영향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에 고온 현상은 한층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말하는 ‘기후 위기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2017년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포함되는데, 기후변화는 내년 미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고온 현상이 초래한 미국의 노동력 손실이 2020년에 1000억 달러에 달했는데 2050년에는 5배 증가한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보고서는 기온이 화씨 100도(섭씨 37.78도)를 초과하면 생산성이 70퍼센트 줄어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엄격한 노동 윤리를 고수해온 ‘근면의 나라’ 독일에서도 올여름 섭씨 30도 중반 무더위가 이어지자 스페인과 남유럽 일부 국가의 전통 문화인 시에스타(Siesta)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독일 연방공중보건의협회장인 요하네스 니센은 최근 독일 매체 RND 인터뷰에서 “뜨거운 열기에 일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남부 국가의 업무 관행처럼 여름철에는 일찍 일어나 아침에 생산적으로 일하고 정오에 낮잠을 자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나다에서는 전대미문 규모의 산불이 지난 5월 시작되어 뉴욕 등 미국 11개 주의 대기질을 바꿀 정도로 그 피해가 극심했다. 캐나다 산불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꼽힌다. 평소에도 여름에 자주 산불이 발생하는 서부 지역뿐 아니라 퀘벡주와 노바스코샤주 등 동부에서도 이례적으로 대규모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산불로 인한 이재민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캐나다산불센터(CIFFC)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캐나다 곳곳에서 1000건 이상의 산불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60건은 ‘통제 불능 상태’다. 현재까지 최소 1230만 헥타르(12만3000㎢) 국토가 소실됐는데, 이는 우리나라(약 10만㎢) 면적보다도 큰 규모다.

미국·EU 등 국제사회가 캐나다 산불 진화 지원에 나섰고 한국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동참했다. 특수부대 출신 등으로 구성된 최정예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대원들(총 151명)은 지난달 2일 현지에 도착해 한 달간 꼬박 화마와 싸웠다.이들이 지난 1일 임무를 마치고 떠날 때에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귀국 비행기에 올라 직접 감사 인사를 했다.

고속 산업화한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지난 2일 제주 산지를 제외한 전국에 폭염 특보가 발령됐다. 전국 폭염 특보는 2018년 7월 이후 5년 만으로,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온열질환 감시를 시작한 5월 20일 이후 온열질환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수가 20명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증가했다. 한편 새만금에서 개최 중인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서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면서 지난 주말 영국·미국 등 참가국이 야영지에서 철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기후변화는 21세기 외교의 주요 의제다. 지난달 17일 중국을 방문해 미중간 소통 채널을 재가동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가 열흘 만인 27일 중국 측 카운터파트인 셰전화(解振華) 기후변화 사무 특사와 화상으로 다시 마주했다. 중국 생태환경부는 "(두 사람이) 중미 간 기후변화 대화·교류 강화와 글로벌 기후 다자 프로세스 추진 협력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양측은 긴밀한 소통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한편 케리 방중 기간 중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CNN에 출연해 중국은 ‘개도국이라는 주장 뒤에 숨지 말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보다 과감한 행동을 취하라고 촉구했다. 세계 2대 경제 대국이자 ‘오염 국가’(‘polluters’)인 미국과 중국이 지구촌을 살리기 위해 공동 보조를 취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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