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지난달 국내 최대의 공익법인 중 한 곳이 한국가이드스타의 투명성 평가를 받겠다고 연락해왔다. 그리고 얼마 후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공익을 위하여 일하는 우리를 누가 평가하느냐는 자부심이 넘치던 기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생겼다. 기부금 보조금의 투명성을 확보하라는 대통령의 연초 지시가 만든 변화였다.

관련 정부 부처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6월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결과 총 1조 1000억 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 비리가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금액으로는 314억 원에 이르는데 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 다양한 형태로 부정이 저질러졌다.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민단체 102곳이 행안부와 8개의 부처에서 총 140억 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아갔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름만 살짝 바꾼 사업으로 여러 부처의 보조금을 받는 ‘보조금 쇼핑’을 하기도 했다. 부처별로 보조금 중복지급 점검 시스템이 전무한 탓이다. 이에 정부는 보조금 투명성 제고를 위해 회계감사 대상을 확대하고 선심성, 관행적 반복사업을 가려내 대대적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예 보조금 축소로 확보된 예산은 수해 등 재난구조에 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부감사, 구조조정, 전수조사만으로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속도를 내고 제도가 문화로 정착되기까지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특히 국내 최대의 모금단체이자 배분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의 선도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미국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를 벤치마킹해 전경련 주도로 태동된 공동모금회는 초기에 회장 인선 등에서 정치적 잡음이 일면서 그 존재를 회의적으로 보기도 했다. 특히 최대의 기부자인 기업들로서는 사업의 전문성도 모자라는 공동모금회가 정파적 잡음까지 일으키자 한때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지금의 공동모금회는 사업의 심사 과정이나 사후 관리에서 너무 엄격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참에 공동모금회가 사업 자체의 공익성과 효과성뿐 아니라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운용기관의 투명성을 배분 기준에 포함시킨다면 정부의 정책도 탄력을 얻고 추진 동력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기업은 외부감사에 더해 신용평가, 지속가능성, ESG 등 다양한 기준으로 투명성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보다 더 광범위한 세제 혜택에 국민의 피 같은 기부금으로 운용되는 공익법인이 투명성 평가를 망설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공동모금회의 배분 기준에 운용기관의 투명성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기업의 공모사업에서 투명성이 문제가 되어 탈락한 공익법인이 공동모금회에서는 버젓이 사업자금을 지원받아 활동한 사례가 제법 있다. 당연히 공동모금회의 배분 기준에는 투명성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크게 고려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국세청 홈택스 의무공시 대상인 1만1435개의 공익법인 중 1157개의 공익법인이 한국가이드스타의 투명성 평가 대상에서 제한됐다. 사업비나 인건비가 0원이거나 법적으로 외부 회계감사 대상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곳이다. 홈페이지가 없거나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법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법인들도 공동모금회의 배분사업에 참여한다는 것. 이 투명성의 충돌이 해결되어야 그늘진 곳을 밝게 하려는 공동모금회의 사업이 더욱 빛날 것이다. 제도의 실행 과정에서 초기에는 투명성이 확보된 법인에 가점을 주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한다면 투명성을 강요한다는 비판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모금회는 배분 기준의 변경만으로도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도와주는 한편 비영리의 세계에 투명성의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는 셈이다.

공동모금회의 최대 기부자인 기업들도 배분 기준의 투명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정이지만 기업들이 큰 시련을 겪었던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경우 공동모금회가 투명성 평가를 책임지고 그 기준에 따라 기업들의 기부가 이뤄졌더라면 그토록 큰 파열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투명한 기부와 사용이 공동모금회를 출범시킨 기업들의 취지이기도 했지만,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갈등을 겪었고 많은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공동모금회의 선도적 노력으로 투명성의 문화가 정착되고, 우리나라가 기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큰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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