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6월 25일에서 7월 25일까지 31일간 진행된 올해 장마는 유달리 많은 이상 패턴을 보이며, 엄청난 피해를 낳았다. 장마 일수는 짧았지만, 하루 평균 30㎜ 정도 비가 내려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극단적인 폭우가 집중되어 ‘극한호우(강수량이 1시간에 50㎜와 3시간에 90㎜를 동시에 충족할 경우 기상청이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장마전선이 중부지역에 정체되면서 충북, 전북과 경북내륙 등 세 지역이 모두 역대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청주시 일대 290.2㎜, 공주에서 8시간 만에 235.5㎜, 전북 군산엔 하루 372.8㎜ 등 일일강수량 역대 1위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장마 기간의 국지적 집중호우로 오송 궁평지하차도 침수 사고, 경북 예천 산사태를 포함한 참사로 인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장마에 이은 폭염 속에서 20일째 수백 명이 투입되어 실종자를 찾고 있고, 앞으로 피해복구를 위해 엄청난 예산이 투입될 것이다. 사고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 심지어 하루 400㎜까지 내릴 수 있다고 예보가 되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한 관료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관료들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이지만, 기상 예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 문제와 우리나라 재난안전시스템을 재고할 때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학교에 다녔던 세대들은 학생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소풍이나 운동회가 예정된 날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학교 소사(小使)가 주변의 오래된 나무를 베어낼 때 학교를 지켜주던 구렁이가 베어져 그렇다는 전설을 들어봤을 것이다. 현대적인 기상 예보가 시작되기 전까지 날씨는 신의 영역이었고, 달무리나 동물의 이동 또는 기상 변동 시에 나타나는 신체의 이상증세 등의 경험에 의존해왔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비는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고대로부터 신의 역할이라 믿었기에 과하거나 모자라도 빌고, 적절해서 풍년이 들어도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삼국시대 첨성대도,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이라는 직책도 농사와 관련된 천체 현상을 관찰하는 역할이었지 날씨 예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가뭄이나 장마, 때아닌 서리와 같은 기상이변은 신의 노여움으로 생각했기에 왕이나 지역 대표가 나서서 제사를 주관하여 노여움을 달래며 기상이변 해소를 빌었다. 가뭄 속에 제를 올린다고 당장 비가 내리지는 않더라도 절실했던 백성들을 위로하는 기능은 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대국민 날씨 정보 서비스는 1965년 라디오방송을 통한 주간예보를 시작으로, 1972년에 동양방송에서 기상캐스터(통보관)가 처음 등장했으며, 1983년도부터 ‘국지기상예보’ 발표를, 1991년 수치예보 업무를 시작했고, 1993년부터 주간예보를 매일 발표했다. 지금과 같은 단기예보(3일 이내)는 2008년 10월부터 ‘동네예보’(3시간 간격으로 일 8회 발표)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날씨 해설 동영상 콘텐츠에 반영되어 제공한다. 2013년부터는 중기예보(10일간)를 시작했다.

1955년 컴퓨터를 이용한 기상 예보, 1960년 미국 NASA 최초의 기상 위성 발사에 비하면 많이 늦었지만, 기상 예보 정확도 개선을 위해 1996년 해양기상 관측부 설치 및 운영, 2000년 기상관측선 운항 개시, 1999년 슈퍼컴퓨터 1호기 도입 이후 5년 주기로 도입 추진되어 2021년 5호기까지 도입되어 날씨 정보분석에 활용되고 있다. 2010년 천리안위성 1호를, 2018년 자체 기상 위성인 천리안위성 2A호를 발사하여 고품질의 기상영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은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기상 예보를 시작했던 1960년대에는 농업이 주류였던 시대로 날씨에 관심이 적었었고, 기상캐스터가 등장한 1970~1980년대는 예보가 잘 맞지 않아 “기상 예보와 거꾸로 행동해야 한다.”라는 말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국제 수준의 기상관측 및 정보 수집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던 2016년 여름철 장마와 폭염에 대한 오보로 비판을 받았다. 7월 소나기 예보를 내린 날엔 해가 쨍쨍하고, 비 예보가 없던 날엔 소나기가 내려 ‘양치기 기상청’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8월엔 폭염이 절정이라고 예보했던 날보다 10일 후까지 폭염이 지속되며 최고 기온을 경신하기도 했던 경험이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기상청에서도 할 말은 있다. 기상청이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슈퍼컴퓨터를 통한 자료를 예보관들이 분석함으로써 알려주는 것인데, 오보가 나올 때마다 예보관을 교체해서 해당 분야에 유능한 인재가 머물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 경제 발전으로 워라벨(Work Life & Balance)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여행, 레포츠 등 날씨에 민감한 활동이 늘어나면서 날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오보에 따른 불만이 늘어나게 되었고,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책임을 예보관에게 미루는 관행이 만들어낸 실책이 오히려 기상 예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미국은 2008년 초특급 허리케인(중심 최대풍속 32m/sec 이상)이 다가오자, 기상청의 경고에 따라 무려 400만 명이 대피하느라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곧 허리케인의 규모가 작아져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상청에 신뢰를 표시하며, 책임 추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상청의 전문성을 더 키우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9년 미국 정부는 기상 예보에 지출한 58억달러(약 7조4000억원)의 6배 효과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날씨는 비선형 복잡계(非線形 複雜系)이다. 즉, 직선상의 경향성을 갖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변수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에 정확한 예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확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해양, 대기 정보뿐만 아니라 수치해석을 위한 슈퍼컴퓨터까지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1859년 영국의 증기선 사고로 폭풍에 휩쓸린 500명의 탑승자 중 41명만 살아남는 대형 참사가 발생, 1860년부터 시작된 폭풍 경보로 재난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게 됨으로써 예보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이를 경험한 영국의 초대 기상청장 로버트 피츠로(Robert FitzRoy)는 예언(豫言)이나 예측(豫測)을 의미하는 ‘prediction’과 구별하여 예보(豫報)라는 의미의 ‘forecast’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예보는 가능성이고 확률이라, 대비에 더 중점을 둔 의미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재난안전시스템은 아직도 재난을 대비하는 예산보다 복구하는 예산이 더 많다고 한다. 피해복구보다는 재난을 미리 대비하는 데 좀 더 많은 관심과 예산 투자가 필요하다. 기상이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른 피해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이미 발생한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사례처럼 더 과감한 대응을 해서라도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 더 국민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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