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15년도 더 지난 일이다. 국내의 저명한 고등교육 전문가를 모시고, 대학교육의 본질을 주제로 한 특강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때 초빙된 교수의 첫마디가 지금도 기억난다. 아침에 이화여대 특강을 간다고 하니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교육이 뭔지는 알아?” 자타 공인 고등교육 전문가가 아내 앞에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야말로 우리네 교육의 현주소 아닐까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행어가 떠오른다. 자녀의 대학입시 3대 성공 요건은 조부모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 했던가. 나중에 둘째의 희생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수능 100여 일을 앞두고 소위 ‘킬러문항 배제’가 공표된 이후 학원이 개최하는 각종 입시전략 설명회에 엄마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는 기사를 접했다. 대학에서 실시하는 입학 설명회에도 수험생 대신 엄마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운다. 입시든 입학이든 당사자는 빠진 채 엄마들만 앉혀 놓고 설명회가 진행되는 풍경이,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 불가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이 교육이 뭔지 알아?” 비아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임을 어쩌랴.

엄마의 정보력에 담긴 실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 아이 내신 등급 및 수능 성적으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지원해야 가장 가성비가 좋을까’로 요약 가능하다. 스카이, 서성한으로 이어지는 대학 서열에 따라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면 일단 성공이요, 우리 아이보다 내신도 좋고 수능 성적도 좋은 친구를 제치고 더 좋은 대학 들어가도 성공이다. 자녀의 적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성적이 남으면 아까워서’ 학원 배치표를 금과옥조 삼아 최대한 상위권 대학을 향해 진격한다. 엄마의 정보력이라는 재래식 무기(?)를 앞세워.

한국적 상황에서 자녀교육에 관한 한 엄마만이 무한책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외로 관심에서 빗겨나 있다. 하지만 다양한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경력단절 여성 10명 중 5~6명이 과장에서 차장 승진하는 단계에서 직장을 떠난다. 자녀교육에 엄마손이 본격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시기와 대체로 일치함은 물론이다. 여성 입장에서는 “직장에서 여성에게 비전을 제공해주는 것도 아닌데, 자녀교육 방치한 무모한 엄마, 혹은 자기 인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 엄마로 낙인찍히느니 자녀교육에 올인하자.”는 심정이 된다고 한다. “이러다 아이 잡겠다 싶어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노라”는 재취업 여성의 고백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환기해준다.

여기에 설상가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건 아빠의 무관심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사교육비를 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데다, 그것으로 가장의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보력마저 뒤지는 상황에서 결과를 책임지고 싶지는 않기에 자녀교육의 실권을 엄마에게 위임하고 만다. 아빠의 무관심을 적극 유도하는 일부 엄마들의 숨은 의도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무관심은 아이의 학업 성취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은 물론, 아이의 자존감이나 삶의 만족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대신 자신이 좋은 아빠라고 생각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직장 내 성과도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는 모든 아빠에게 희소식 아닐는지.

아빠는 필시 엄마의 정보력의 한계를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학벌주의를 100%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회생활을 하노라면 학벌이 전부가 아님을, 대학 시절 습득한 지식과 정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는지를, 눈부신 기술 변화 상황에서 인재 전쟁 시대에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은 무엇인지를 체감해온 아빠들 아니던가. 다만 입시 정보력을 앞세운 엄마 앞에 나섰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까봐 침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교육의 난맥상은 예수님도, 부처님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 농담을 주고받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은 제도를 끊임없이 손보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협의의 교육 시스템에 갇힌 채 제도를 또 개선한들 문제 해결은커녕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는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모두가 생생히 목격 중이다. “바보야, 문제는 의식과 문화야!” 이 한마디 속에 의외의 참신한 해법이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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