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 식물 각각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삶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포자나 씨앗과 같은 것을 식물이 생명으로 살아가는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것들이 발아한 다음부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비유해보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수정란부터가 생명의 시작이냐, 세상에 태어난 다음부터 인생의 시작이냐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사람에 비유해보니 수정란부터, 즉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유전자 구조를 가진 포자나 씨앗과 같은 모습이 생명체로서 삶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일면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정자와 난자에 해당하는 꽃식물의 꽃가루와 밑씨가 수정되는 과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생명체로서의 삶의 시작은 그보다 좀 더 이른 시기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정자와 난자, 또는 꽃식물의 꽃가루와 밑씨는 성숙한 개체가 가진 유전자 양의 절반이다. 그 절반들이 합쳐져서 다시 성숙한 생명체와 같은 유전자 양을 완성하게 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과학적으로는 이렇게 유전자를 절반만 가진 꽃가루와 밑씨도 생명체로 본다. 즉, 유전자를 반만 가진 ‘반수체’라고 정의한다. 꽃식물의 꽃가루가 밑씨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미 생명체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물이 생명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우리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꽃식물을 예로 들어 정리해보면, 처음에는 꽃가루와 밑씨로 존재하다가 꽃가루가 밑씨를 만나 씨앗을 만든다. 사람으로 보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것이겠다. 다 자란 씨앗은 어미 식물로부터 떨어져나와 특정한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정착할 장소를 찾아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사람은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오랫동안 키운 후에야 독립시키니 식물에 비해 과정이 상대적으로 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1년생 식물의 경우는 일생의 절반 이상을 씨앗을 키우는 데 쓰기도 하니 말이다. 과정은 결국 비슷하다. 

   씨앗을 품고 모험을 떠날 준비 중인 신나무 열매.
   씨앗을 품고 모험을 떠날 준비 중인 신나무 열매.

발아하기에 적당한 장소에 안착한 씨앗은 물과 온도, 그리고 빛이 적당한 환경이 되면 싹을 틔운다. 일단 싹튼 식물은 빛과 물을 찾아 줄기와 뿌리를 엄청나게 열심히 뻗어낸다.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빛과 물, 그리고 양분을 찾아 줄기와 뿌리는 열심히 움직인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씨앗을 보호해줄 열매를 키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인 씨앗을 자신으로부터 떼 내어 독립시킨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식물은 모험을 계속한다. 꽃가루와 밑씨가 수정하는 과정부터 모험이다. 꽃가루가 암술머리를 찾아가는 동안에 바람에 실려 가거나 곤충과 같은 동물에게 의존한다. 심지어 물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엄청난 모험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연계에서는 꽃가루와 밑씨가 만들어지는 비율이 생강과 같은 식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적게는 수백 대 일에서부터, 배추가 포함되는 ‘십자화과’ 식물에서와 같이 수천 대 일까지 다양하다.

그러니까 꽃가루가 밑씨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다고 할 수 있다. 꽃가루 입장에서는 성공할 확률이 아주 낮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고, 밑씨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꽃가루를 만날 수 있을지 모험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경우, 한 번에 방출되는 정자의 숫자가 1억~2억 마리라고 하니 그 모험의 정도는 더 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꽃가루와 밑씨가 만나 수정한 후에도 모험은 계속된다. 수정된 밑씨가 성공적으로 성숙한 씨앗이 되는 비율은 재배하는 사과나무에서도 0.7~4%에 불과하니 야생에서는 성공률이 더 낮을 수밖에 없는 모험이다. 씨앗이 성숙한 후에 어미 식물로부터 독립할 때도 모험은 계속된다. 환경이 발아에 적당한 장소에 정착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굳이 숫자를 얘기하지 않아도 이해가 된다. 그다음 발아할 때까지는 또 어떨까. 가을 단풍나무 주변을 살펴보면, 엄청나게 많은 씨앗이 떨어진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음 해 봄 또는 그다음 봄까지 기다려도 그중에서 싹튼 것은 몇 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그 어린싹들이 다시 성숙한 단풍나무로 자라는 것은 더더욱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식물의 삶은 모험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모험은 아주 성공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식물은 끊임없이 모험을 계속한다. 모험 없이는 새로운 씨앗도, 새로운 정착지도, 새로운 식물체도, 새로운 발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오늘도 용기를 내어 새로운 모험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존재 자체가 성취일 수도 있다.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오늘도 모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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