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일타강사 두 사람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대통령이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기 바로 전날인 6월 14일 “저출산은 허세 인스타 때문…일타강사 발언에 네티즌 공감 쏟아져”라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습니다. 유명한 수학 일타강사가 인강에서 한 그 발언 자세히 전하기 전에 용어 설명부터 좀 하고 진도 나가겠습니다. (밑줄 그을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일타강사’는 뛰어나게 잘 가르치는 수능 학원 선생이지요. 대통령이 킬러문항 없애자고 말하면서 주목을 더 받게 된 사람들인데, ‘수강 신청이 첫 번째로 마감되는 강사’라는 설명도 있고, ‘유일한 스타 강사’를 줄인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타강사가 나오는 학원과 유튜브 강좌는 수강생이 언제나 들끓어 재산도 하루가 다르게 들끓어 오르듯 늘어난다지요. “인스타 하지 말라”고 말한 이 수학 일타강사 소개 글에도 ‘100억 부자’라는 말이 꼭 따라 나옵니다.

‘인강’은 ‘인터넷 강의’를 줄인 겁니다. 돈(수강료) 내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현강(현장 강의)’을 안 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인스타’는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바일 전용 앱인 ‘인스타그램’을 줄인 건데요, 패션, 음식, 여행, 스포츠, 독서, 영화, 음악, 미술 등등 온갖 분야에서 같은 취미,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짧은 글과 함께 올리며 교류하는데, 더 좋은 사진 더 좋은 글을 올리면 많은 사람이 몰려 인기가 높아지고,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강의 도중 저출산 원인을 이야기하자 네티즌들이 열렬한 반응을 보냈다는 100억 부자 수학 일타강사의 인강 발언을 조금 자세히 읽어보시겠습니다.

“호텔? 호캉스? 오마카세? 골프? 페라리? 인스타 보면 이런 자랑하는 사람 많이 나오지? 그거 다 허세야. 이런 것들 때문에 결혼 안 하고 아이를 안 낳는 거야. 예전에는 다 못살았는데 아기는 많이 낳았어. 지금은 다 잘사는데 왜 아기를 안 낳을까? 인스타 때문이야. 인스타에 나오는 하룻밤 100만 원짜리 호텔에 오마카세까지 먹으면 둘이 하루에 한 200만 원은 소비하겠다. 나도 그렇게는 못 한다. 인스타 믿지 말자. 인스타 없던 시절이 최고의 시절이었다.”

요약하면, 이 일타강사가 하려는 말은, “인스타에 뜨는 젊은이들의 호화로운 삶의 모습에 미혹되지 마라. 그 사람들 그런 거 한 번 찍어 올릴 때마다 수백만 원 터진다. 그런 거 따라 하려니 결혼도 못 하고, 결혼한들 애 낳을 엄두를 못 내는 거다. 돈 많이 버는 일타강사, 나도 그렇게는 안 해봤다”라는 겁니다.

두 번째 일타강사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용어 설명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위에 나온 것들입니다. 일본말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일의 판단이나 처리를 남에게 맡김’이 원뜻이나, 고급 일식집 풍습을 말할 때도 쓰인다고 합니다. 뭘 먹을지를 고객이 고르지 않고 주방장(셰프)에게 맡기는 것, 즉 ‘주방장 특선’인 만큼 꽤 비싸다고 합니다. ‘호캉스’는 고급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인데, 이런 호텔 수영장은 겨울에는 따뜻한 물로 채워 엄동에서도 수영을 즐길 수 있지요. 나도 젊은 부부가 아기들 데리고 이런 호텔 수영장에서 찍어 인스타에 올린 사진을 본 적 있습니다. 행복이 넘치는 듯한 표정들! 골프는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돈이 많이 드는 레저이고, 페라리는 중고도 값이 억대를 휙 넘어간다는 초고급 스포츠카 이름입니다.

“저출산은 인스타 때문”이라는 이 수학 일타강사의 발언은 기자들에게도 신기했던지 여러 매체가 크고 작게 기사로 썼는데, 공교롭게도 이 기사가 나온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수능시험에서 킬러문제를 배제하라”고 말씀을 하셔 찬반양론으로 나라가 들끓었지요. 수학 일타강사의 발언과 대통령 발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통령 발언 배경 분석에 나선 기자들은 ‘킬러문항 풀이로 수백억 원을 버는 일타강사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사교육 시장의 이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말도 했기 때문일 겁니다.

언론이 크게 다룬 일타강사 중에는 페라리만큼 값비싼 초고급 차를 여러 대(반올림하면 10대!) 갖추고, 보통 사람은 평생 구경조차 하지 못할 희귀하고 진기한 명품으로 휘감은 자기 사진을 자주자주 인스타에 올려온 사회탐구 일타강사도 있었습니다. 대치동 학원에 현강하러 나올 때마다 타고 온 차가 바뀐다는 소문도 있는 이 일타강사의 인스타와 앞서 말한 수학 일타강사가 꼬집어 말한 그 허세 인스타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은 그걸 밝히려 쓰는 게 아니라는 것부터 말씀드리고 제 말 이어가겠습니다.

두 일타강사의 발언이나 행동은 정반대입니다. 수학 일타강사는 ‘과시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절제가 필요함을 말하는데 사회탐구 일타강사는 자신을 과시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 다 돈은 엄청나게 벌고 있습니다. 둘 다 연간 수입이 100억이 넘습니다. 수학 일타강사의 유튜브는 수학을 배우려는 수험생들만 보는 게 아니라 직장인들도 많이 본다는데 “허세 인스타 따라 하지 마라”와 같은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 수시로 작렬하기 때문이라지요. (유튜브는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수입이 늘어납니다.) 사회탐구 일타강사는 유튜브 촬영을 도와주는 수십 명의 스태프(보조인력)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화려해 보이는 삶에 반해 스태프라도 되어 보려고 줄을 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천성의 기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 기사와 유튜브를 보다가 생각 난 말입니다. 지난 6월 5일이 탄생 300년이었던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자본주의 이론에 초석을 놓은‘ 애덤 스미스가 한 말입니다. 그의 명저 ‘도덕감정론’ 속 그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와 권세를 얻은 사람은 과연 행복한가? 아니다. 부와 권세를 얻은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함에 따라 전보다 더 불행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부와 권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즐거움을 상상하게 해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었다. 천성, 즉 하늘의 본성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기만하는 게 다행스럽다. 맨 처음에 인류를 고무해 땅을 경작하게 하고, 집을 짓게 하고,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게 하고, 과학과 기술을 발명·개량하게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류의 근면성을 일깨워주고 계속해서 일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기만이다.”

앞서 말한 두 일타강사 모두 ‘천성의 기만’을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말과 행동은 정반대이지만 둘 다 자신을 닮으려는 사람들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둘 다 그런 말과 행동으로 보통 사람은 쉽게 쌓을 수 없는 부를 이뤘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비약이 허용된다면, 둘 다 ‘자본주의 안에서 성공’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둘 다 자본주의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스타 강사가 됐습니다. 

이제 하려던 말 하고 이 글 끝내겠습니다. 자본주의로 덕 본 사람들, 자본주의 욕하지 마세요. 특히 왕년에 운동 좀 했다는 386 일타강사 출신들, 자본주의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따위의 말로 젊은이들 인생을 오도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그런 말로 떼돈 벌었지요? 그걸 밑천 삼아  권력도 누리고? 자본주의를 욕하면서 자본주의의 과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이 모순! 아,  자본주의, 자본주의, 천성의 기만이라는 모순이라니!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