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원고와 피고는 오질 않고 양측 대리인인 변호사만 출석해서 맥이 풀렸다. 하지만 조정실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원고와 피고가 며칠 전에 만나 얘기를 나눈 후, 대리인에게 많은 부분을 위임한다고 했단다. 이혼 의사를 철회할 마음은 없는지부터 확인한 후, 친권과 양육권은 원고인 엄마가 갖기로 합의했다. 그런 다음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가 있는 사건이라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보다 면접교섭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나중에 분란이 생겨 번복하는 일이 없도록 면접교섭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대리인이 원고와 피고에게 각자 전화를 걸어 합의를 끌어내느라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면접교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자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문제는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첫 조정 기일에 재산 분할까지 말끔하게 정리하고 조정이 성립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아이들의 상처를 생각하며 흔쾌히 양보해 준 남편이 고마웠다.

서울가정법원의 조정위원으로 이혼 소송 사건을 접한 지도 10년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혼을 앞둔 많은 부부는 결혼생활의 파탄이 누구 책임인지를 따지며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운다. 그러면서도 정작 면접교섭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법원에서 하라고 하니까, 양육비를 주니까 마지못해서 아이 얼굴 보여 주는 것, 꼴도 보기 싫은 전 배우자를 만나는 성가신 일쯤으로 생각한다.

면접교섭이란 따로 사는 아빠나 엄마가 자녀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왕래, 방문, 숙박, 편지, 전화 통화 등 모든 방법이 포함된다. 면접교섭권은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자녀의 권리로,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필요하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하지만, 자녀 양육에는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면접교섭이 바로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충격을 받은 자녀들과 면접교섭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나를 버렸다. 관심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라는 피해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나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는 죄책감, 우울감, 난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자기비하로 자존감, 자기효능감마저 떨어진다. 타인과의 관계에도 장애가 생기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어른으로는 더더욱 성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기적, 반복적인 면접교섭으로 엄마, 아빠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혼란스러워하지만, 심리적,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다. 면접교섭은 이혼의 부정적인 측면을 줄여 주는 든든한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다.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해서는 안 되는 행동으로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만큼은 삼가야 한다. 말만 안 할 뿐이지 같이 살지 않는 부모를 만나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것, 만나고 오면 반가워하지 않고 달갑지 않은 표정 짓기, 만나서 뭘 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기, 정보 얻어내기, 면접교섭에 협조하지 않기, 면접교섭 중 자주 전화하기 등은 함께 사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삼가야 할 행동이다.

따로 사는 부모도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면접교섭 중 휴대전화를 보거나 딴짓하며 아이에게 집중하지 않기, 약속 시간 마음대로 변경하기, 면접교섭 중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자녀에게 비싼 선물이나 큰돈 주기, 양육 부모와 의논도 하지 않고 자녀와 약속하기, 함께 사는 전 배우자의 양육 방식을 무시하기, 지키지 못할 약속하기, 은밀한 약속으로 아이에게 부담 주기, 아이를 심부름꾼이나 스파이로 악용하는 일은 부모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일방적으로 찾아가거나 특히 학교로 찾아가는 일은 더욱더 삼가야 한다.

전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이혼의 책임이 아이에게 있는 것처럼 원망하거나 부모 중 어느 한쪽 편에 서라고 회유하고 강요하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정서적 학대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조부모가 떠난 사람을 흉보거나 비난하면서 면접교섭에 비협조적이면 아이들은 만남을 거부한다. 그러면 조부모는 다시 ”너 만나기 싫다는데 왜 아이를 괴롭히냐“며 면접교섭을 방해해 악순환이 깊어진다.

아이가 만남을 거부하면 무조건 만나야 한다고 강요할 게 아니라 왜 거부하는지 진정한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부부나 조부모 사이의 갈등과 싸움에 끼어 있으면 아이들은 질문에 대답은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심이라고 볼 수 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 사이에서 살아남고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만남을 거부하는 것이다. 일종의 충성심 갈등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은 했지만 서로 협력해서 충분히 면접교섭을 지속하여 자녀를 밝고 반듯한 성인으로 키운 부모들도 많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웃는 얼굴로 보내 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관심사, 고민 등 정보를 공유하면서 아빠와 엄마 역할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게 부모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나 조부모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가능하면 아이 앞에서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자. 자녀가 어리거나 대화에 어려움이 있다면 양육 수첩이나 양육 일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기 출장 등으로 오랫동안 만날 수 없는 경우에는 영상 통화를 활용할 수도 있다.

자녀들의 연령에 맞춘 지혜도 필요하다. 만 3세 이하의 영아라면 1시간부터 시작해서 차츰 시간을 늘려가며 짧지만 자주 만나는 게 좋다. 만 3세~5세의 학령 전기라면 일상생활과 훈육을 유지하면서 장소는 자주 변경하지 말고 자녀가 익숙한 곳에서 만나는 게 좋다. 만 6세~12세 학령기라면 자녀의 취미를 살릴 수 있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좋지만 매번 이벤트성일 필요는 없다. 청소년기라면 부모의 이혼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시간을 가질지 서로 의논한 뒤, 장소는 자녀가 원하는 곳으로 해도 무방하다. 자녀가 어린 경우, 무조건 자녀들 하자는 대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성숙하고 대화가 가능하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는 ‘내 인생 이제 실패했구나’ 하는 심정으로 절망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극심한 감정의 기복 속에서 자책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다. 이혼이 인생의 실패도 아니다,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힘들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혼의 중심에 자녀를 놓고 무엇보다 자녀의 복리에 최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원할까, 진정으로 우리 아이를 위하는 길이 무엇일까, 아이가 불행해지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전 배우자가 불행해지면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다 함께 성장하는 이혼, 후회하지 않는 이혼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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