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연구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경제학의 출발점은 희소성이다. 사람이 가지고 싶은 욕구에 비해서 재화나 서비스의 양이 부족한 게 경제 문제고, 이 해결방법을 다루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인류가 희소성 해결을 위해 처음 발견한 놀라운 제도가 ‘거래(transaction)’다. 거래는 13만 년 전 인류가 동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시도했다. 물물교환으로 시작된 거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감소시키려고 ‘돈(money)’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돈으로 소금, 조개껍질 등이 사용되다가, 여러 제약성(무게, 용해 가능성, 파손)을 피하려고 나중에는 은과 금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금·은도 도둑, 강도, 보관, 분할 등 문제가 있어 이를 특정 장소에 보관하고, 그 소유권을 증명하는 증서를 만들어 이를 제시하면 보관소에서 금을 내줬다. 이게 지폐로 발전했다. 지폐는 금을 전제로 발행되다가, 각국 중앙은행이 여러 자산을 근거로 중앙은행권을 발행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지금은 지폐는 물론, 신용카드, 알고리즘 ‘페이’, ‘코인’으로 거래하는 신용화폐·가상화폐 시대로 진화했다.

이렇게 돈의 역사가 긴 이유는 거래비용 최소화로 우리 삶을 희소성으로부터 더욱 해방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가지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어서다. 즉, 돈으로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물건과 비교할 수 없게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품이나 다이아몬드로도 자신이 원하는 다른 것을 직접 교환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이 누군지,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원하는지, 그 가치가 얼마인지도 알기 어려워서다. 또 안다 해도 그것을 원하는 것의 가치만큼 나누어 상대방에게 제공할 방법이 없어서다.

돈은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지불수단, 계산단위로 기능해서 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그래서 시장은 특정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배분할 수 있다. 당연히 시장이 잘 발달한 사회와 국가는 희소성이 줄고 사람들이 윤택하게 산다.

시장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지 않고, 특정한 일만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필요한 것을 자유롭게 교환한다. 이렇게 현대사회는 분업과 전문화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벼가 어떻게 자라서 밥이 되어 내 입에 들어오는지, 목화·누에고치·양털이 어떻게 옷이 되어 내 몸을 감싸는지 잘 모른다. 또 누가 무엇으로 집을 지어서 더위나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안락하게 사는지 잘 모른다.

이렇게 시장은 사람 간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을 높인다. 상호의존성이 높을수록 사회협력의 필요성은 커진다. 만일 상호의존성은 높은데 사회협력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사람이 생존이 어려운 지경에 처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잘못 본 외눈박이가 칼 마르크스(Karl Marx)다. 그는 인간의 자발적 거래에 기초한 시장경제체제(자본주의)가 자본가의 노동자 착취 시스템이라 규정했다. 그는 이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자본가를 타도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공유하여 과실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배급(rationing)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가 이 결론에 도달한 역사관이 계급투쟁론이다.

역사가 계급투쟁이라는 관점은 인류가 계급으로 규정되어 온 측면이 있어서 역사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상호협력 촉진으로 '윈-윈(win-win)'하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핵심을 놓쳤다. 마르크스는 분업과 전문성이 생산성 혁신의 핵심임을 당대 다른 경제학자들처럼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이 대립적 자본가-노동자 관계가 아니라 사회협력에 기인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마르크스 경제학(Marxian political economy)과 정통 경제학(economics)을 갈랐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108년이 지난 1991년 그 이념에 입각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몰락, 그 전후 동구 위성국들의 몰락으로 그 경제학이 미몽이었음을 만천하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장경제로 세계인의 경탄을 자아낸 경제발전을 해서 번영하는 이 나라에서 이 죽은 이념을 품은 자들이 발호하고 있다. 사람들을 사탕발림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이 엉터리 경제학을 따르는 술수를 정책이라 포장해서 강요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대개 시장과 기업을 악으로 규정하고 억압하거나 정부로 대신하려 하고, 명령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억압은 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의 심각한 제약을 초래하여 이로 말미암은 사회협력을 파괴한다. 이는 결국 결핍(희소성)으로 점철된 빈곤하고 억압적인 사회로 귀결된다.

우리는 시장의 번영 창출을 직접 목도한 사람들이다. 시장이 활성화되자 우리 삶은 윤택해졌다. 시장에서 모두 구할 수 있어서 스스로 의식주 확보에 목맬 일이 없어졌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하는 일만 해도 더 만족스러운 재화와 서비스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급기야 이제는 거의 모든 거래가 ‘원-클릭-어웨이(one-click-away)’인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혁신으로 안락하게 살면서도 이게 시장 덕분임을 대부분 모른다. 도리어 시장이 문제라고 불평한다. 마치 부모에게서 모든 혜택과 사랑을 받은 아이가 은혜를 모르고 불평하고 반항하는 것과 같다. 아이는 자라면 부모의 은혜를 아는데, 시장을 적대·불평하는 자들은 제 언행이 해충같이 번영을 갉아먹는 줄 모르고 날뛴다. 오호, 통재라!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