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유럽 도시들을 여행할 때마다 자주 관광물목(物目)에 올라가 있어 그 유혹에 넘어가 ‘혹시나’ 하고 가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도시의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대체로 도시의 주요 교회나 성당의 첨탑으로, 크게 높지 않아도 주변 건물들이 대체로 5층 내외여서 도시 전체와 아기자기하고 정연한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지붕이 만드는 정연하지만 변화있는 경관(roof-scape)은 압도적이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없고 마지막 부분은 거의 사다리를 타고 돔(dome; 둥근 지붕)이나 종탑을 땀 흘려 올라가노라면 때로는 후회가 좀 되기도 하지만 올라가서 보는 경치는 ‘스펙타클’ 그 자체다. 입장료가 비싸지도 않고 설사 비싸도 아깝지 않다.

피렌체(Firenze) 두오모(Duomo) 성당 돔(높이 90m)에서 본 지오토(Giotto) 종탑(84.7m)과 좌측 위의 레푸불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 그리고 시가지 지붕경관. 지붕의 높이와 형태 및 색이 만드는 도시의 통일된 이미지가 이채롭다. 사진: 김기호, 2014
피렌체(Firenze) 두오모(Duomo) 성당 돔(높이 90m)에서 본 지오토(Giotto) 종탑(84.7m)과 좌측 위의 레푸불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 그리고 시가지 지붕경관. 지붕의 높이와 형태 및 색이 만드는 도시의 통일된 이미지가 이채롭다. 사진: 김기호, 2014

피렌체 같은 역사와 예술의 도시에서도 성스러운 분위기의 성당 공간과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상 등 미술품도 좋지만 두오모(Duomo) 성당의 돔이나 지오토(Giotto) 종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시가지와 주변 구릉지 등을 부감(俯瞰; 높은 곳에서 내려다봄)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며 멋이다.

미국의 도시는 그에 비해 역사가 짧고 대체로 근현대기에 급속히 개발된 도시이기에 유럽보다는 밀도가 훨씬 높고 고층 건물이 많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도심부에는 매우 밀도 높은 초고층 건물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고 그 주변으로 나가면 경관이 확 바뀌어 1~2층의 낮은 단독주택이 융단처럼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다. 여기서도 여행의 큰 즐거움의 하나는 100층 내외의 높은 건물에 올라 도시와 주변을 감상하는 것이다. 매우 높고 넓은 스케일의 경관에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입이 벌어진다.

뉴욕의 경우 맨해튼의 많은 빌딩이 최상층에 전망대를 개방하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땅값 때문에 지은 높은 건물을 도시의 매력 포인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전망대는 뉴욕의 상징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근래에는 원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 구 세계무역센터 자리, 건축가; SOM, 540m)가 이에 도전하고 있다. 입장료는 대략 5만 원 내외이다.

뉴욕 원월드트레이드센터, 100∼102층에 전망대(높이 386m)가 있으며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어 넓게 멀리 볼 수 있다. 사진: 김기호, 2017
뉴욕 원월드트레이드센터, 100∼102층에 전망대(높이 386m)가 있으며 주변에 더 높은 건물이 없어 넓게 멀리 볼 수 있다. 사진: 김기호, 2017

지난 연간 우리나라 대도시에도 많은 고층건물들이 들어섰다. 서울이나 부산은 앞으로 계속 고층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예전에는 주로 오피스빌딩이나 상업용 건물들이 고층화를 주도했으나 이제는 주거나 주거복합 건물들도 뒤질세라 고층화 바람에 올라타고 있다. 50층 이상의 아파트건물(복합건물 포함)들도 이젠 드물지 않다. 신문이나 방송도 뉴욕이나 도쿄 등 최근의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초고층 건물 건축을 주장하고 있다.

가로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초고층 건물은 보행자의 시선을 과도하게 차폐하거나 거대한 높이나 부피로 압박감을 줘서 심정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건물 위 최상층부의 전망대에 올라서서 밖을 내다보면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유럽 도시는 도시 성장의 역사에서 중요 시설로 높이 지은 종탑 등을 현대에 와서 자연스럽게 도시전망대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신대륙의 건축자유를 바탕으로 초고층 건물을 짓고 최상층을 전망대로 할애하여 공공에게 개방하고 있다. 실제로 높은 건물의 맛은 밖에서 볼 때보다 안으로 들어와 초고층에 있는 전망대에서 평소에 보지 못하던 광경을 즐길 때 느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쿄 마루노우치 마루빌딩 35∼36층의 전망공간. 천장이 아주 높고 좌측에 별도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사진: 김기호, 2007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쿄 마루노우치 마루빌딩 35∼36층의 전망공간. 천장이 아주 높고 좌측에 별도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다. 사진: 김기호, 2007

평평한 지형에 높은 건물을 세운 이런 도시들과 비교해 구릉과 산이 많은 우리나라 도시에 초고층 건물들이 적합한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허나 이왕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층, 초고층 건물들을 짓는다면 이참에 우리도 도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그럴싸한 고층 전망대를 여기저기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로에서 볼 때 하늘을 가리고 때로는 경치를 가리는 거대한 초고층 건물은 이제 그 공공성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초고층 건물의 최상층부에 공공에게 열린 전망대를 만드는 것은 작으나마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있다. 

도쿄 마루빌딩 4층 도쿄역 방향 전망대. 저층부 상가 부분에 설치된 발코니 형태의 전망공간. 역사적인 도쿄역과 광장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진: 김기호, 2007
도쿄 마루빌딩 4층 도쿄역 방향 전망대. 저층부 상가 부분에 설치된 발코니 형태의 전망공간. 역사적인 도쿄역과 광장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진: 김기호, 2007

나아가 관광객에 대한 조망 서비스와 이를 통한 건물의 인지성 및 이미지 고양으로 수익성에도 도움이 되는 상호 윈윈의 게임이 될 수 있다. 여름 휴가기간 세계 각지로 여행가는 분들에게 방문 도시의 전망대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색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감상하기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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