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최근 나온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자료에 따르면 물가 상승세가 상당히 순해 보여 머지않아 인플레이션 모습을 한 드라큘라 백작이 물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과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6월 CPI가 1년 전에 비해 3% 증가했는데 작년 이맘때의 증가율이 9%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안정된 수치이다.

미국의 물가 안정세는 우리 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발표 이후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주가가 오르고, 1300원을 상회하던 달러화 환율이 약 50원가량 떨어지며 최근 미국의 CPI 소식을 열렬히 반기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즉 CPI 인플레이션이 이런 추세로 계속 낮아지면 머지않아 미국 중앙은행 연지준이 목표로 삼는 2%대에 안착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반응이다. 물가상승이 둔화되면 각종 생활용품과 서비스 가격 오름세가 멈추기 때문에 두루두루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흥분하고 있는 것은 물가가 더 이상 오르지 않으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일도 멈출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는 2022년 1월 각각 0.25%와 1.25%여서 미국이 더 낮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이후 연지준이 상대적으로 더 기세 높은 물가상승 추세에 빠르게 대응하며 금년 6월 말 현재 미국의 금리는 5.25%로 한국의 3.5%보다 훨씬 높다. 국내에서도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가계나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며 소비, 투자, 고용 등에 악영향을 미쳐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 경제의 큰 축을 이루는 수출의 부진이 이런 사정을 더 키웠다.

반면 외부 전문가뿐만 아니라 한은 금통위 내부에서도 한미 금리 차가 계속 커지면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을 좇아 미국으로 투자자금이 이동하며 원화 환율이 하락하고, 이는 수입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국내 물가를 부추기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와 가스의 국제 가격이 달러화로 변하지 않아도 환율이 하락하면 국내 원화 가격이 올라간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더 광범위한 가격 인상 요인이 된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작년 초 1달러에 1200원 수준이었으나 10월 말에는 약 1440원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한은은 금리 인상을 늦추어 왔는데 이번 미국의 물가 뉴스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세를 멈추면 한국이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한미 금리 차가 더 벌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출이 부진한 우리 실물경제에도 호전 효과가 기대된다

빠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실물경제가 불경기를 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은 이례적으로 그 배경이 흥미롭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의에는 노동시장 상황이 필수적이다. 과거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시기에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이 맞물려 진행되는 악순환이 뚜렷했다. 연지준의 파월 의장은 그동안 금리를 올리는 정책 대응을 설명할 때마다 금리인상이 악순환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미국의 월별 CPI인플레이션과 실업률(2019.1~2023.6, 단위 %)

 

임금상승은 실업률과 역의 관계를 보인다. 즉, 일자리가 많아 구인난인 상황에서 임금은 더 빨리 오르는 반면, 실업자(구직자)가 많으면 임금은 상대적으로 정체하게 된다. 그림은 2019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의 미국 CPI 인플레이션(검은색 선)과 실업률(빨간색 선)을 보여준다. 수직 축은 두 지수의 수준(%), 수평 축은 시점을 나타낸다. 이 도표를 보면 2020년 초 팬데믹 초기 급격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실업률이 급등했고, 동시에 소비가 크게 위축되며 물가상승률이 떨어졌다. 정부의 비상 재정지출 등의 효과로 급등했던 실업률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2022년 초반에는 팬데믹 이전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2021년 초반부터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작년(2022) 중반에 9%를 상회했다. 빨라지는 물가상승세에 위기감을 느낀 연지준은 작년 초부터 빠르게 금리를 올렸다.

작년 7월 이후 인플레이션이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금리인상에 따라 예상되는 추이이다. 그런데 실업률은 작년 내내 미미하게 낮아지며 금리인상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모습이 특이하다. 보통 금리인상이 노동시장에서 고용 사정을 어렵게 해 실업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는 교과서적인 정책 파급 양상과 다르다.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고용사정 호조세가 지속되는 데에는 팬데믹과 관련된 특이한 몇 가지 여건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최근 미국의 고용 사정이 양호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는 그동안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불경기를 피해갈, 즉 연착륙할 개연성을 높였다. 우리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의 실물 경제가 양호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여러 이유로 제일 비중이 큰 중국으로의 수출이 저조한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해줄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과 같은 세계경제 불안요인이 엄중한 가운데 개방적인 세계 최대 경제 미국의 사정이 양호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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