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얼마 전, 필자는 유럽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문화애호가 서너 명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고대 가야, 신라 시대의 ‘상형토기(象形土器)와 토우장식(土偶裝飾) 토기’ 특별전인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2023. 05. 23.~10. 09.)’을 보러 간 것입니다.

“신라·가야에서는 사람, 동물, 사물을 흙으로 빚어 본떠 만든 토기(상형토기)와 그러한 장식을 붙인 토기(토우장식 토기)를 무덤 안에 넣었습니다.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며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삶을 위해 만들어 넣었을 것입니다.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애도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윤성용,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국립박물관, 2023)라고 하였듯이 망자의 영원한 여정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염원하며 시신(屍身)과 함께 무덤에 묻었던 유물이 전시된 바로 이 토기들입니다. 

흥겨운 거문고 가락에 술을 마시며 몸을 들썩인다(7세기 신라 시대). 사진 Google에서 캡처. 
흥겨운 거문고 가락에 술을 마시며 몸을 들썩인다(7세기 신라 시대). 사진 Google에서 캡처. 

 

그런데 전시된 토우에 ‘죽음과 해학(諧謔), 해학과 죽음’이 스스럼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오래전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엿보며 감탄하였습니다. 장난기가 넘치는 토우를 무덤이라는 엄혹(嚴酷)한 공간에 넣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세계 미술사에 ‘특종’이 아닌가 싶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특별합니다.

그런 가운데, ‘말을 탄 사람 모형 토기[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고 친숙한 작품입니다. 말 등에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양반’의 얼굴에 살짝 드러나는 미소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해졌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동행인들도 작품을 감상하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토기에서, 말을 탈 때 발을 딛고 오르는 ‘발걸이[鐙子]’를 가리키며, 7세기 고대 신라 때 토기에서 등자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자 동행인들은 순간 ‘으~악 소리’를 자제하느라 힘들어하였습니다. ‘칭기즈칸의 악몽’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위의 ‘주인상’에는 발걸이가 있지만, 밑의 ‘하인상’에서는 발걸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도록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국립중앙박물관, 2023).
위의 ‘주인상’에는 발걸이가 있지만, 밑의 ‘하인상’에서는 발걸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도록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국립중앙박물관, 2023).

세계사에서 12~13세기에 칭기즈칸[Čingis Qan, 1162(?)~1227]이 오늘의 동유럽까지 정벌했던 그 전란을 동행인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아도, 저 멀고도 먼 지구의 동쪽 끝 몽골지역의 병력이 어떻게 한 번도 변변한 저항을 받지 않고 동유럽지역까지 ‘쓰나미’처럼 쳐들어왔는지 몰랐는데, 몽골 기마병들이 달리는 말 위에서도 활을 자유자재로 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발걸이’ 덕분이었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그 사실을 쓰라린 패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구인들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트라우마 DNA’인가도 싶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활을 쏠 수 있었던 것은 발걸이 덕분이라고 한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캡처.
말을 타고 가면서 활을 쏠 수 있었던 것은 발걸이 덕분이라고 한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캡처.

그런데, 그들은 그 발걸이가 한반도에 이미 7세기 때 존재하였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워하였습니다. 한 동행인이 “그래, 우리가 나무에서 원숭이처럼 지낼 때였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말은 독일어권에서 ‘외국 문명이 훨씬 앞섰다’라는 것을 에둘러 말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동행인은 그 자그마한 신라 토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동행인은 그 발걸이를 7세기 한반도에서 이미 널리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지목하면서, 오늘날 ‘K-컬처’가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는 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으로 귀결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은 세부적인 곳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고 하였듯이 세계사도 ‘디테일’에 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작은 소품 발걸이가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생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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