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후쿠시마 문제와 관련해 언론을 비판/질타하는 글 몇 편을 읽었습니다. 아직 못 읽은 분 가운데 특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언론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싶어 우선 두 가지만 정리해서 여기 올립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과 같은) 난센스와 예산 낭비적이고 국력 낭비가 발생하는 이유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은 언론이다. 소음과 지식을 구분 없이 보도하는 (언론의) 무책임이다. 언론이 극단적이고 비과학적 주장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수자들에게 마이크를 대주는 일이 이런 소음이 제거되지 않게 만든다. 음모론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전문성 향상 없이는 언론은 (사회의) 필터 작용을 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음모론자에게 끊임없이 지면과 방송 시간을 내주는 한국 언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전도사로 꼽히는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경영학)가 쓴 이 글을 나는 “사회의 소음을 줄이는 소음기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소음을 확대 재생산하는 확성기가 되어 오히려 사회를 더 시끄럽게 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윤진수 교수의 글은 확성기가 되어야 할 때 소음기가 된 언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은 이렇습니다.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이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보고서를 신뢰한다고 했군요. 뉴질랜드도 이 문제에 관해 우리나라만큼이나 이해관계가 있지요. 국내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는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비판적인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네요. 제가 언론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느 언론이 무엇을 보도하는가만큼 무엇을 보도하지 않는가도 중요하지요.”

윤 교수는 자신의 글 아래에 “뉴질랜드는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해양 방류 계획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언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로 시작되는 연합뉴스 7월 10일 자 기사를 붙였습니다. 국내 언론 다수가 다룬 이 기사를 좌 편향으로 분류되는 몇 매체가 아예 다루지도 않은 걸 꾸짖은 거지요.

나는 후쿠시마 문제와 관련해 “과학에 기댈 것도 아니다. 과학적 논쟁은 과학자들끼리 해도 된다. 우리가 겪은 경험은 이미 우리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인데요, 내 생각은 이런 겁니다.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려 뇌에 구멍 난 사람 있냐? 사드 전자파에 쪼인 성주 참외 먹고 죽은 사람 있냐? 사드 전자파에 몸이 튀겨져 드러누운 성주 사람 있냐? 12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났을 때 그때 퍼진 오염물질 때문에 우리 바다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중국에서는 지금도 우리 서해바다에 후쿠시마 것보다 50배 독한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다는데 왜 중국에는 아무 말 못 하고 후쿠시마 것만 가지고 난리냐?”

뱀장어는 장갑을 끼면 꽉 잡을 수 있다(함평군청 블로그).
뱀장어는 장갑을 끼면 꽉 잡을 수 있다(함평군청 블로그).

나는 언론인도 물고기 다루는 사람들처럼 손바닥 쪽이 꺼끌꺼끌한 면장갑을 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뱀장어처럼 미끌거리는 물고기는 맨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질문은 그 자체가 이미 뾰족하고 날카로워 괴담꾼들은 처음 한두 번은 동문서답이나 새로운 거짓말로 빠져나가겠지만 기름 장어가 장갑 속에서 더는 못 빠져나가듯 계속 물어보면 엉뚱한 답변도 거짓말도 더는 못 만들어냅니다.

괴담꾼과 거짓말쟁이와 선동꾼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놓고 항복하는 걸 보는 것, 언론을 하는 건 이런 맛 때문이기도 할 터인데, 왜 그걸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을 허물고 싶은데 너무 높아서 감당이 안 된다고 지레짐작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장벽의 밑돌은 처음 하나를 빼기 어려울 뿐, 하나만 빼면 그 옆의 것 빼기는 한층 쉬운 것, 우리 이미 다 알잖아요? 정의와 공정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켜지는 건데, 마냥 “어디 거기도 한마디 해보슈”라고 마이크를 대주니 괴담꾼들이 용을 쓰는 겁니다.

후쿠시마 괴담꾼은 광우병 괴담꾼, 사드 괴담꾼과 같은 무리라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괴담을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한 말을 되돌려주는 것이 적절한 처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후쿠시마 물을 먹느니 X을 먹겠다”고 한 사람에게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후쿠시마 물과 본인 X을 들이댄 후 골라보라고 하는 게 훨씬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요.

그래도 과학적 사실로 저들을 혼내고 싶다면 아주 강력한 새로운 무기를 알려주겠습니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화학을 가르치고 환경부 장관도 지낸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엊그제 신문에 기고한 글 일부입니다.

“과학적 시뮬레이션은 믿기 어렵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구상 인공방사능 증가 원인은 원전과 핵잠수함 사고, 방사성 폐기물 투기, 핵 관련 시설의 방출, 핵무기 실험이다. (중략)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한 경우는 북한뿐이다. 2006년부터 여섯 차례 했다. 지하핵실험이므로 방사능 유출이 전혀 없다는 북한 주장과는 달리, 2017년 벨기에 과학자들은 2016년 일본에서 관측된 방사성 제논의 분포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과 관련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중략)

가장 가까이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가장 오염이 큰 핵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사고의 오염수를 처리해 국제기준에 맞게 방류한다는 계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중잣대에 의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을 무시한 대가는 국민 피해와 국력 소모의 사회적 비용이다. K-시리즈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기구에 대한 과도한 불신 표출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국제기준을 존중하고 그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인 여러분, 확성기든 소음기든 그때그때 알아서 하세요.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명백한 사실 앞에서 주춤하지는 마세요. 여러분이 주춤하면 괴담꾼들은 더 기승을 부립니다. 사회의 소음, 낭비, 대립, 갈등은 깊어지고 커집니다. 대한민국이 가라앉습니다. 여러분은 그럭저럭 살아가겠지만, 여러분의 후손은 지금 여러분이 누리는 만큼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명심하세요. 엉터리 괴담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세요. 부끄러워하도록 만드세요. 장갑 제대로 끼고 뱀장어를 꽉 잡으세요. 다시는 고개를 못 쳐들게 하세요. 여러분의 책무는 바로 그런 것 아닌가요?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