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교정에서 내 이름은 종종 ‘인행사’로 불린다. 인행사는 나의 담당과목 ‘인간행위와 사회구조’의 줄임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국어 간다~”, “국사 온다~” 식으로 과목 선생님을 부르던 습관이 남아, 대학에 와서도 그리한다는 것이 학생들 변(辨)이었다.

5년 전 대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세대별로 연상되는 단어를 3개 이상 적어달라고 했다. word crowding을 해 본 결과, 기성세대 입장에서 신세대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단어로는 개인주의, 자유분방, 능력 부족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신세대 입장에서 기성세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꼰대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야근, 권위주의, 경험 중시, 변화 저항 등이 뒤를 이었다. 신세대 눈에 기성세대가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증의 한 자락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접한 대기업 상사가 신세대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우리가 언제 꼰대로 보이나?” 돌발 질문에 즉각 “방울뱀 소리를 내실 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두 이해 불가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본인이 직접 시연에 들어갔다. 신입사원 앞에 세워 두고 보고서를 넘기며 아무런 말 없이 방울뱀처럼 “쓰~~~” 할 때면 상사가 꼰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순간 웃음보가 빵 터졌음은 물론이다.

21세기에 태어난 학생들 눈에 꼼짝없이 꼰대로 비칠 당사자로서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고민이 깊어간다. 19세기 조직에서 20세기 마인드의 교수가 21세기 미래 세대를 가르치고 있음에 대한 ‘현타’(현실 자각 타임) 덕분이다.

지난 봄 학기엔 “책 좀 읽고 생각 좀 하라!”고 외치던 전형적 꼰대 스타일을 잠시 접어두고, 조교들에게 과제에 대해 자문했다. 1차 과제로는 대학가에서 논란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챗GPT를 직접 사용해서 문제의 답을 구해보도록 했다. 단 챗GPT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거짓말을 한다’는 평가가 있으니, AI가 제공해준 답에 오류가 있는지 여부를 체크해 보도록 했다. 이를 위해 사회학 교재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1편 이상을 참고하도록 지침을 주었다.

첫 과제의 시행 과정 및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 기대 이상으로 진지했는데 조교들 생각에는 아무래도 수업 시간 과제임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라 했다. 무엇보다 챗GPT가 제공해준 답이 100% 옳은 것은 아님을 경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단어를 한두 개 나열한 학생도 제법 있었고, “교재 and 논문이냐 교재 or 논문이냐” 같은 안 하면 더 좋을 질문을 올리는 학생도 있었지만 말이다.

2차 과제로는 책 읽고 서평하기나 영화 보고 분석하기 같은 전형적 텍스트 활용 유형 대신 요즘 신세대가 가장 선호한다는 동영상에 주목하기로 했다. 사회학의 고전을 읽자고 하면 ‘고전=좋은 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며 요약본을 소개해달라는 세대요, 심지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도 모자라, 동영상 중에서도 평균 1분가량의 숏 폼을 가장 즐긴다지 않던가.

그래서 내준 과제는 자신이 즐겨보는 동영상 범주 및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후, 특정 동영상을 즐겨보는 나름의 이유를 분석하도록 했다. 역시 ‘꼰대스러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최대한 수업시간에 배운 개념을 활용해서’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동영상 소비 실태는 예상했던 대로 10인10색에 중구난방이었는데, ‘동영상 그냥 즐기면 되지 웬 분석?’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은 과제를 내줄 때 정확한 지침을 요구한다. 분량을 A4용지 5매 내외로 제시하면, 그렇게 애매한 기준 대신 글자 크기, 여백 주기, 줄 간격까지 지정해달라는 요구가 올라오는 식이다. 원로 교수의 강의 불만사항 중에는 교재가 없다거나 진도를 맞춰주지 않아 불만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판이니, 앱 다운로드가 일상화된 세대다운 발상이리라.

점수에 민감한 학생들답게 채점 기준도 함께 올려줄 것을 희망하는데, 이번 학기에는 드디어 “채점 기준이 잘못된 것 같다”는 항의성 피드백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성적은 교수의 고유 권한이니 ‘주는 대로 받고’ ‘학점이 나쁘면 재수강하겠다’가 관행이었는데, 채점 기준까지 협상을 해야 하나 자괴감이 밀려든다.

학생들에게 대학의 의미를 물으면 이력서에 들어갈 한 줄 스펙이라고 답한다. 그 한 줄 스펙을 위해 학부모들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수능 찍기 요령 연마에 쏟아붓고 있고, 교수들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학생들과 씨름하며 이리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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