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희 연구원] 서울특별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5일 서울시청에서 ‘SoS 안전,안심 서울 디자인 세미나’를 공동주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안전은 디자인의 본질‘이란 인식아래 다양한 국내외 사례들이 소개됐다. 주요 내용을 요약했다.

The Essence of Design=Safety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나건교수는 기조연설에서 ‘안전은 디자인의 본질, 디자인은 안전의 본질’이라는 문구로 디자인을 정의했다. 나 교수는 ”좋은 디자인은 ‘보기 좋다’와 ‘쓰기좋다’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보기 좋고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안전은 디자인의 핵심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안전협회에 따르면 안전사고의 88%는 사람들의 부주의한 행동, 10%는 안전하지 못한 환경, 2%는 기타 불가피한 이유로 발생한다. 나 교수는 “인간은 오감 중 주로 시각과 청각에 의지해 살기 때문에 시각과 청각이 위험요소를 감지하지 못하면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인간은 어떤 것을 인지할 때 선택적이며, 한 방향에 의존하고 주기적으로 부주의한 상태로 빠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본질을 잃은 디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DDP는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서비스디자인 전문업체 디맨드 김광순 대표는 ‘예술공간을 경험하기 위한 안전디자인’이란 주제발표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실내 디자인의 위험요소를 발견, 해결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DDP는 기존 건물 디자인과 달리 곡선을 최대 활용한 건물이다. 실내에는 직선기둥이 없고 내부 바닥, 벽면, 천장이 모두 하얗다. 보기에는 아름답고 신비하지만 사실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은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요소가 내재될 수 있어 안전 검증이 더욱 신중해진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16명의 실험참가자들과 함께 시간대 별로, 연령대별로 각자가 느끼는 공간의 불편, 위험 요소들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이 건물 자체의 위험인지, 각 사람의 개인적인 이유로 발생한 위험인지, 사람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 위험인지, 사람과 건물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하는 위험인지를 분류했다. 김 대표는 “기둥이 비스듬하고 전시장 내부가 모두 흰색으로 처리돼 명암구분이 어렵고 사람들이 방향성을 갖는데도 어려움이 있어 공간구조물에 부딪힐 가능성이 매우 컸다. 또 ‘공간의 미학’을 살려 만든 좁은 틈에 호기심을 느낀 어린아이들이 구조물 사이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디맨드는 이와 같은 위험요소 약 300여개를 발견했으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각각의 요소마다 솔루션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른 조치를 취해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 역시 디자인의 한 부분이다. 명암구분이 없어 위험할 수 있는 계단에 스티커를 붙이고, 기존 건물 곡선의 흐름에 맞게 곡선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디맨드는 DDP개장 전 아름다운 건물에 안전이라는 디자인을 입혔다”고 말했다. 또 “단순히 이 건물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건물의 어떤 면이 왜 위험한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2 롯데월드 건물이 매우 위험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왜 위험한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시설 자체의 문제인지, 시설과 사람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위험인지를 모두 세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안전문제와 디자인 해결방향
한양사이버대학 최성호 교수는 한국 지하철과 유럽의 지하철 디자인을 비교함으로써 한국 지하철의 문제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2010년 국토해양부는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 편의시설 보완 설계 지침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위급상황 시 지하철 탑승객이 승강장에서 외부로 대피하는 시간을 6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대피시간 6분을 지킬 수 있는 역이 전체 역의 66%밖에 안된다. 비효율적인 승강장-대합실-외부 통로 디자인으로 대피시간이 길게는 1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안전디자인이 처음부터 고려되지않았고 이런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유감이다”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위급상황 시 사람들이 대피명령 사인을 제대로 읽고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안전디자인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사람들이 선로를 따라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실제 모든 역 선로 입구에는 ‘출입금지’와 ‘비상구’ 사인이 동시에 붙어있다. 위급상황 시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든 피해자들이 연기로 인해 유도등을 볼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피난유도 사인시스템의 형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연기 속에서는 노란등이 가장 잘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비상구 표시는 주로 녹색이다. 참고로 국제표준은 빨간색이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외에도 지하철 내부 발광사인의 위험성, 소화전의 위치, 비상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연과 공존, 피해경감을 위한 정보보급과 디자인의 역할
일본 니케이 비즈니스 퍼블리케이션(Nikkei Business Publication)의 시니어 편집장을 맡고있는 타케히코 카쯔오는 지진, 분화가 빈번한 일본의 재해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타케히꼬는 “일본은 자연재해 형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 워낙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다보니 이 부분은 어느 국가보다 잘 발달한 것 같다. 따라서 자연재해를 인지하고 미리 대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처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전달하는 것을 디자인의 역할로 정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해에 관련된 디자인은 재해의 피해를 줄이는 디자인, 재해가 일어났을 경우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 72시간을 생존하게 하는 디자인, 재해 후 복구로 분류된다. 타케히꼬 편집장은 두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방재디자인연구소는 재난방지정보 커뮤니케이션을 일반화하자는 취지의 연구소로, 행정기관과 디자이너가 협업해 설립됐다. 필요한 교육을 개발하고 컨텐츠를 가시화해 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를 겪기 전 대책을 세워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홍수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최대침수 높이를 미리 알려주었다. 또 최대침수 높이만큼의 실을 잘라 각 가정에 나누어주고 벽에 붙여놓을 수 있도록 권장했다.실제 홍수가 나면 그만큼의 물이 찰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물건은 그 위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 캠페인은 홍수의 위험성을 각인하고 대피장소와 통로를 미리 알려주는 기회가 됐다”는게 타케히꼬 편집장의 말이다.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72시간을 스스로 버텨야 한다면 어떨까? 타케히꼬 편집장은 일본의 ‘The second aid’ 키트를 소개했다. 이는 재난방지 키트로 72시간동안 필요한 식료품과 도구들이 들어있다.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제공하고 있는데 실제로 2011년 3월 대지진당시 지역주민들이 유용하게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타케히꼬 편집장은 “재난당시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 역시 디자인의 역할이다. The second aid키트처럼 필요한 것들을 미리 파악해 사람들이 미리 구비하게 하는 모든 과정이 디자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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