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은 객원연구원] 인도의 전체 인구 12억명 가운데 25%인 3억명이 극빈층이다.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경제적 요소 외에도 박애주의 사상과 마하트마 간디의 신탁사상(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부 중에서 최소한을 제외한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신탁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국가와 지역을 위해 사용해야한다는 사상)이 인도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어 인도에서 활동중인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활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해 왔다. 하지만 지난 4월을 기점으로 인도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하 CSR)이 전면적인 전환기를 맞이했다. CSR 활동이 법제화된 것이다.

인도 기업부 장관은 “회사법 제정 이후 지난 60년간 자발적 CSR 개념 정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CSR은 더 이상 자선활동으로만 인식돼서는 안 되며 발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인도정부의 법제화 작업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2009년 ‘기업사회책임 자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데 이어 2011년 기업의 CSR 활동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기업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2012년 12월 하원을, 2013년 4월 상원을 통과한 개정안은 올 4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개정된 인도의 회사법 제135조에 따르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대상은 회계년도 순자산이 5억루피(약 88억원) 이상이거나 총매출 10억루피(약 175억원) 이상 또는 당기 순이익5000만루피(약 9억원) 이상인 기업이다.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순이익의 2% 이상을 사회적 책임 활동에 지출해야한다. 입법과정에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기업에 벌칙을 부과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지만 현재는 미이행시 그 사유를 공시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있다. 인도 현지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에게도 예외란 없다.

개정 회사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사회에 대한 규제다. 회사법에 따르면 기업의 CSR 활동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 감독하는 권한은 CSR 위원회에 있다. 이 위원회는 최소 3인의 이사진(공기업 기준, 사기업은 최소 2인)으로 구성돼야 한다. 특히 ‘이사 1인은 인도에 182일 이상 체류한 거주자여야한다‘는 까다로운 조항 때문에 현지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기업들은 거주이사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인도 기업법에 명시돼있는 영역은 극빈층 근절, 교육 사업 및 교육여건 개선, 성별 격차 해소 및 여성인권 보장, 아동 사망률 감소 및 산모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포함한 각종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 환경보호 활동, 취업지원을 위한 직업교육 지원 활동, 사회적 기업 지원 활동, 인도 정부가 설립한 CSR 관련 펀드에 기부 등 9가지다.

인도의 회사법에서는 CSR의 대상, 방법, 영역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EU의회가 종업원500인 이상 기업에 대해 비재무적 사항 공시를 의무화한 지침과 상반된다. 유럽의 개별국가들을 포괄하는 EU에서 발의했다는데 의의가 있지만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를 밝히는 방법은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했다. 인도의 기업법과 차별성을 지닌다.

2011년 6월 개정안 발의때 인도 기업들은 ‘터무니없는 법률’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기업들이 이 조항에 적응하고있다. 한 국가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 경영, 혹은 지속가능 경영을 실천하는 수준은 CSR 활동을 법률에 명시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오랜 준비 끝에 CSR 법제화를 성사시킨 인도를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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