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으로 고통을 겪을 때마다 으레 등장하던 성금모금 현장을 보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가 실종자 수색이 계속되는 현재진행형임을 감안하더라도 예외적 현상이다. 참사 초기 일부 연예인이나 기업인들의 개인적 기부가 뉴스로 소개됐지만 그마저도 이젠 소식이 끊겼다.

세월호 참사가 던져주는 사회적 함의가 가볍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가 어떻게 초래됐고, 앞으로 무엇을 바꾸고,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할지 깊게 고민하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본다. 특히 성금모금 혹은 기부행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기부가 어떻게 쓰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참사 초기 개인들의 성금 기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성금모금 반대 움직임이 퍼져나갔다. 한국PD연합회는 당시 ‘세월호 성금은 시기상조’라는 성명서를 통해 “참사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세월호 사고 유가족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에서 모금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들의 성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보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거나 ‘천안함 성금 일부가 지휘관과 참모의 격려금 및 회식비에 사용됐다’는 일부의 의혹제기에 뿌리를 두고있긴 하지만 성금모금이 과거처럼 언론의 판벌이기에 휩쓸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 이처럼 성금모금을 둘러싼 사회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뭔가 큰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은 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필요한 예산도 미리 짜놓는데 그 쓰임새를 들여다보면 대개 기부금이다. 거꾸로 보면 언론이나 비영리기구(NPO)들은 기부를 얼마나 했느냐를 두고 그 기업이 사회공헌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판단한다. CSR의 본령이 기업경영의 핵심전략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우리 사회의 인식수준은 여전히 기부금 타령에 머물고있다는 의미다.

이제 기업의 기부는 적당한 모금단체 골라 돈과 물품을 건네는 단순기부에서 벗어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기부, 국가적 재난을 극복하는데 힘을 보태는 기부가 돼야한다. 이러려면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에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내고 언론에 이름을 알리는 대기업집단이 먼저 변해야한다.

대부분의 CSR 모범사례들이 미국 유럽등 선진국 기업들에 집중되듯, 기부에서도 커피전문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를 눈여겨볼만 하다. 스타벅스는 지난 2011년부터 ’미국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자’(Create Jobs For USA)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스타벅스가 거액의 기부금을 먼저 내놓고 매장방문 고객들이 기부금을 보태 미국내 낙후지역의 지역밀착형 금융회사인 ‘지역개발금융기관’(CDFI)들에 기부한다. CDFI들의 전국조직인 ‘기회금융 네트워크’(OFN)가 최근 낸 리포트를 보면 캠페인으로 그동안 1520만달러를 모았고 이를 지렛대로 CDFI들이 지역내 중소기업에 대출해준 규모가 1억600만달러에 달했다. 낙후지역 중소기업들이 자금지원으로 회생한 덕분에 5000명이상의 미국인들이 새로 일자리를 갖거나 기존 일자리를 잃지않게됐다고 한다. 기업의 기부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 캠페인에서 목격한다.

미국의 NPO인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United Way Worldwide)의 브라이언 갤러거 회장은 지난달 국내의 한 강연에서 “기업 자선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회경제의 변화가 빨라졌기에 잘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건강관리기업 ‘유나이티드 헬스그룹’(UHG)의 케이트 루빈 부사장은 코스리와 인터뷰에서 “기부는 UHG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서 핵심이다. 우리가 살고, 일하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우리만의 차별점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기부는 우리가 익히 보아온 기부와 많이 다르다. 기부 자체가 아니라 기부 이후, 그 너머를 고민하고 실천한다.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공부문은 시스템 전면개혁에 착수할 것이다. 기업은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들을 깊이 고민하고 시민사회와 함께 해법을 실천에 옮겨야할 때다. 이미 예산을 짜놓은 기부를 그 수단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새 시스템을 만드는 고차원의 기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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