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사옥. 제공 : 남양유업
남양유업 사옥. 제공 : 남양유업

[미디어SR 이승균 기자] `맛있는 우유`, `아인슈타인`, `초코에몽` 등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유가공품 제조기업인 남양유업이 57년만에 오너 경영을 끝내고 한앤컴퍼니에 매각됐다. 남양유업은 사실상의 과점 시장에서도 ESG 경영에 실패하면 회사가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하나의 교훈으로 남게 됐다.

1964년 홍두영 창업주가 설립한 남양유업은 60년에 가까운 업력에도 불구하고 갑질, 비방, 조작 등 부정적 꼬리표를 남긴 채 매각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IB업계에 따르면 한앤컴퍼니는 최대주주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의 지분을 포함한 의결권 있는 보통주 37만8938주(53%) 등 경영권 일체를 3107억원에 사들이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남양유업은 홍 창업주가 분유 사업에 집중해 사세를 키워왔다. 1970년대 건강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온 남양은 분유시장을 독점해 왔다. 건강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아인슈타인 우유, 불가리스 등 여러 히트작을 내며 유가공품 분야 의 매출을 늘려갔다.

2000년 이후 분유 매출의 일시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제품과 음료부문 투자를 강화해나갔다. 사업구조 개편에 성공해 분유 및 유가공 시장에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유가공 시장이 설비투자와 브랜드, 유통망의 진입 장벽이 높아 사실상 반독점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2009년 남양유업은 연 매출이 1조원을 넘기며 기업인 '1조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유가공품에 전념하며 맛있는 우유, 아인슈타인 우유 판매 호조로 2009년 1조 89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두 번의 기회, 끊이지 않는 논란

하지만 가파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남양유업은 2011년부터 각종 논란거리에 휘말리게 된다. 당시 치즈 제품값, 우유·요구르트값 등 담합 건으로 인해 100억원대 과징금 처벌을 받게 된다. 게다가 부당 광고와 대리점 제품 강매 등 불공정 행위가 다수 적발되며 여러차례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2013년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소비자들에게 남양유업이 '비도덕적인 기업'이라고 부정적 낙인이 찍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후 남양유업제품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내림세로 돌아선다. 2012년 불매운동 이전 매출은 1조 365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2013 매출은 전년 대비 9.9% 하락한 1조 2228억원에 그친다.

가맹점주에게 협박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본사 영업사원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녹취록은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불매운동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쟁사 제품을 비방할 목적으로 카세인나트륨 등 첨가물이 해로운 것처럼 홍보를 하는 등 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임신할 경우 퇴사를 압박하거나 여직원이 결혼할 경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 차별 이슈는 남양유업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직격탄이 되고 만다.

2014년 역시 전년 대비 6.35% 매출이 하락하며 어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이때부터 이미지 쇄신 등을 위해 남양 분유 임신·육아교실, 뇌전증 환아를 위한 특수 조제식 후원 등 기존의 사회공헌 활동은 물론 연탄봉사 활동, 모아사랑 태교음악회 등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사회공헌에 주력하게 된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일시적으로 매출이 회복되기도 했다. 국내 분유 판매량이 늘고 중국 분유 시장의 성장에 따른 매출 증가와 판관비, 마케팅 비용 감축의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늘어난 1조 2150억원, 2016년에는 1.9% 증가한 1조 239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2018년에는 사회적책임(CSR) 위원회를 구성해 갑질 회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대리점과의 상생, 영업문화 개선 그리고 소비자 정책까지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두고 활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19년 상반기 남양유업의 광고대행사가 매일유업 등 경쟁사를 대상으로 우유에 쇠 맛이 난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와 맘 카페를 중심으로 허위 비방글을 집중적으로 게시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사의 원유를 납품하는 목장이 원전 근처에 있고 우유에서 쇠 맛이 난다는 글은 남양유업의 홍보대행사에서 50개의 아이디로 수십 개의 비방글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의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며 불매운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맘 카페를 언론조작의 창구로 이용하면서 남양유업이 주력 소비자층인 맘 카페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심화했다. 남양유업 제품 불매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지난 3월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ESG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 제공 : 남양유업
남양유업은 지난 3월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ESG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 제공 : 남양유업

CSR에 ESG까지 온갖 위원회 무용지물

결국, 남양유업의 매출은 2018년부터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어 2020년 948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지 11년 만에 다시 1조원 이하로 매출이 축소된 셈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3월 ESG 추진위원회를 출범해 친환경 Green 경영이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환경부의 탈 플라스틱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2018년 CSR 위원회에 ESG 위원회까지 발족했음에도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불매 운동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불가리스가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취지의 연구 결과 발표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주가 조작 목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쏟아지면서 남양유업이 경찰 수사까지 받는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이 비등점을 향햐 들끓자 홍원식 회장은 지난 5월 서울 논현동 남양유업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양유업 회장직 사퇴와 함께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창업주 일가가 국내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에 경영권을 모두 넘기는 것으로 가업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분야 전문가들은 남양유업이 무늬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익명의 CSR 컨설턴트는 미디어SR에 "기업이 CSR를 공급망 관리와 마케팅 등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 사회공헌으로 인식해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 CSR 담당자는 "오너 일가가 공정한 거래 관행, 마케팅 관행을 안착시키기 위해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확립시켜야 함에도 CSR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몰이해로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남양유업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2016년 지배구조 D 등급을 부여받기도 했다. D 등급은 7단계 평가 등급 중 가장 낮은 점수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당시 710개 상장사 중 29개(4%) 기업에 D등급을 부여했다.

이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사회공헌 활동과 ESG 관련 위원회의 설치 등을 반영해 남양유업의 2020년 지배구조 평가 등급을 B+ 등급으로 상향했다. 하지만 ESG 위원회가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매각되면서 남양유업은 ESG경영을 위한 조직만 만든 채 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오너 리스크 해소 기대감에 주가 급등...매각 이후 과제는?

남양유업 오너 일가의 몰락은 기업들에게 ESG 경영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다. 투자자들은 홍 회장이 울먹이며 밝힌 그의 사퇴 소식을 오너리스크 해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 3일 남양유업 종가는 33만1000원에 불과했으나 홍 회장의 사퇴와 매각 소식이 알려지자 한달여만인 6월 10일 종가는 58만9000원으로 78% 가까이 급등했다.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강한 매수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3일 이후 해당 기간 외국계 투자자들은 24.3%에서 20.2%로 4% 이상 보유 지분을 줄였으나 오히려 기관 투자자들은 매수에 나섰다. 한앤컴퍼니가 기업 지배권을 확보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면 성과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원식 회장의 사퇴 이후 장남인 홍진석 상무는 최근 보직 해임으로 이사회 사내이사직도 내려놓게 됐다. 오너 일가 가운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자는 홍 회장의 차남인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주가 상승과 함께 인수 기업인 한앤컴퍼니의 이사회 구성과 ESG 경영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홍 회장의 측근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완전히 바뀌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남양유업이 폐쇄적인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지 않으면 논란은 구조적으로 지속해서 발생할 것"이라며 "사모펀드 매각 완료 이후에는 소비자 신뢰 회복 이슈 외에도 매각 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된 낙농업계의 처우와  등이 주요 쟁점 사항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가공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매각 마무리 이후 지배구조와 함께 ESG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임원제도 도입 등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환경·사회공헌 분야에 있어서도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컴퍼니 관계자는 “(한앤컴퍼니는) 기업 인수 후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며 기업 가치를 높여왔다”라며 “적극적인 투자와 경영 투명성 강화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받는 남양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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