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넥슨 노조.
사진. 넥슨 노조.

4일 판교 넥슨 본사에서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의 1인 릴레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사측이 임직원 16명에게 3개월 간 강제적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자 노동조합이 반발하고 나선 모양새다. 

이번 대기발령 대상자는 사내 1년 이상 ‘장기 전환배치 대기자’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장기 전환배치 대기자’는 다른 말로 사내 구직활동자다. 우리나라의 모든 게임회사 개발 인력들은 정규직임에도 불과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

게임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려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팀 단위로 이뤄지는 사내 면접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퇴근 후에도 공부와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는 공공연한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다.

넥슨은 강제 대기발령 대상자에게 3개월 간 통상 임금의 75%를 지급하고, 같은 기간 총 200만원의 교육비를 지급할 방침이다. 대기발령 대상자는 3개월 후 회사에 복귀해 전환배치 팀에 소속되며, 임금 역시 100% 지급된다.

넥슨 측은 이날 미디어SR에 “대기발령 대상자는 3개월 후 채용면접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회사에 다시 합류하게 된다”며 “불합격자는 다시 전환배치팀에 소속되며 임금 역시 100% 지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넥슨 관계자는 이어 “임금 75% 지급은 임금 삭감이 아니라 휴업수당에 해당하며, 이번 대기발령과 전환배치에 사직을 권고하거나 지속적으로 급여를 삭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라고 해명했다.

사진. 넥슨 노조.
사진. 넥슨 노조.

하지만 사내 장기 전환배치 장기 대기자에게는 ‘저성과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난 2월 넥슨이 발표한 ‘전 직원 연봉 인상’에서도 이들은 제외됐다.

넥슨 노조 구성원 A씨는 “장기 전환배치 대기자는 1년 동안 업무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낮은 성과를 받아 지난 2월 시행된 ‘전 직원 연봉 인상’에서도 제외됐다”며 “업무에 참여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채 임금이 2단 너프된 것”이라고 말했다. '너프(nerf)'는 상황이나 조건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으로, 게임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넥슨 관계자는 전환배치 대기자의 인사평가에 대해 “개인에 따라 전환 배치 기간이 짧을 수 있고 길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그간 참여한 프로젝트와 새로 지원한 프로젝트가 많이 달라 대기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기존 팀에서 하던 업무와 새로 지원하는 팀에서의 업무와 유사성은 개인의 역량보다는 직군에 따라 갈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캐주얼한 메이플스토리 IP의 일러스트 작업과 실사 화풍의 V4 IP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업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대기발령 대상자 가운데 대다수는 예술 직군인 것으로 확인됐다. 넥슨 노조측에 따르면 넥슨의 경우 직무 재배치와 직접 연계되는 사내 교육프로그램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넥슨 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 측은 성명을 통해 “대기발령 명령에 앞서 직군의 따른 특성화된 교육훈련 시스템, 공개 의무배치, 리소스 지원팀 등보다 나은 방안이 있었다”며 “'성과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사측의 발언은 업무 환경 조성의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배수찬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 지회장. 사진. 넥슨 노조.
배수찬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 지회장. 사진. 넥슨 노조.

다음은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과의 일문일답

넥슨은 비교적 고용 안정이 보장된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릴레이 시위에 나선 까닭은?

"사실 다른 국내 기업에서는 프로젝트 드랍(중단)과 권고사직이 병행되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사직 통보를 당일하는 기업도 여럿 있다. ‘그나마 넥슨이 좋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꽤 된다. 따라서 ‘기회를 많이 줬다’는 회사의 입장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애초에 주어져야 할 건 ‘일’이었다. 회사는 전환배치 이후 새 프로젝트 합류에 실패하면 직무가 주어지지 않는 부조리한 구조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대기업에는 통상적으로 저성과자를 위한 직무 교육 프로그램이 있지 않은가

"일반 대기업의 저성과자 직무 교육은 특정 인원을 대상으로 한 별도 커리큘럼으로, 이를 이수하면 현업 복귀 및 재배치가 보장되는 개념이다. 반면 넥슨의 사내 교육프로그램은 강좌 형식에 가깝다. 교육을 수료한 다음에도 이를 직무와 연계하려면 다시 공부해야 한다."
 

회사측은 올해 대규모 채용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올해 초부터 공개 채용에 소극적이고, 내부 채용에 활발했던 기조가 바뀌었다. 사내에서 ‘이제 내부 채용을 안하려는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 노조는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내부 전환배치 대기자의 기회도 늘어나길 바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공개 채용에 반대하지 않는다."

업계에 퍼진 고용 불안정이 창작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게임회사에서 개발자가 뭔가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난 뒤, 그에 대해 ‘이것은 실패다’라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다. 이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좋지 않은 평가가 그대로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이것은 별개로 봐야한다. 전자는 인정할 수 있지만, 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고 본다."

이번 고용불안정 이슈와 관련해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회사의 부조리가 아니라 게임 업계 모두의 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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