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시중 금융사, 유니콘 육성 프로그램 가동 중

금융권 올해만 스타트업 양성‧육성에 약 1조원 투자

단순 투자 넘어 '상생'을 위한 실질적 지원 방안 필요

사진. 이미지투데이.
사진. 이미지투데이.

[미디어SR 김병주 기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을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일컫는 말)의 마중물을 자처하는 국내 금융사들의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자체적인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과 차별화된 시스템을 마련해 금전적 투자부터 업무공간‧재무회계‧경영 등 회사 업무 전반의 핵심 영역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편적인 지원 보다는 그들과의 ‘상생’에 초점을 맞춤 프로그램 마련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다수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 정책은행들은 각 사 고유의 정체성을 담은 유니콘 육성 프로그램 및 투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IBK기업은행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첫 투자 대상으로 씨에이랩을 선정하고 투자를 완료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이하 SAFE)은 글로벌 스타트업의 메카로 손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투자 방식이다. 기업가치 산정이 어려운 창업초기사업에 우선 투자하고,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에 따라 먼저 투자한 투자자의 지분이 결정된다.

미국 실리콘밸리 내 많은 초기 스타트업이 이 같은 방식의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하면서 상당수 국가에서 SAFE와 유사한 투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ASA(Advanced Subscription Agreement), 프랑스의 AIR(Accord d’Investissement Rapide), 캐나다의 LEAF(Lean Equity Alternative Financing)가 SAFE와 유사한 방식의 투자 기법이다. 국내에는 지난해 8월 벤처투자촉진법 개정과 함께 처음 도입됐다.

기업은행의 SAFE투자 첫 대상 기업인 씨에이랩은 공기질 예측 시뮬레이션과 독자적인 필터설계를 기반 환기‧청정 제품 개발 기업이다. 올해 상반기 기업은행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IBK창공’ 혁신기업으로 선발돼 창업육성 프로그램 지원을 받고 있다. 씨에이랩은 이번 투자자금을 회사 운영 및 신제품‧기술 개발에 사용할 계획이다.

서울시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전경. 사진. IBK기업은행
서울시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전경. 사진. IBK기업은행

특히 이번 기업은행의 SAFE투자가 주목받은 이유는 ‘혁신적 투자 방식’이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투자 실행으로 까지 이어진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SAFE투자는 기업가치 선정이 어려운 창업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까닭에 SAFE 투자자들은 일단 투자를 진행한 후, 향후 회사가 기업가치 산정을 통한 ‘정식투자’를 받게되면 그때 SAFE투자 규모에 따른 회사의 주식을 받게 된다.

그런 까닭에 SAFE투자는 ‘창업자 중심의 투자방식’으로 분류된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기업가치 선정, 나아가 별다른 성과가 도출되기 이전부터 안정적인 자금 수혈이 가능하다. 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결정에 필요한 별다른 수치적 기준 없이 오로지 ‘잠재력’만 봐야하는 이른바 ‘깜깜이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정책은행 중 한곳인 기업은행이 SAFE투자에 나서면서, 유니콘 탄생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SAFE투자의 활성화에도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방식의 다양성과 빠른 의사결정, 역동적인 스타트업 투자 환경 조성 등 장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창업 초기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가치 산정이 어려워 신속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잠을 감안해 신속한 SAFE투자로 혁신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은행 뿐 아니라 국내 상당수 금융지주사, 은행, 증권사들도 유니콘 육성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은 자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신한 스퀘어브릿지’를 통해 글로벌 IT기업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 조직 ‘구글 캠퍼스’와 협업을 맺었다. 이를 통해 양 측은 인천 신한스퀘어브릿지에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스마트 시티 엑셀레이터’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게 된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스퀘어브릿지의 운영 노하우와 구글의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 결합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천 스타트업파크’ 공식 오픈 행사에 참석한 조용병(왼쪽에서 일곱번째) 신한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신한금융
‘인천 스타트업파크’ 공식 오픈 행사에 참석한 조용병(왼쪽에서 일곱번째) 신한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신한금융

이밖에 하나금융그룹은 자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하나원큐 애자일랩’ 11기에 참여할 스타트업 16곳을 선발했고, 우리금융도 스타트업 협력 프로그램 ‘디노랩’ 2기 참가희망기업을 모집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금융사들이 스타트업 지원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단편적 투자 및 지원 보다는 ‘상생’을 위한 실질적 협력이 더욱 요구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디어SR이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발표한 올해 사업계획을 분석한 결과, 금융권 발(發) 스타트업 투자‧지원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국내 5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NH농협)가 계획한 올해 스타트업 지원 규모는 총 2000억원에 달한다.

공공의 성격이 짙은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도 정부의 뉴딜 정책, 스타트업 육성 기조에 따라 수천억원 규모로 투자를 대폭 늘려가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내부에서는 투자 규모의 증가와 함께 스타트업 대상의 지원 방식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분출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금융사가 운영중인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단순한 업무 지원 이상의 실질적인 협업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가 ‘초기기업과의 상생’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상기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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