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이재용, 부당합병·회계부정 첫 재판

강대국 반도체 패권 다툼 속 총수 부재 삼성전자

한미 백신 스와프 위기…사면론 카드 꺼내들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다정 기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법원에 출석한 것은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된 지 94일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는 이날 오전 10시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은 작년 10월과 지난달 열린 2차례의 공판 준비기일 끝에 열리는 첫 정식 재판이다. 공판기일은 앞서 두차례 진행된 공판준비기일과는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있어 이 부회장이 직접 참석해야 한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2015년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교환하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합병 후 지주사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하면서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합병 과정에서 미래전략실 주도로 제일모직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고자 거짓 정보를 유포하고 허위 호재를 공표하는 등 회사 차원의 불법행위가 있었고, 이 부회장이 중요 사항을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앞으로 재판을 통해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이번 사건이 주가, 회계조작 여부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최종 판결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 리스크’ 계속…이재용 사면 공감대 확산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이지만 여전히 ‘사법 리스크’에 옭아매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과 백신 확보,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적절한 대응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 부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격화되고 있는 반도체패권 전쟁의 격랑을 넘기 위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이 필요하다”고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두 번째 호소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대한민국은 코로나19와의 방역 전쟁뿐 아니라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코로나19와의 경제 전쟁에 이 부회장을 사면이라는 족쇄를 채워 참전시켜 줄 것을 대통령님께 간곡히 읍소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가 지난 1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미중경쟁과 반도체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대동해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종교계도 사면논란에 뛰어들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 협의회는 20일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헌법재판소장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사찰 주지들이 법적 처벌을 받는 재벌 기업인의 선처를 호소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사면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난 12일과 16일에 게시된 청원은 동의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에 동의하는 이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 반도체 패권 다툼 속 ‘홀로’ 표류하는 삼성전자

최근 세계 각국은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도체 내재화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특히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두고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미국에서는 반도체 칩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회의에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를 '핀셋 초청'해 반도체 파트너로 점찍었다.

지난 12일(현지시간)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등 세계적인 반도체·통신·자동차 19개 기업을 불러 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경쟁력을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신규 설비 투자를 계획중이다. 지난해부터 공장 증설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내부적으로 투자에 대해 결정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며 “최근 백악관 반도체 회의와 관련된 입장은 일절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삼성전자는 현재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정상적인 기업경영 의사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장 사장은 최근 “불확실성 시대에 대규모 투자나 인재 영입 같은 것을 해결하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며 “전문경영인들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 반도체전쟁이 발발하자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빈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경쟁사들은 바이든 미 대통령의 투자 종용에 일제히 화답하며 패권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는 이미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 정책에 발맞춰 미국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약 360억달러(한화 약 40조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주 등에 6개 공장 신설 계획을 밝혔다.

인텔은 20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투자에 이어 저가형인 차량용 반도체도 6∼9개월 내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삼성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로 경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자 ‘사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바이든 대통령에 즉각 화답해 공격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자칫 반도체 전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마저 일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은 “반도체 전쟁 속에서 정부는 부처별로 정책이 분산되고, 전쟁터에 나간 우리 대표기업은 진두지휘할 리더 없이 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백신 수급난 속 ‘민간 외교관’ 이재용 부회장 역할론 급부상

최근 글로벌 백신 수급난 속에서도 ‘이재용 역할론’이 힘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마스크 대란 당시 이 부회장은 마스크 원료인 MB필터를 대량 확보하고, ‘K주사기’ 개발과 미 식품의약국(FDA) 긴급 승인에 힘을 보태는 등 다각적으로 지원한 바 있다.

당장 정부가 계획한 오는 11월 집단면역을 위한 국내 백신 비축분의 여유가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자 그동안 글로벌 인맥을 배경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온 이재용 부회장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다음달 하순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한국 정부는 백신을 우선 지원받고 나중에 갚는 개념인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협의하고 있다”면서 “내달 한미정상회담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백신의 미국 내 공급 우선 원칙을 확실히 하면서 현시점에서 백신의 해외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한국이 제안한 백신 스와프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또는 어떤 다른 나라와의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 국내에서의 백신 접종 노력”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정부가 기대하던 '백신 스와프'가 난항에 빠지자 이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다시 한번 ‘이재용 사면론’이 떠오르고 있다.

‘자국민 접종 우선’이라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꺾기 위한 강력한 유인이 필요한데, 가장 확실한 카드가 ‘반도체 투자’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투자를 발표하고, 그 대신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추가 공급받자는 제안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백신 스와프’를 위해 미국과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 장관은 21일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반도체는 미국 측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여러 협력 분야가 있을 수 있다”며 “지금 미국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기업인들이 사면 이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거나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이재용 백신 특사’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위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이후 IOC 위원으로 적극 활약해 평창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면된 2015년 경기 이천에 설립한 최첨단 반도체 공장 M14를 포함해 생산시설 3곳을 국내에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김근식 교수는 “바이든에게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함께 앞으로 삼성전자가 중국에 투자와 판매를 줄이고 당장 미국에 반도체 설미공장을 짓고 투자하겠다고 공식 약속해야 한다”며 “이를 대가로 모더나·호이자 백신의 조기 특별공급을 약속받는 특단의 외교안보차원의 백신확보를 제안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영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백신과 반도체, 한미동맹 귀가 확 트인다”며 “이 부회장을 원포인트 사면하고 하이닉스 최태원 회장도 동행해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 20조가 넘는 반도체 공장 증설을 조건으로 백신 스와프를 이끌어 내라”라고 주문했다.

여당 의원인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익을 생각해 역할이 있으면 (사면이) 필요하다”며 “코로나 사태 등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인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박범계 “사면, 검토한 바 없다”…정부는 ‘묵묵부답’

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국민 여론도 ‘이재용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면 요청 권한을 가진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19일 국회 정치·외교·통일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가석방은 법무부 소관이지만 검토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 장관이 할 일이 아닌가’란 지적에 그는 “검토한 바가 없어 아직 건의할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과거 대선후보 시절 뇌물 등 5대 중대범죄자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격화하는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각계의 요구가 커지면서 특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사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최근 불확실성이 커진 국제정세로 인해 여론의 무게가 급격하게 사면론 쪽으로 쏠리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슬쩍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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