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패권다툼…뒤늦은 한국 참전

美 바이든이 ‘콕’ 찍은 삼성전자, 화답할까?

불확실성 커진 글로벌 반도체업계 우려 ↑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디어SR 김다정 기자]글로벌 반도체 품귀현상 발발된 미국과 중국간 패권싸움 속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끼인 모양새가 된 반도체 업체들은 양쪽의 노골적인 ‘러브콜’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양자택일’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에서는 반도체 칩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 회의에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를 ‘콕’ 초청해 반도체 파트너로 점찍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마이크론, 글로벌파운드리 등 세계적인 반도체·통신·자동차 19개 기업을 불러 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경쟁력을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이 연구·개발에서 뒤처졌는데, 직설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은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일본·유럽 등 반도체 선진국과 협력해 글로벌 밸류체인(공급사슬)을 다시 형성하고 싶다”고 맞불을 놨다.

앞서 3일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중국은 한국 정부에 반도체와 5세대(5G) 이동통신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한 바 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인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사이에 두고 정부 주도로 국가적인 투자를 약속하면서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상반기 중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담은 ‘K-반도체 벨트 전략’을 내놓을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산업”이라며 “세계가 맞이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새로운 도약 계기로 삼아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이 ‘콕’ 찍은 삼성전자, 화답할까?

각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패권싸움의 중심에 놓인 반도체 기업들은 저마다 수지타산에 한창이다.

업계에서는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에선 위기지만, 그만큼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쥘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백악관 화상회의에 참석한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에 파운드리(위탁생산) 신규 설비 투자를 계획 중인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 공격적인 반도체 부문 투자를 약속하면서 오히려 나쁘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50조원에서 70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 백악관회의 이후 급물살 타면서 이르면 다음달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공장 부지는 현재 삼성전자 공장이 가동 중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이 거론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미국 일자리 계획’을 통과 시켜 미국에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투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당신들 모두 및 의회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현지 인프라 확충 요청이 있을 경우 빠르게 관련 로드맵을 가동하며 세제 혜택 등 다양한 편의를 누릴 수 있다.

여기에 경기도 평택캠퍼스 P3 라인에 대한 신규 투자계획도 하반기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P3 공정 건설을 위한 기초공사에 돌입했다. 평택 P3 라인은 공장의 길이가 700m로 P2(400m)의 1.75배에 달한다.

이같은 투자 전망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내부적으로 투자에 대해 결정된 사항은 하나도 없다”며 “다음달 발표할 것이라는 미국 투자 계획 역시 추측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백악관 반도체 회의와 관련한 입장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정상적인 투자 의사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실제로 김현석 삼성전자 CE부문장 사장은 “불확실성 시대에 대규모 투자나 인재 영입 같은 것을 해결하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이라며 “전문경영인들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려를 나타낸바 있다.

이로 인해 최근 미국과 중국 등이 삼성전자에 노골적 투자 요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인텔,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바이든 대통령에 즉각 화답해 공격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자칫 반도체 전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재계와 경제단체를 대표해, 정부에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한 상태다.

사진 : SK하이닉스 제공 
사진 : SK하이닉스 제공 

SK텔레콤 지배구조 개편으로 ‘큰 그림’ 그리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반도체 ‘투톱’을 달리는 SK하이닉스도 반도체 패권싸움 속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SK하이닉스에 우호적인 투자 여건이 조성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지난 14일 AI&디지털인프라 컴퍼니(SKT 존속회사)와 ICT투자전문회사(SKT 신설회사)로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SKT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이번 분할의 취지는 통신과 더불어 반도체, 뉴ICT 자산을 시장에서 온전히 평가받아 미래 성장을 가속화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모기업인 SK텔레콤이 통신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와 투자전문 중간지주사로 기업분할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도 반도체 분야 투자를 위해서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비통신 부문인 SK하이닉스의 경영 효율화, 투자 여건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인수합병(M&A)을 하려면 인수 대상 기업의 지분 100%를 보유해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투자에 제약이 따랐다. SK하이닉스가 M&A로 몸집을 불리기 위해선 해당 기업을 통째로 사들일만한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 이후에도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지주사인 SK(주)의 손자회사로 남게 되지만, ICT투자회사가 SK(주)의 자회사인 만큼 투자가 한결 수월할 것이란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산업이 호황기를 맞은 상황에서 D램과 낸드 사업 경쟁력을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말 열린 주주총회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를 기반으로 D램과 낸드 양 날개를 펼쳐 회사의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10조원 규모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라는 당면 과제가 있기 때문에 당장 공격적인 M&A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는 M&A 추진이 기대된다는 전망이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는 “반도체 시장 개편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어 미국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며 “반도체 생태계 생존을 위해 작은 회사를 M&A 하는 것보다 대응이 중요한데 (코로나19로) 출장이 자유롭지 못해 어려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미·중 갈등에 끼인 글로벌 반도체 업계…TSMC “생산 타격” 우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제재가 아닌 투자를 독려하는 것은 긍정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 패권 경쟁의 신호탄을 쏜 미국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다소 난처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반도체 시장 역시 미국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중국을 국가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압박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상황이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파운드리 업계 1위 대만 TSMC는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TSMC는 지난 16일 발표한 연간보고서에 처음으로 미·중 무역갈등이 핵심 생산 장비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고 생산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TSMC가 이같은 메시지를 연간보고서에 담은 이유는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 램리서치의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TSMC는 “한 국가의 조치나 규제로 인한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국가가 조치를 취하게 되면 자사를 포함한 여러 다국적 기업에 상당한 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이 큰 미국이 제재 등을 통해 중국으로 장비를 넘어가지 못하게 할 경우 한국 기업의 중국 공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와 충칭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만든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주요 시장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이고 균형있는 판단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