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영 소장] “얼마전까지 여러 기업들로부터 서울시내에서 연탄배달 봉사할 곳을 알려달라는 전화가 쇄도해 몸살을 앓았습니다. 사실 서울시내에서 연탄 때우는 가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알려드리려 해도 그럴만한 곳은 이미 연탄배달이 거의 끝났고요. 해마다 이게 무슨 해프닝입니까”

서울지역에서 자원봉사활동 단체에 근무하는 분을 만났을 때 들었던 푸념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외곽단체들도 해마다 겨울무렵이면 늘 겪는 일이라고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활동을 마무리해야하는 기업체 담당자들. 그들 입장에선 사장님을 포함한 임직원들이 골목에 죽 늘어서 연탄배달하는 ‘증명사진’ 하나쯤 필요하단다. 그런데 그게 마땅치않은게 현실이다. 사회공헌을 이런 식으로 해야하고, 그래야 평가받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2013년이 저물어간다. 때마침 많은 신문들이 나눔경영, 사회공헌 등 갖가지 이름으로 특집면을 쏟아내고 있다.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한 유력지를 들여다보자. 기업이름은 빼고 보는게 홀가분하다. ‘희망, 화합, 휴머니티’ ‘희망을 선물하는 기업’ ‘농민과 함께하는 동행’ ‘미래를 키우는 기업’ ‘아이 꿈 키우는 키다리기업’ ‘온정 김치 사랑장터. 나누는 기업문화’ ‘일대일 멘토링 꿈나무 육성’ ‘아름다운 헌혈’ ‘추위녹이는 연탄, 훈훈한 마음도 나눠‘ ’작은 나눔, 큰 희망‘ ’전국 군부대 찾아 창작뮤지컬 공연‘ ’불우이웃에 집수리 봉사‘

올 한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분야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모아 여타 분야처럼 ‘10대 뉴스’라도 정리해보고싶지만 위에 나열한 활동만으로 그게 가능할까. CSR이 중요하다고,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절대적 과제라고 말은 하지만 기업들이 내놓는 성과들은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

반면 미국의 CSR 관련단체들이 정리하는 2013년은 의미있는 진전을 보였다. 올해의 CSR 트렌드를 형성하는 실제 사례들을 보자.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소비자가 쇼핑을 할 때마다 0.5%를 기부하는 아마존 스마일(Amazon Smile) 웹사이트를 최근 런칭했다. 지난 4월 방글라데시 섬유공장 붕괴사고 이후 협력업체 공급사슬의 노동문제가 부각되자 청바지업체 리바이스는 근로환경이 잘 갖춰진 곳에서 생산되는 제품만으로만 라인업을 갖추기로했다. 네트워크장비업체 시스코는 중동지역에서 여성대상의 대학수준 기술교육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미국 통신업체인 스프린트와 버라이즌, T모바일, AT&T는 운전중 문자메시지를 하지말자는 내용의 ‘It Can Wait‘(나중에 해도 돼요!) 캠페인에 공동으로 나섰다. 뉴욕 맨해튼의 명품백화점 니만 마커스가 매년 발간하는 크리스마스선물 안내책자는 소개된 선물이 모두 매진되는 전통을 지녔다. 올해 크리스마스북에는 특히 선물과 기부를 연계한 명품들로 꽉 채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맥도날드는 소비자를 농장으로 초청하는 ‘무엇으로 맥도날드를 만드나’(What Makes McDonald’s)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원료공급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CSR트렌드는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지난주 한 바이오벤처기업을 방문,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CSR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외 사례를 보여주며 기업이 왜 CSR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반응은 무척 다양했다. “그래봐야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전략아닌가” “CSR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나는 마케팅 담당인데, 우리가 뭘 해야할지 알려달라” “우리 제품에 CSR이 녹아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토론을 마무리한 시점에서 이들은 ‘CSR에 대해 몰랐고, 알고나니 그게 회사를 살리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 했다. CSR이 회사 조직에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지난 8월 회사 매출이나 이익의 일정비율을 CSR 활동에 쓰도록 강제하는 회사법이 발효됐다. CSR 활동을 안하면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적당히 흉내내고, 마케팅 기법의 하나로 채택하는 수준이라면 연말 불우이웃돕기 연탄배달과 다를게 없다. 임직원들에게 CSR이 절박한 과제로 여겨지고, 앞으로 생존의 필수조건이란 전제에서 모든 경영활동이 이뤄져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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