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이상 기업 이사회 '동일 성별 금지' 내년부터 적용

지역난방공사, 의무 규정 없이도 이사회 절반이상 여성

S&P 500 소속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28% 육박하기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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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내년부터 대기업은 여성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1명 이상 둬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받게 된 가운데 재계가 ‘여·교·육(여자·교수·60년대생)’을 영입 1순위로 고려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대표 김혜양)는 24일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현황 분석’을 통해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 상위 100개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단 1명도 없는 기업이 70곳이라고 밝혔다.

또 유니코써치는 100대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까지는 5% 정도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20% 정도까지 크게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은 상장사 매출(개별 및 별도 재무제표 기준) 기준으로 했으며, 사외이사 관련 현황은 2020년 3분기 보고서가 기준이다.

2021년 8월부터 국내에서 자산 규모가 2조원 이상인 기업은 여성 사외이사를 1명 이상 두는 것이 사실상 의무화된다.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20에 따라 별도 기준 자산총계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전 구성원을 특정 성으로 채우지 않도록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2년의 적용 유예기간이 내년 8월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재계에 여성 사외이사를 모시려는 영입 열풍이 한창이다. 특히 유니코써치 측에 따르면 ‘여성(女性)이면서 교수(敎授) 출신의 육십(六十)년 이후 출생자’를 지칭하는 ‘여교육(女敎六)’으로 함축되는 이들이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영입 1순위에 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100대 기업 사외이사 441명 중 여성은 고작 35명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내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는 총 441명으로 집계됐다. 400명이 넘는 사외이사 중 여성은 35명(7.9%)이고 남성은 406명(92.1%)이었다. 여성 사외이사의 비중이 7.9%, 한 자릿수에 그치면서 100대 기업 내 여성 사외이사는 10명 중 1명꼴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단 1명이라도 있는 기업도 30개 기업에 그쳤다. 절반이 넘는 70개 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가 전무했다. 여전히 국내 대기업에서 사외이사 영입 시 남성 선호 경향이 팽배하다는 의미가 짙다.

또한 여성 사외이사가 있더라도 30개 기업 중 2명 이상의 여성 사외이사를 둔 기업은 단 4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역난방공사는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가장 많았다. 6명의 사외이사 중 절반인 3명이 여성이다. 삼성전자와 한국전력(한전), S-Oil(에쓰오일)도 여성 사외이사가 각 2명씩 활약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Oil은 사외이사 6명 중 2명(33.3%), 한전은 8명 중 2명(25%)이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돼 있다.

◆50년대생 최다, 성별 관계없이 ‘교수’ 출신 사외이사 선호 경향 뚜렷

전체 100대 기업 사외이사 중에서는 1955년생이 3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5개년 단위로 살펴봐도 1955~1959년 출생자가 128명(29%)로 최다였다.

100대 기업에서 활약하는 사외이사들의 학력은 박사급만 해도 197명으로 거의 절반 수준에 가까웠다(44.7%). 2명 중 1명꼴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정도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한 셈이다. 또 소위 명문대로 지칭되는 SKY(서울·고려·연세대) 학부 대학을 나온 사외이사도 165명(37.4%)이나 됐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106명을 기록해 쏠림 현상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사외이사들의 핵심 경력을 분석해보면 사외이사 선정 시 ‘전문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학 총장과 교수 등 학계 출신이 184명(41.7%)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다. 10명 중 4명이 대학 교수 출신이며 CEO 등 재계 출신이 22.4%(99명), 국세청·금융감독원원·공정거래위원회·관세청·감사원·지자체 공무원 등 행정계 출신이 19.0%(84명) 순이었다.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은 12.2%(54명)로 조사됐다.

◆경향성 지속 시 ‘여(女)·교(敎)·육(六)’ 쏠림 현상

100대 기업의 여성 사외이사 35명 중에서는 1960년대 출생자가 21명으로 절반을 넘어섰고(60.0%), 1970~80년대생도 9명(25.7%)으로 나타났다. 교수 이력을 가진 학자 출신도 20명(57.1%)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유니코써치 측은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올해 신규 선임되는 여성 사외이사는 1960년 이후 출생한 대학 교수거나 교수 출신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최근 기아차에서 사명을 바꾼 ‘기아’는 내달 주주총회 때 신규 승인할 조화순 사외이사 역시 1966년생으로 현재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모비스에서 신규 선임한 강진아 사외이사도 1967년생으로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직을 맡고 있다. 현대차도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 부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둔 상태다. 이 교수는 1974년생이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학자 출신의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들 그룹에서 사외이사 후보군을 찾으려는 경향이 높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100대 기업의 전체 사외이사 441명 중 155명(35.1%) 이상이 오는 3월 말 이전에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내년인 2022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150명 정도가 사외이사 임기만료 예정이다. 올해와 내년을 합쳐 약 70% 수준의 사외이사 자리 변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100대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 5.2%…선진국은 30~40% 의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100대 기업에서 사내이사까지 포함하게 되면 100대 기업의 이사회 총 인원은 모두 756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여성의 비중은 오히려 5.2%로 감소한다. 여성 사외이사 35명에서 겨우 4명의 사내이사가 추가돼 100대 기업 이사회에 진입한 여성은 39명에 그친다. 증가한 4명에는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CEO가 포함됐다.

이는 세계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참 갈 길이 먼 수준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 500개사로 구성된 S&P 500 지수에 속하는 회사들의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28% 수준이다. 스웨덴(24.9%), 영국(24.5%)도 주요 기업 내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대로 국내 기업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은 법률 등에 여성 이사 비율을 40%까지 확대했다. 최근 독일도 3명 이상의 이사회를 구성한 상장 회사의 경우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는 방안에 합의한 상태다.

작년 3분기 기준 한국 100대 기업 중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20%를 넘는 곳은 단 2개 기업밖에 없다. 삼성카드는 이사회 멤버가 총 7명인데 사내이사(이인재 부사장)와 사외이사(임혜란 이사) 총 2명의 여성이 활약하고 있어 이사회 내 여성 비중이 28.6%를 기록했다. 28.6%가 한국 100대 기업 최고치다.

지역난방공사는 27.3%로 두 번째로 높았다. 이외 여성 이사회 비율이 10%대인 기업은 27개에 그쳤다.

이번 조사와 관련해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사회 멤버 중 여성 비율을 높이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성 중심의 이사회가 오랫동안 이어져오면서 자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확대해온 기업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혜양 대표는 “여성 사외이사의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인 거버넌스(Governance)를 투명하게 하고 이사회 조직 운영의 다양성(Diversity)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므로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자산 2조원이 넘는 기업에 한해 내년 8월부터 이사회에서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둘 것을 의무화했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산 2조원이 넘는 기업은 151개로 이들 기업에 기본적으로 1명의 여성 이사가 선임되면 최소한 이사회 내 여성이 150명으로 증가하는 것”이라며 “ESG경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의 경우, 여성 이사를 1명 이상으로 늘릴 수도 있어 대체로 이사회 내 여성 비중이 20% 안팎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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