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도씨, 땅콩집에서 '용도 변경' 인생 살며 ‘다‧쓰‧가’를 꿈꾼다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고 있는 변용도 씨.  사진 권해솜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고 있는 변용도 씨.  사진 권해솜

[미디어SR 권해솜 객원기자] 그는 하는 일이 참 많다. 대부분 은퇴 후 편안하고 한가로운 노년의 삶을 꿈꿔볼 만한데 액티브 시니어가 모이는 곳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다.

1년여 넘는 언택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노인 우울증에 대한 우려 섞인 뉴스가 무색할 정도다. 요즘 그는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이 넘쳐난다는 '액티브 시니어' 변용도 씨.  빌딩 숲을 벗어나 그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 소재 땅콩집을 찾아 대화를 나눴다. 

변용도 씨는 소위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로 통한다. 시니어 대상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의 고정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을뿐 아니라 사진작가 출신으로 시니어들에게 스마트폰 카메라 사용법 등을 가르치는 교관 역할도 한다.

그가 6년째 출강 중인 우면종합사회복지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원활하게 강의는 못 하지만 재임용돼 계약을 마쳤다. 최근에는 (사)한국생활연극협회의 이사가 되면서 연극 분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저 자신을 소개할 때 사진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포토스토리텔러’라고 합니다. 1998년 네띠앙 시절부터 ‘촌놈의 세상보기’라는 문패를 달고 블로그를 연재했습니다. 꾸준히 하다보니 2011년에는 대한민국 100대 우수 블로그에 선정되기도 했죠. KBS아침마당에 출연도 하고, 계속해서 뭔가를 하며 살아가는 시니어로 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사진기 활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드리고 있어요. DSLR는 비싸기도 하고 사진에 별 취미가 없는 시니어에게는 와 닿지 않아요. 대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활용법을 알려드리죠. 많은 분들이 그 좋은 스마트폰을 사서 기능의 5%만을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이런 저런 활용법을 설명해드리면 좋아들 하시죠.” 

"지식의 사회 환원, 다 쓰고 간다. 저는 그것을 ‘다쓰가’로 표현합니다. 거창할지 모르지만, 저의 생활 철학이죠". 변용도의 씨의 미소 뒤에는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짙게 배어 있는 듯 하다.  사진 권해솜
"지식의 사회 환원, 다 쓰고 간다. 저는 그것을 ‘다쓰가’로 표현합니다. 거창할지 모르지만, 저의 생활 철학이죠". 변용도의 씨의 미소 뒤에는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짙게 배어 있는 듯 하다.  사진 권해솜

IMF바람 맞고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을 살다

그는 젊은 시절 쌍용화재해상보험에서 부산·경남·제주권 본부장으로 일했으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의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47세에 갑자기 해임되며 인생의 고비를 맞이했다.

청학동 출신으로 대학교 때 상경해 회사에만 있었으니 다른 사회를 맛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막막했다고 한다.

그는 일단 만화방을 열고 생계를 이어갔는데 생각보다 잘 됐다고 한다. 이후 부대찌개 식당도 1년 정도 운영해봤고, 생활정보지 회사 건물의 조경관리사 일도 경험하게 된다. 변용도씨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력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정육식당 점장이었다. 

“생활정보지 회사에 500평 규모 땅이 있기에 회사 간부에게 그 자리에 정육식당을 차리면 좋겠다고 건의했지요. 그랬더니 직접 해보라고 점장을 시켜주시더라고요.”

그는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도 하고, 정치인의 주례사가 잠시나마 금지됐던 틈새시장을 노려 예식장의 전속 주례사로 일하기도 했다. 

“돈이 되는 거라면 물불 안 가렸죠. 그런데 앞뒤 모르고 살던 삶에 제동 거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 절친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했어요. 한 명은 산에 갔다가, 한 명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떴지요.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정말 허망했습니다. 그 시기에 그렇게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소질이 있었는지 입상도 많이 했죠.(웃음).”

그는 환갑 나이에 사진을 배우기는 했지만, 시니어들에게 소개해주고 알려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늘 목표로 삼는다"며 자신만의 인생 철학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식의 사회 환원, 다 쓰고 간다. 저는 그것을 ‘다쓰가’로 표현합니다. 거창할지 모르지만, 생활의 철학입니다. 시니어들을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려고 합니다. ” 

최근 들어서는 온라인 강의도 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적응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줌이나 웹 엑스, 구글 미트 등 다양한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강의를 합니다. 실시간 생방송을 할 수 있는 아프리카TV도 계획 중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간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나는 못 한다’가 아니라 ‘해보면 못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제 경우 사진 찍은 시기가 오래됐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죠. 언택트시대를 살다 보니 또 다시 배울 것이 넘쳐납니다. 시간이 너무 모자란 게 문제일 뿐이죠. 지금 보니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혼자 있어도 너무 바쁩니다. 정말 하루 서너시간 밖에 잠을 못잡니다.”

'나는 못 한다’가 아니라 ‘해보면 못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변용도씨의 생각은 신선하고 도전적이어서 젊은이 못지 않다.  사진 권해솜
'나는 못 한다’가 아니라 ‘해보면 못할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변용도씨의 생각은 신선하고 도전적이어서 젊은이 못지 않다.  사진 권해솜

땅콩집, 코로나19 시대 속 시니어 안전지대

그의 집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의 인적 드문 곳에 있다. 거리상 서울과 가깝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변용도 씨가 서울에서 일을 보고 집 근처 전철역에 내리면 부인 이흥열 씨가 자가용으로 마중 나온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안사람이 이런 곳에서 살아보자고 해서 시작됐습니다. 저는 시골 태생입니다. 나이 들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잖아요. 어린 시절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으니 그나마 비슷한 환경을 찾아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대신 아내가 차로 운전해주고 매니저 역할도 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일명 땅콩집 또는 듀플렉스 하우스(duplex house)라 불리는 집에서 살고 있다.한 개의 필지에 두 가구를 나란히 지어놓은 집으로 2011년 이현욱 건축가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두 집의 모양이 마치 땅콩껍데기 속 두 개의 땅콩이 연상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내가 친한 이웃 부부와 의견이 맞아 같이 집을 짓게 됐습니다. 마침 이웃분이 안사람과 취향이 비슷했어요. 두 사람이 뭔가 힘을 합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건축 비용도 절감하고 도시와 떨어진 곳이니 한집보다는 두 집이 함께 살면 외롭지 않고 좋을 것 같더라고요.”

변용도 씨는 원래 바쁘기도 하고 코로나19 시국이라 아무리 가까워도 옆집 부부를 만나는 게 사실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식사도 같이 하고, 외식도 다녔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보통 때는 텃밭에서 자주 만나죠. 여름에 앞마당에 튜브로 된 수영장을 설치하기도 했죠. 그러면 두 집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변용도 씨의 집은 내부 면적은 넓지 않은 대신 3층으로 높게 지었다. 두 부부 모두 시니어이다 보니 언제 있을지 모를 비상 상황을 고려해 옥탑에는 두 집을 연결하는 통로도 만들어뒀다. 이게 바로 땅콩집의 장점이라는 것이 변씨의 설명이다. 

“혹시나 모를 상황이 발생하면 옥탑을 통해 서로의 집으로 갈 수 있어요. 가령 가스 불이 걱정된다거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장기간 여행을 간다든가 하면 챙겨봐 줄 수도 있고요. 같이 살다 보니 서로 협의를 한 것은 딱히 없지만 그야말로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텃밭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변용도 씨 자신이다. 집 주변을 둘러보면 고향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앞마당에서는 너른 들판이 보이고 철새가 이동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감상할 수 있다. 밤이면 밝게 떠오른 달을 감상하고 사진 찍기에도 너무 좋은 집이다.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것을 좋아해요. 시골 촌놈이라 그런가 봅니다. 주변을 걷기도 하고 스마트폰 들고 다니다가 사진도 찍고요. 자연과 함께하니 건강도 챙길 수 있고요. 아내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스크를 쓰던데 그런 것이 없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이동이 다소 불편합니다만 여기서 얻는 게 큽니다. 코로나시대에 이 곳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사람 많이 모여서 사는 것 보다는 이곳에 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언젠가 기억이 희미해지고 이곳에서 더이상 살 수 없다면 모를까 지금은 땅콩집에서 시니어의 여유를 느끼며 사는 것이 기쁨이라고 그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변용도 씨가 살고 있는 땅콩집. 두 가구가 모여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진 권해솜
변용도 씨가 살고 있는 땅콩집. 두 가구가 모여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사진 권해솜

성공한 시니어의 삶을 살다 

퇴직하고 삶의 안정을 찾았다고 느낄 때까지 변용도 씨는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왔다. 정작 그때는 별로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당시 경험이 인생에 있어 큰 자산이 됐다고 그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생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려고 노력했어요. 우리 세대는 특히 회사 조직 혹은 단체에 묶여 있다 보니까 자신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뭘 할까 생각만 했지 실천을 못 하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안 될 거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해요. 그건 우리 시니어도, 청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은 자꾸 흐르잖아요. 거창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나 뭔가 하나를 정해 집중해보는 게 중요하죠.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그리고 뭔가 한 가지가 수준에 오르면 또 다른 분야도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최근 그가 (사)한국생활연극협회에서 연극을 다시 하게 되고 이사직도 어쩌다 주어지게 됐다. 몇 년 전 '영등포50플러스'에서 극단 활동했던 것을 기억한 지인 추천이 계기가 됐다.

“2월 25일에는 ‘아비’라는 연극에서 1인 2역을 연기합니다.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 덕분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저만을 위해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함께 좋을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분야가 늘었습니다. 당연히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문 두드려보고,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액티브 시니어로 사는 삶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 자신은 과연 만족하고 있을까.

"사는 건 똑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살아가는 목표와 목적이 있기에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는 대답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백세 시대를 살아야 하니, 앞서가지는 못 해도 시대와 발맞춰 살고 싶다고도 했다. 다른 시니어도 그렇게 함께 익어갔으면 좋겠단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마트폰 카메라 활용법에 대해 간단한 설명도 들었다. '알면 이익 , 모르면 손해'라는 말이 금방 떠오를 정도로 스마트폰 카메라에 그토록 많은 기능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영상 편집이 쉬운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연사 촬영 방법, 잘 모르고 사용하는 동영상 버튼 등 그가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차고 넘치는듯 싶었다. 젊은이보다 더 젊은 액티브 시니어의 진면목, 변용도씨의 삶은 그 자체가 자체가 '활력과 열정의 활화산'이었다. 

눈 내린 변용도 씨 집 전경.  사진 제공 변용도
눈 내린 변용도 씨 집 전경.  사진 제공 변용도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