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의 플래그십 모델인 DX800LC.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 라인업 가운데 가장 큰 제품이다. 사진=두산인프라코어 제공
두산인프라코어의 플래그십 모델인 DX800LC. 두산인프라코어 굴착기 라인업 가운데 가장 큰 제품이다. 사진=두산인프라코어 제공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두산인프라코어가 1조원대의 ‘우발 채무’를 부담하게 될 우려를 덜게 되면서 매각 절차가 비교적 순조로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FI(재무적 투자자, Financial Investor) 측은 여전히 동반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 매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인프라코어측은 이에 관해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14일 두산인프라코어와 미래에셋자산운용, IMM PE, 하나금융투자 등 두산인프라코어의 FI 간 벌인 1조원대 소송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11월 소송이 제기된 지 5년 2개월 만의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FI들이 두산을 상대로 낸 매매대금 등 지급 청구소송에서 2심 재판부의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앞서 두산인프라코어는 2011년 회사의 중국 법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설립에 FI들로부터 3800억원(지분율 20%)을 유치하면서 2014년 4월까지 IPO(기업공개)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상황이 악화되면서 기한 내 IPO가 이뤄지지 못했고, FI들은 계약서에 보장된 동반매도청구권(drag along)을 행사해 지분 매각 작업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FI들은 두산 측이 실사 등에 협조하지 않아 매각에 실패했다며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심은 두산인프라코어, 2심은 FI 측이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다시 두산인프라코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가 원고의 자료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성취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소송이 5년 넘게 이어지면서 소송가액은 최대 1조원까지 불어난 상태였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최종 패소해 주식매매대금에 법정이자와 지연이자 등을 전부 부담하게 될 경우 인수 주체가 최대 1조원을 추가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할 뻔 했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가 대법원에서 승소하면서 1조원대의 채무를 부담할 위험을 피하게 됐다. 이에 두산그룹은 예정대로 현대중공업그룹과의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올 상반기 내 인수합병(M&A)를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두산 측은 “불확실성이 해소돼 후속 조치들을 준비해 나가겠다”라며 “(두산인프라코어) 매각과 관련한 딜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측은 주식매매계약 체결 전까지 구체적인 가격 협상을 벌이고 오는 31일까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거래종결 시한이 주식매매계약 체결일로부터 4개월이지만, 당사자 일방의 서면통지로 1차 2개월간, 양 사의 서면 동의로 2개월간 추가 연장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변이 없다면 상반기 내로 매각 작업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매각 작업이 완료되면 중장비 산업에서 현대중공업은 세계 점유율 7위, 국내 점유율 1위로 올라선다.

동반매도청구권 여전히 행사할 수 있는 FI

하지만 FI가 보유하고 있는 동반매도청구권 조항이 변수로 남은 상태다. FI 측은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해 DICC 지분 100%를 제3자에게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 측은 "DICC 소송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예정대로 매각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측도 "DICC 소송 건은 인수 검토 과정에서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예정대로 이달 중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만 재무적 투자자가 다시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 행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FI들이 여전히 동반매도청구권(drag along)을 행사하게 되면 FI들의 지분이 매각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FI 측이 곧바로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산 측 관계자는 15일 미디어SR에 “재판 결과가 어제 나왔는데, FI 측이 벌써 동반매도청구권 행사를 결정했을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지적하면서 섣부른 추측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FI 측이 지분 인수 상대를 알려주는 데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산인프라코어가 FI의 지분을 다시 사들일 필요는 없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물론 FI 측이 여전히 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인프라코어는) 대법원 기준에 따라 매수를 원하는 상대를 알게 되면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기환송심까지 마무리되기 전에 매각 절차가 완료될 가능성이 높은데, 재판 마무리 후에도 FI 측은 지분 매각 시 두산인프라코어와 협의하게 된다”면서 “매각 절차가 완료된 후에는 대주주만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DICC는 지난해 중국에서 10년 만에 굴착기 판매 대수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중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어 매물 가치가 크게 올랐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FI가 자구안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두산 그룹과 재협상을 이어갈 것인지 지분을 매수할 제3자를 모색할 것인지 주목된다.

한편 두산중공업은 꾸준한 자산 매각으로 2조5000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남은 것은 구조조정의 핵심 축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두산솔루스, (주)두산 모트롤BG, 두산타워, 두산중공업 클럽모우CC 등을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두산건설의 경우는 부채 비율을 낮추면서 지난해 9월 협상을 진행했을 때보다 가치가 더 높아진 상태다.

이로써 두산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긴급자금 3조6000억원을 지원받을 당시 약속한 자본확충(3조원) 계획 상당부분을 이행했고, 업계에서도 “산업은행 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높은 자구안 달성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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