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후 2시경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1일 오후 박근혜 국정농단과 관련한 뇌물죄 파기환송심 9차 공판에 출석했다. 지난 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 평가 보고서를 공개해 이날 공판에서는 평가에 참여한 전문심리위원 3명의 견해를 중심으로 특검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 간 공방이 이어졌다.

앞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송영승‧강상욱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첫 재판에서 삼성에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하고, 이를 이 부회장 양형 요건으로 삼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자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고자 다시 준법감시제도를 평가할 전문심리위원단을 선정했다.

전문심리위원단은 특검과 삼성, 재판부에서 각각 1명씩 추천해 구성됐다. 특검은 홍순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을 심리위원으로 추천했으며, 삼성 측은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내세웠다. 재판부는 강원일 전 헌법재판관을 심리위원으로 선정했다.

특검은 "준법감시제도의 도입이 일반 양형인자로서 '진지한 반성' 중 하나에 해당하지만 (이 부회장의) 권고 형량 범위는 특별 양형인자로만 결정된다”면서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이 인정되더라도 이 부회장에게 권고형량 범위인 징역 5년 이하의 형을 선고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횡령 범죄의 경우에는 가중 요소로 대량 피해자를 발생시킨 경우, 범행 후 은폐시도 등 무려 7가지 사유가 존재하는 반면 감경 사유로는 진지한 반성 인정되더라도 3개에 불과하다

지난 공판에서 공개된 3명의 심리위원들의 준법감시위에 대한 평가는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성이 최고 경영진 의지에 달렸다”는 점에는 의견이 모아졌으나 구체적으로는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 측에 따르면 총수 관련 전문심리위원단의 9개 평가 항목 가운데 강 전 헌법 재판관은 2개 항목에 '미흡', 6개 항목에 '다소 미흡' 평가를 내렸고, 홍 회계사는 9개 항목 모두 '미흡'하다는 평가를 했다.

홍 회계사는 “최고경영자의 법률 위반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준법·윤리경영이 실효적으로 작동한다면 최고경영자도 직원들과 동일한 조사 과정과 책임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준법위와 준법감시조직이 모니터링 체계를 세우지 않았고, 준법위 예산 배정 중단이나 사무국 직원 보직변경을 막을 실효적 방안이 없어 지속 가능성도 확신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이 지명한 김경수 변호사는 "준법감시위 출범은 근본적인 구조 변화의 하나로, 진일보임이 틀림없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판부가 선임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준법감시 조직이 강화된 면이 있다"면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사건 관련 준법감시조직에 의한 사실 조사가 없었고, 고발된 임원에 대한 조치도 소극적이어서 최고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강 위원은 관계사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때 대외적 공표나 위원 총사퇴 등의 압박 수단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준법감시위에 대한 유보적인 의견을 내놨다.

특검은 이에 "개별항목 평가 결과를 보면 강 전 헌법재판관과 홍 회계사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최종적인 판단을 고려하더라도 강 전 헌법재판관은 긍정이라기보다는 다소 유보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검 측은 "결국 재계 서열 1위, 대통령과 윈-윈(Win-Win)관계인 삼성그룹의 총수가 무서워할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YES라고 답변할 상황은 객관적이며 통상의 지능을 가진 사람 중에는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점검 항목에 한정해 긍정 및 부정 평가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으로 종합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면서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은 O·X 문제같이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이 부회장측 변호인단은 이어 "미비한 점은 원인이 무엇이고 보완책은 무엇인지 등 전체적인 사항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면서 “전체적인 평가내용을 보면 적어도 피고인들과 삼성은 약속을 실제로 이행했고, 준법감시제도를 통해 개선된 내용은 재판을 위한 허울 좋은 껍데기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변화로,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재판부는 결심 공판을 오는 30일로 예고하면서 준법감시위에 대해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더라도 여러 양형조건 중 하나”라고 지적한 뒤 "이 사건은 피고인도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된 위법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다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며 "피고인들은 재판 결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최종변론을 준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이날 공판에 앞서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양형 참작 요소로 반영하면 안 된다며 오전 11시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의 공명정대한 판결을 요구한 바 있다.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비대위원장 김재하)을 비롯해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한국노총, 한국YMCA전국연맹 등 9개 단체가 참여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 단체는 "준법감시제도가 최고 의사결정자의 하부 기구이므로 제도보다 상위에 위치한 기업 최고 의사결정자의 위법 행위를 감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 총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 내부에 설치된 준법감시제도건, 계열사 간의 협약에 의해 개별 회사 외부에 설치된 준법감시위원회건 예외 없이 총수의 의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재판부 의도는 알겠으나 준법감시위나 전문위원 모두 법적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결국 지배구조 개선에 구속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번 재판부의 주문이 결국 이 부회장에게 면죄부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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