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전문가 등 2146명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제공
학계·전문가 등 2146명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제공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정부와 여당이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두고 노동시민단체와 경제단체가 17일 총력전에  나섰다.

 30개 경제단체는 16일 중대재해법 제정을 중단해달라며 공동성명을 냈고, 각계 전문가 2000여명과 34개 청년단체,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17일 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대재해법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보다 사업주 및 법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법이다.

산업재해 발생을 감소시키기 위해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참고해 발의된 법안이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 사건의 여파로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도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30개 경제단체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은 모든 사망사고 책임을 일방적으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돌리는 법”이라면서 “그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법 제정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30개 경제단체들은 16일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전무.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30개 경제단체들은 16일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전무.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들 경제단체는 중대재해법이 사고 예방이 아닌 기업인의 책임 처벌에만 주력해 기업활동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에는 없는 형사처벌까지 담고 있어, 처벌 수준이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중대재해법은 사실상 과실범에 대해 2~5년 이상을 하한형으로 징역형을 부과하고 3~5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부과하고 있다"며 "해당 법안은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도 중대하게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도형 회장은 "경영책임자의 의무는 관련 법령들에서 안전·보건 등과 관련한 의무규정을 포괄하도록 정한 것"이라며 "입법 기술적 측면에서 적정하며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법이 산재예방 효과보다는 기업들의 투자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만약 중대재해법이 제정된다면 기업들의 CEO와 원청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산업안전보건활동을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중형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떨칠 수 없으며, 오히려 과감하고 적극적인 산업안전 투자와 활동을 하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17일 미디어SR에 “현재 산업안전법과 형법으로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법 적용이 잘 되지도 않고 처벌받더라도 굉장히 경미한 처벌로 끝난다”면서 “현행 법으로는 위하력(범죄 억제 효과)이 전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2005년부터 꾸준히 OECD국가 중 산재사고사망률 3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권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산재사망사고나 산업법 위반에 대해서 평균 벌금이 450만원에 불과하며 사업주가 해당 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경우도 드물고, 징역형도 3~4%대로 굉장히 낮은 형편이다.

이 같은 현실을 종합하면 권 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산재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경제단체 및 기업들이 사실상 악선전을 하고 있다”면서 “산재사고에 대해 법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유럽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과연 유럽의 경제와 기업이 망했나”라며 경제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

경제단체의 거센 반발에 시민단체와 각계 전문가들도 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17일 학자·전문가 등 2100여명이 모여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산재와 참사의 피해자들을 만나며 기업이 법을 위반한 결과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도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이 비극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간절한 마음으로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청년유니온, 청년참여연대,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민달팽이유니온,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등 전국의 34개 청년단체 역시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청년노동자가 더 이상 일하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도 "1980년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은 지금까지 40년 동안 적용됐지만, 산재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며 "조직이 나서서 같이 위험을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달 들어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으나 계류 중인 관련 법안만 3개다.

입법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으나 아직 시행시기, 사업주와 법인의 책임범위, 다중이용시설 등 시민재해 적용 여부, 공무원 처벌 대상 포함 여부 등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쟁점 사항을 중심으로 무제한 토론을 진행한다.

정의당은 전날(1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에 반드시 담겨야 하는 4가지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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