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며 가끔씩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을 주제로 토론수업을 이끈다. CSR을 처음 듣는 학생이 다수인데, 과연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있을까. 매 학기 어김없이 듣는 얘기들은 이렇다.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는게 존재이유다. 이익을 내지못하는 기업까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건 너무하다. 이익을 많이 내야 기부하고, 사회공헌도 많이 할게 아닌가”
“기업이 왜 사회에 책임을 지나? 국민으로부터 세금 거두는 정부가 해야할 일을 기업에게 강요하면 그게 자본주의인가”

많은 기업들, 특히 글로벌 마켓을 무대로 활동하는 대기업일수록 사회책임 활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적지않은 자금을 쓴다. 이들의 CSR 활동은 대개 ‘나눔과 자선‘으로 묘사된다. ’착한 기업‘, ’따뜻한 기업‘을 표방한다. 일간신문마다 특집으로 실리는 사회공헌, 나눔 기사들에서 CSR 활동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않는다. 쪽방촌 연탄배달, 연말연시 이웃돕기성금, 노숙자 밥퍼주기 등 현장마다 기업 CEO들이 얼굴을 내민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 혹은 신생기업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정은 더하다. 당장 창업 첫해를 넘겨 생존해야하고, 대기업 협력업체로 분투하는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은 ‘돈을 좀 벌고난 다음에 한숨 돌리고 생각할’ 주제로 여긴다. 그러니 학생들의 시선도 이 수준에 멈춰있는게 당연해보인다.

사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면서 CSR은 많이 익숙해졌다.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는 기업들은 지속가능한(Sustainable) 발전을 이룰 수 있고, 그런 기업들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 더 나은 성과를 얻는다고 알려져있다. ‘투명경영’과 ‘아름다운 동행’이 CSR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이 존경받고, 그렇게 향상된 기업이미지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왜 CSR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먼 얘기, 생색내기 홍보소재쯤으로 취급받고있을까. 대기업에서 사회공헌을 담당하는 임직원들이나 중소중견기업의 경영자들을 만나면서 그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들의 공통된 인식은 ‘CSR은 기업생존과 직접적 연관에 없다’는 것이다. 생존이 우선인 기업들로선 그와 무관해보이는 CSR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뜻 자체가 그렇다. CSR의 C는 기업이다. SR 즉,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의 주체는 바로 기업이란 얘기다. CSR을 언급하면 늘 기업만 괴롭힌다는 피해의식을 목격한다. 매출 많이 올리고, 이익 많이 내서,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해마다 직원들 급여도 올려줘야하는 기업들에게 부담, 혹은 책임을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CSR이 영어의 조합인만큼 생활속 용어로 자리잡긴 쉽지않다. 그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로 바꿔보는건 어떨까. C의 기업은 법인(法人)이니 인격을 부여해 시민(Citizen)으로 부르고, S의 사회(Society)는 우리가 발딛고있는 지구(Planet)로 확대해보자. CSR은 기업시민이 지구를 위해 마땅히 할 일쯤으로 볼 수 있겠다.

지구를 지키려면 환경도 보전해야하고, 지구온난화도 대처해야한다.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개발행위에도 관심을 가져야하고, 개발도상국의 아동노동을 비롯한 불법노동행위에도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물론 세금도 잘 내고, 소비자도 보호해야한다.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면서 걸치는 모든 영역에서 기업시민으로서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지않은가. 그래서 CSR안에는 사람(People), 지구(Planet), 이익(Profit)등 3P가 핵심가치 혹은 목표로 들어있다고 한다.

이익을 많이 낸 뒤 기부하고, 기업이미지 높이려는 온갖 활동은 홍보일뿐이다. 홍보팀이 잘 하면 될 일이다. 기업경영전략 전체에 CSR이 스며들게 하는 건 기업 최고위층의 몫이다. 한국의 CSR은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을 바꿔야 제 길을 찾을 수 있다. CSR은 기업경영의 장식품이 아니라 경쟁력의 원천이자 생존의 조건이다.

손동영 한국SR전략연구소(코스리) 소장, 배재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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