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에서 트렌드(Trend)라 부를만한 현상은 흔치않다. 트렌드는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시작해 어느 순간 거대한 물결로 다가오고 기업경영 전반을 휩쓰는 위력을 지닌다. 유행을 놓친 기업은 한순간 후회하지만 트렌드를 놓친 기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곤한다.

우리 경제계에서는 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CSR이나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며 핵심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CSV가 몇 년전부터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사회공헌, 윤리경영, 사회책임경영, 동반성장, 지속가능경영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마다 이름이 다른만큼 생각도 다르다. 가고자하는 방향은 대충 알겠는데 도대체 왜 그래야하는지, 구체적으론 뭘 해야할지 모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있다. 흔히 CSR은 낡고 편협한 개념으로, CSV는 좀더 새롭고 멋진 틀로 이해한다. 지난 2006년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와 비영리컨설팅회사 FSG의 창업자 마크 크레이머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How to reinvent capitalism)’란 논문에서 CSV 개념을 내놓자 우리 학계나 기업계는 일제히 CSV로 몰려들었다. 포터 교수의 주장대로 CSR은 ’기업이 경영활동으로 이익을 낸 뒤 그 일부를 떼어 좋은 일에 쓰는 것‘으로, CSV는 ’경영활동 기초단계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토록 노력해 타사 대비 경쟁우위를 얻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돈 번 기업이 사회를 위해 조금 기부하는 것과 경영활동 초기부터 사회를 생각하고 경쟁력도 함께 키우는 것 사이에 간극이 크다. CSV가 우리 사회에서 전지전능한 경영혁신 도구로 인식되는 이유다.

그러나 둘은 같은 얘기다. CSR이든, CSV든 본질은 하나다. 경제주체는 크게 기업과 가계, 정부로 나뉜다. 이 가운데 기업이 주체가 돼 사회에 책임을 지는 실천행위가 바로 CSR, 혹은 CSV다. CSR을 ‘자선활동‘수준으로 격하시켜온 우리 기업들이 CSV라는 새 용어에 휩쓸린 것이다. 어떤 용어가 됐든 기업이 왜 사회에 책임을 져야하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있게 풀어줘야기업에 속한 직원들이, 경영진이 진심을 갖고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

‘돈만 많이 벌수 있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자유방임경제도 아니니 지금 세상에 이렇게 말했다간 제대로 대접받기 힘들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 ‘하지말아야할 일’과 ‘해야할 일’이 있다고 보는게 요즘 상식이다. 바로 CSR과 CSV의 출발점이다.

흔히 기업가들은 창업해 일자리 만들고, 이익 창출하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게 자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을 냈으니 사회에 대해 할 일을 정부가 하란 뜻이다. 그런데 지금 트렌드는 기업에 그 부담까지 나눠 지자고 한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사람에 이롭고, 지구에 이로워야한다는 뜻에서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 장애를 지닌 사람 등 취약계층을 위한 자선에 머무를게 아니라 우리가 발딛고 선 지구도 책임져야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있다. 기업의 생산활동으로 발생한 온실가스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대표적이다. 해법을 기업에서 찾자는게 요즘 자주 보는 탄소관련 규제, 태양광 발전, 폐기물 제로 등 움직임이다.

사실 CSR이나 CSV는 이해관계자를 위한 현실적 비즈니스다. 특히 공유가치는 사회와 커뮤니티에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보완하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기업들로선 핵심 이해관계자들, 고객, 직원들과 최선의 관계를 구축하려는 진심이 필요하다. 참고할 사례는 외국에 많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허쉬(Hershey)는 지난해 조달한 코코아 원료 가운데 18%를 국제기구인증 제품으로 충당했다. 2020년까지 모든 제품에 열대우림협회(Rainforest Alliance)가 인증한 농장에서 생산되는 코코아만 100% 사용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인증 코코아는 노동과 환경, 지속가능한 농업 등 측면에서 국제적 표준을 지키고 외부감시자의 검증도 받는다. 허쉬는 전세계에서 코코아를 재배하는 모든 가족과 공동체가 보다 나은 삶을 누리도록 코코아산업을 돕겠다고 한다.

벨기에의 세계적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는 역삼투압 방식 등 물 절약 기술을 사용, 2011년부터 3년간 올림픽수영장 24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의 물을 절약해왔다. 미국내 통신업계 3위인 스프린트(Sprint)는 지난해 자발적 수집 프로그램으로 440만대의 휴대전화를 재활용했다. 고객이 사용한 휴대전화를 최대 300달러까지 주고 되삼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패션업체 버버리(Burberry)는 최근 그린피스의 디톡스(Detox) 캠페인에 동참, 제조판매중인 모든 제품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추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제품의 질을 높이면서 지구환경보전에 동참하려는 노력이다.

모두가 자기 업종을 특성에 맞춰 책임활동을 실천하며 공유가치를 만들어낸다. 따로 이익을 사회에 ‘기부’하지 않고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사회의 많은 이슈를 해결하는 셈이다.

뉴욕시는 올해부터 음식물 쓰레기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한다. 뉴욕시 5200여 가구에 난방을 제공하는데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 약 9만톤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이는 거리에 있는 자동차 약 1만9000대를 없애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공공부문도 기업 못지않은 노력으로 폐기물과 온실가스 배출 감축, 비용절감 등 여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사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의지다.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자면 재벌총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 이 활동이 기업 경영전략의 기초가 돼야하며 그 과정에서 따라올 리스크를 감수할 의지를 가져야한다. 활동이 구체적인 결실, 경제적 실익으로 연결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기다려줄 인내심도 필요하다. 단순히 이익낸 뒤 조금 떼어내 남을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기에 인력배치나 업무 프로세스, 성과보상시스템 등 전반에 걸쳐 혁신이 선행돼야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당장 돈이 안되는 곳에 돈을 쓰라는 주문이다. 그래도 해야한다. 앞선 글로벌기업들의 예에서 보듯, CSR과 CSV는 이제 그 기업의 본질이 됐다. 좀 더 영속할 기반을 갖췄다는 뜻이다. 우리 기업들도 그런 길을 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