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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올해 국내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수는 전년과 비교해 60명 가량 감소했으나 여성 임원 수는 오히려 40명 정도 늘어났다. 여성 임원이 1명이라도 있는 기업도 절반을 넘어섰다.

여성인력의 활용을 강조해온 故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는 여성 임원만 50명 이상으로 단일 기업 기준 최다 여성 임원 수를 기록했으며 2위 기업의 여성 임원 수보다도 2배 이상 많아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대표 김혜양)는 ‘2020년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현황 조사’ 결과,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숫자가 지난해 반기 기준 244명에서 올해 286명으로 증가했다고 3일 밝혔다.

유니코써치는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및 지난해 반기보고서의 임원 현황 자료를 참고했으며, 등기‧미등기임원을 모두 포함한 기준이지만 사외이사와 비상근 임원은 조사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오너가(家)도 조사에 포함됐다.

조사 결과 올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은 1년 새 17.2%로 급증한 가운데 전체 임원 수는 지난해 6932명에서 올해 6871명으로 61명 감소했다. 불황 속에서도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을 적극적으로 중용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나타났다.

100대 기업의 전체 임원 중 여성 임원의 비중도 지난해 3.50%에서 올해 4.16%로 0.66%p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율이 10%에도 한참 못 미쳐 유리천장은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유리천장이 아직은 견고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 국내 대기업 임원 중 상당수가 기술 및 연구 인력으로, 이공계 출신임을 고려하면 여성 임원 및 인재의 육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고등학교 때부터 이공계 내 여성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직까지 일과 가정의 양립, 육아 등의 문제로 남자 임원을 선호하는 문화도 잔존하고 있으나 여성 인재의 적극 등용은 시대적 흐름인 만큼 이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최근에는 비슷한 역량의 남녀를 놓고서는 여성 임원을 뽑으려는 추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추세는 여성 임원을 보유한 100대 기업이 60개를 기록한 데서도 파악할 수 있다. 여성 임원을 1명이라도 보유한 기업 수와 그렇지 않은 기업 수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대기업 내에서 여성 임원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더라도 여성 임원을 늘리려는 분위기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 속도는 다소 더딘 편이다. 연도별 여성 임원 보유 기업 수는 2004년 10곳에서 2010년 21곳으로 조금씩 증가해온 이후 2011년 30곳, 2016년 40곳, 2019년 56곳을 기록하면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연도별 여성임원수 변동. 자료. 유니코써치
연도별 여성임원수 변동. 자료. 유니코써치

100대 기업 중 전체 여성 임원 숫자는 지난 2004년 당시만 해도 13명에 불과했으나 2006년 22명을 시작으로 2010년(51명)→2011년(76명)으로 증가했다. 2013년에는 전체 여성 임원이 114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여성 임원 100명 시대를 열었다.

이후 2015년(138명)→2016년(150명)→2018년(216명)→2019년(244명)으로 늘었고, 올해도 280명대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유니코써치는 지금과 같은 여성 임원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1년에 100대 기업 여성 임원 300명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파악한다.

삼성전자, 故이건희 철학에 따라 여성 임원 등용도 1등

1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을 최다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다. 55명의 여성 임원이 활약하고 있어, 공동 2위를 차지한 네이버와 CJ제일제당의 여성 임원 수 17명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2명에서 5명을 늘렸고,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4명에서 3명을 늘렸다.

아모레퍼시픽은 반대로 지난해 16명에서 올해 15명으로 작년 대비 1명을 줄였다. 현대차(13명‧5위), 삼성SDS(11명‧6위)도 여성 임원을 10명 이상 보유한 기업으로 꼽혔다.

이 중에서도 현대차의 여성 임원 질주가 돋보인다. 현대차는 작년 기준 4명에 불과하던 여성 임원이 올해는 9명으로 나타나면서 배(倍)이상 증가했다. 특히 올해 정기보고서에서 이름을 올린 임원들은 대다수가 1970년대생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니코써치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젊은 여성들을 적극 중용해 현대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이후 임원 반열에 오른 새내기 임원은 중 1970년대생은 8명 정도다. 대표적으로 김철연 네이버 책임리더, 노미정 삼성전자 연구위원, 오정화 아모레퍼시픽 상무, 이수진 삼성SDS 상무 등이다.

학부 기준 출신대학별로 살펴보면 이화여대를 나온 여성 임원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장 많았다. 작년 29명에서 올해는 36명으로 증가했다. 이어 연세대(19명), 서울대(17명) 순으로 여성 임원을 다수 배출했다.

기업별 여성임원 수. 자료. 유니코써치
기업별 여성임원 수. 자료. 유니코써치

이 중 22명은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심 삼성SDS 부사장(파리 제6대학 전산학), 안정헌 LG화학 수석연구위원(휴스턴대 화학), 신해진 아모레퍼시픽 상무(플로리다주립대 교육공학), 고혜진 삼성생명 상무(노스캐롤라이나대 통계학), 정효주 네이버 책임리더(워싱톤주립대 생물통계학) 등이 박사 학위까지 받은 대표적인 여성 핵심 인재군에 속했다.

이번에 조사된 100대 기업 여성 임원 286명 중 비오너가(家)이면서 사장급 이상 타이틀을 달고 있는 주인공은 네이버 한성숙(1967년) 대표이사 사장이 유일했다. 차기 사장급 1순위 후보군에 있는 부사장급(부사장 대우 포함)은 8명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민희경(1958년) CJ제일제당 부사장과 이영희(1964년) 부사장 2명만 임원 경력이 10년을 넘어 사장 승진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부사장은 지난 2007년부터, 민 부사장은 지난 2012년부터 그룹 내 임원으로 발탁됐다. 향후 두 임원 중 누가 먼저 사장으로 승진할 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삼성 고(故) 이건희 회장은 생전 시 여성 사장도 나와야 한다며 여성 인재 중용론을 펼쳐왔다. 하지만 비오너가 출신 여성이 삼성 핵심 계열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달 25일 별세했다. 2021년 임원 인사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끝내 이루지 못한 여성 사장의 꿈이 현실화 될 수 있을 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한편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올해 100대 기업에서 임원 수를 줄이는 가운데서도 여성 임원을 크게 늘렸다는 것은 경영진을 중심으로 기업에서 여성이 갖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회사 가치와 실적 향상을 꾀하겠다는 강한 메시지가 응축된 것”이라며 “향후에는 업종에 상관없이 여성 임원을 더 많이 전진배치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표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이어 "중견기업으로 갈수록 국내에서 여성 임원으로 승진할 만한 후보군이 두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아직까지는 외부에서 여성 임원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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