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및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 모습. 사진. 구혜정 기자
지난 9월 중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및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 모습.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잇따른 택배기사의 과로사 소식에 택배업계들이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다. 27일 업게에 따르면 한진의 경우 업계 최초로 심야배송을 중단한다고 밝혔으며 롯데택배도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은 택배사들의 대책 추진 과정이나 이행률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절차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롯데택배의 대책 발표...노조는 ‘꼼수’라 비판, 전국 총파업 돌입

먼저 롯데택배는 분류지원인력 1000명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대리점 및 택배기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분류지원인력을 각 집배센터별 작업특성과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롯데택배는 전 집배센터에 ‘상하차 지원금’을 단계적으로 지원하고, ‘페널티 제도’를 폐지해 소속 택배기사의 물리적·심리적 부담을 덜기로 했다.

하지만 택배노조 측은 “현장에서는 상하차비용의 부담주체가 명확히 택배업체로 정착돼 있는데, 이를 사실상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했다”면서 “이는 명백히 롯데의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갑질’로서 택배기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핵심 내용에 해당한다”고 반발했다.

게다가 27일 롯데택배 노조 측에 따르면 서울 송파의 경우 배송 수수료가 2017년 968원에서 2020년 825원으로 지속 삭감됐으며, 경기나 지방도 비슷한 수준으로 삭감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태완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장은 미디어SR에 “수수료 삭감은 사실상 택배노동자로 하여금 임금 보전을 위해 배송 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모는 것”이라며 “결국 (수수료 삭감은)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초과 노동과 과로를 조장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롯데 측의 대책 발표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외면하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태라고 꼬집은 셈이다. 

이에 이날 롯데택배 노조는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에 돌입한다. 이번 총파업에는 전국 각지의 약 250여명 롯데택배 노동자가 동참하며, 어제(26일)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파업 결의에 대해 92.4%의 투표율, 98.8%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

노조는 “롯데택배 노동자의 배송 수수료 삭감은 본사의 적극 개입에 따른 결과”라며 “롯데택배는 충북 진천 메가허브터미널, 영남권 물류통합센터를 건설하면서 창립 이래 최대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택배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투자비를 쥐어짜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진택배, 업계 최초 ‘심야배송’ 중단

한진택배는 26일 택배노동자의 과로 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발표했으며, 업계 최초로 다음달 1일부터 심야배송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일 미배송 물량은 다음날 물량으로 배정된다.

앞서 지난 12일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선정릉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김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평소 심야배송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오전 4시를 넘긴 시간에 귀가길이라며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가 업무 강도를 짐작케 해 회자되고 있다.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 사진. 구혜정 기자
지난 19일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 사진. 구혜정 기자

이에 한진택배는 지난 20일 사과문을 발표해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택배기사분들의 과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진이 발표한 개선 방안은 크게 2가지로, △업무 강도 및 시간 축소와 △택배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다.

택배 노동에서 택배를 분류하는 작업은 업무 시간과 강도를 높이는 주된 원인으로 꼽혀왔다. 이를 줄이기 위해 한진은 구체적으로 △심야 배송 중단 △분류지원인력 투입 △자동 분류기 도입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심야 배송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는 업계 최초다. 한진은 이에 따라 배송이 집중되는 화‧수요일의 물량을 주중 다른 날로 분산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택배기사들의 노동강도가 특정일에 편중되지 않게 하면서 수입은 기존 대비 감소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다.

또한 설날, 추석 등 물량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필요 차량 증차 및 인원을 충원할 계획이다.

한진택배 관계자는 27일 미디어SR에 “대량 발주 주문 중에서는 급하지 않은 물건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분류해) 택배 물량이 분산될 수 있도록 고객사와의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통상 당일 할당받은 물량을 (택배 기사들이) 당일 내에 소화해야 했지만 그같은 제도를 없애 노동 환경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이 회사 차원의 비용 부담을 보장하면서 10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투입하겠다는 발표도 전향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진은 전국 사업장 및 대리점 환경에 따라 분류지원인력을 다음달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분류시간 단축을 위해 오는 500억원을 들여 자동 분류기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오는 2021년부터 적용 가능한 터미널이 우선 대상이 된다.

이를 통해 아침 분류시간을 1시간 이상 단축,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강도를 덜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나아가 2023년까지 택배부문에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효율적인 네트워크 운영 및 집배송 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다.

한진은 앞서 3000억원을 투자해 대전에 메가 허브 터미널을 구축했다.

한진은 이를 통해 택배기사가 배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갖춰간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한진택배는 택배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 모든 대리점에 산업재해 보험 가입 현황을 조사해 가입률을 높이고 심혈관계 검사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매년 실시하기로 했다.

택배를 트럭에 싣고 있는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사진. 구혜정 기자
택배를 트럭에 싣고 있는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사진. 구혜정 기자

택배업계 잇따른 지원책 발표했지만...과로사 대책위 “이행률 적극 감시 필요"

지난 22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는 잇따른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직접 대국민 사과문과 이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CJ대한통운은 500억원을 들여 40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투입하고, 산재보험 가입률을 높이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27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4000명의 분류지원인력을 투입하는 데 있어 절반의 비용만을 부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완 과로사 대책위원장은 미디어SR에 “현재 CJ대한통운이 일선 대리점들에 절반의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대리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선 지사를 통해 대리점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택배업계의 대책 발표가 이어지고 있으나 이같은 대책이 실제로 추진되는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검증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 부회장이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CJ대한통운 제공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 부회장이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CJ대한통운 제공

또한 김태완 위원장은 미디어SR에 “당일배송 강요를 중지하고 한진 측이 추가 분류인력 투입에 회사 측의 부담을 명시하는 등의 대책은 진일보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대책 이행의 구체적인 계획 등을 명시하지 않고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면 이같은 대책도 흐지부지 될 수 있다”고 큰 우려를 표했다.

CJ대한통운의 과로사 방지 대책을 시작으로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뒤이어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는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국내 3대 택배회사들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을 막론하고 제기된 택배기사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이슈 제기와 여론 악화에 대해 더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택배노조 측은 “이들 택배회사의 발표문에 공통적으로 ‘단계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됐지만 대책 이행을 다음달에 할 건지, 내년에 살 건지 등은 전적으로 택배사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택배노조는 “택배회사가 뒤늦게나마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발표내용을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입안하고 과정마다 검증하는 절차와 이같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진택배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회사가 대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만큼 그에 응당한 책임을 분명히 이행할 것"이라면서 "당장은 전국 대리점 등에 추가 인력이 효율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택배기사들의 근무 강도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택배노조 측은 이를 위해 택배사와 대책위,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만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사회적 기구는 현재 논의가 좀더 필요한 단계”라면서 난색을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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