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1인용 모빌리티, 카셰어링(Car-Sharing, 차량 공유)서비스 등 모빌리티(Mobility)와 관련된 기업들이 분주하다.
모빌리티를 제조, 판매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동’과 관련된 각각의 기업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개방형 혁신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모빌리티?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논란이 됐던 타다 서비스부터, 최근 주요 시가지를 중심으로 급속히 늘어난 공유 킥보드(혹은 자전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모두 스스로를 ‘모빌리티 기업’이라고 부른다. 모빌리티(Mobility)의 사전적 의미는 ‘이동성’이다.
다만 스타트업(UP) 업계에서 주로 사람의 이동을 편리하게 만드는 각종 서비스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이던 ‘모빌리티’가 최근에는 점차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처럼 모빌리티를 ‘이동 서비스’라고 해석하게 되면 기존의 ‘교통’, ‘운송’ 등의 단어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모빌리티’를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모빌리티가 사람의 이동과 IT기술을 결합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인해 업무 환경 및 일상생활이 비대면 방식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외출을 한다. 누구든, 목적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이동’을 하고 있으며, 이용자의 숫자가 폭발적인 곳은 필연적으로 ‘플랫폼’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내포한다. 모빌리티도 마찬가지다.
공유자동차 서비스를 예로 들면, 서비스 운영‧제공자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동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가면 사람의 이동과 함께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동‧제공도 가능하고, 수요자와 공급자를 이어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은 자동차 자체가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도 가능하다.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도래하면 사용자를 거치지 않고도 자동차 스스로 이동하면서 사람과 상품, 그리고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빌리티 빅뱅’에 대비하는 기업들, 자동차업계부터 급변
플랫폼으로의 성장 가능성으로 인해 기업들은 앞다퉈 모빌리티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제조업에 속하는 현대차는 새로운 이동 수단과 함께 이를 활용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IT 기업으로도 변모하고 있으며, 드론과 개인 이동수단이 크게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주유소의 경우 이동수단을 매개하는 장소로서 플랫폼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모빌리티를 둘러싼 업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 가운데, 가장 빠르게 모빌리티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지난해 12월, 2025년까지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 솔루션 기업’으로의 재탄생을 예고했다.
그 일환으로 현대차는 지난 2월부터 약 3개월 간 이같은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은평구 뉴타운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고 오는 10월 실제 KST모빌리티와 실제 서비스 운영에 들어간다.
셔클은 마을버스와 택시를 결합한 듯한 서비스로, 인공지능(AI)을 통해 정해진 노선 없이 여러 승객에게 최적 경로의 여정을 제공하는 혁신형 라이드 풀링(Ride Pooling) 서비스다. 이용자가 반경 약 2km의 서비스 지역 내 어디서든 차량을 호출하면 11인승 대형승합차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최적 경로를 따라 운행한다. 택시처럼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탈 수 있는 대신 제한된 범위 내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이용하는 커뮤니티형 서비스인 셈이다.
이같은 서비스는 현대차가 연구‧개발한 ‘실시간 최적경로 설정(AI Dynamic Routing)’ 기술 덕분에 가능하다. 모바일 앱과 전체 운영 시스템을 포함한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 패키지를 구축해 오는 10월부터 운영에 돌입하고, 현대차는 셔클 서비스를 시작으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서의 솔루션을 더욱 고도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기아차도 카셰어링 서비스 ‘위블(WiBLE)’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멀티모달(Multi-Modal) 형태로 제공할 계획이다. 멀티모달은 대중교통, 카셰어링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조합해 사용자의 이동 편의성을 최적화시키는 모빌리티 서비스 방식을 가리키며, 특정 구역에서 자유롭게 차량을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
2018년 스페인 최대 에너지 기업인 랩솔(Repsol)과 합작사 형태로 설립한 서비스는 편의성 덕분에 현재까지 회원 수 17만명에, 일 평균 이용 3000건, 다운로드 30만 건에 달하는 등 스페인 최고 수준의 카셰어링 사업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제조업체의 변신은 해외에서 훨씬 더 일찍 시작됐다. 메르세데스-벤츠로 유명한 다임러는 카투고(Car2go)라는 카쉐어링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자체 제작한 차량인 ‘스마트 포투(Smart ForTwo)’라는 2인승 차량을 해당 서비스에 공급한다. 중국의 공유 자전거 업체인 모바이크 역시 공유자전거 서비스에서 사용되는 자전거를 자체 제작함으로써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 품질을 동시에 높였다.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드론… 진화하는 모빌리티
현재 국내 퍼스널모빌리티 시장은 스윙, 킥고잉, 카카오티바이크, 일렉클 등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플랫폼 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개인형 이동 수단인 퍼스널 모빌리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퍼스널모빌리티 이용건수는 117만3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5만4000건)보다 무려 362% 급증했다. 이용금액 또한 20억원으로 전년(5억3000만원)보다 280%나 늘어났다.
보편화 단계에 이른 퍼스널모빌리티에 이어 현대차는 하늘을 달리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구현을 목표로 개인용 비행체(PAV·Personal Air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Purpose Built Vehicle) 등을 연구‧개발하는 중이다. 개인용 비행체가 상용화 될 경우,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현실화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변화는 드론의 발전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드론 제조업체인 네온테크는 도심 외곽에 ‘드론 스테이션’을 구축한다고 10일 발표한 바 있다. 현재까지 드론은 사람의 이동을 가능케 하지는 않았으나, 현대차가 개발할 ‘PAV(개인용 비행체)’는 이같은 드론과 비슷한 네트워크를 통해 사용자와의 거리를 좁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앞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정부는 2025년까지 도심항공교통 상용화 서비스를 개시한다는 내용을 담은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로드맵’을 40여개 기업과 함께 지난 6월 발표했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향후 5~15kg의 중량을 탑재하는 물류‧카고용 수소연료전지 기술에서부터 100~200kg의 고중량을 탑재하고도 중장거리(100~400km) 비행이 가능한 대형 수소연료전지 기술까지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곧 현대차가 개발 중인 ‘PAV’와 겹쳐 보인다.
다 받아줄게… 다양한 모빌리티 끌어안는 주유소
주유소는 새로운 모빌리티를 끌어안고 재탄생한다. 에쓰오일은 주유소에서 공유 전기자전거인 ‘일레클(elecle) 대여와 배터리 충전 및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모빌리티와 관련한 신사업을 추진한다. 주유소 유휴 공간에 전기자전거 주차, 대여, 반납을 위한 ’일레클존’을 운영하고 배터리 충전과 정비 등 협력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GS칼텍스도 전동 킥보드 충전이 가능한 주유소에서 전기자전거로까지 발을 넓힌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전기자전거 충전‧정비 등의 인프라 서비스를 확보해야 하고, GS칼텍스는 주유소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기회를 물색하고 있는 가운데 양사의 필요와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GS의 경우 자회사인 GS엠비즈를 통해 전기자전거 정비 서비스도 제공한다. GS칼텍스는 지난해 전동 킥보드 공유 업체인 라임과 파트너십을 체결, 전국 주유소에서 전동 킥보드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바 있다.
주유소, 이게 끝이 아니다...‘종합 모빌리티 서비스 거점’으로 진화
모빌리티 산업 지형이 다양해지면서 주유소는 더 큰 변화에 직면한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 주유소 수는 약 1만1511개로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된 후 점차 하락세에 있는 공급 과잉 상태다. 도시 외곽과 지방을 중심으로 점차 주유소가 줄어들고 있는데다 코로나19로 인한 유가 파동까지 겹쳐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고, 장기적으로는 대체에너지에 자리를 뺏기는 형국에서 GS칼텍스는 ‘종합 모빌리티 서비스 거점’으로서의 주유소로 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존 주유소 내 대체 사업은 카페, 패스트푸드 전문점, 편의점 등으로 임대 수익으로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향후 보편화할 전기차나 수소차 충전을 통해 가격을 차등화하고, 모빌리티 서비스의 거점을 맡게 된다면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 경우 에너지원이 바뀌더라도 ‘거점’으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강하다는 게 미래형 주유소의 핵심이다.
이같은 현실을 고려해 GS칼텍스는 지난 7월 LG화학을 비롯해 시그넷이브이, 소프트베리, KST모빌리티, 그린카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린카‧KST 모빌리티는 전기차를 운행하고, 시그넷이브이는 전기차 배터리 충전기를 보급한다. 전기차 운행과 충전 과정에서 모은 데이터는 LG화학에 제공돼, LG화학이 안정성 등을 분석하면, 분석 데이터를 운전자에게 전달하는 어플리케이션 서비스는 소프트베리가 맡는 식이다.
특히 GS칼텍스는 충전소 역할과 함께 정비소 역할까지 노린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전기차 충전소에서 배터리 안전진단, 퇴화 방지 알고리즘이 적용된 스마트 충전, 잔존 수명 예측 서비스 등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추가 개발하기로 했다. 배터리 수명을 개선할 수 있는 스마트 충전 및 잔존 수명 예측 등의 신규 서비스를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GS칼텍스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직 MOU(업무협약) 단계라서 구체적인 전략이나 장기 계획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면서 “업무협약을 거치면 사업성을 검토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 기회를 검토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GS칼텍스는 지난해 10월 말에 기아자동차, 와도 업무협약을 맺고 간편 결제 서비스 도입, 기아자동차 멤버십 '레드멤버스' 제휴, 충전, 세차, 정비 통합 패키지 상품 출시 등 전기차 분야 기술과 마케팅 협력을 통해 전기차 충전 고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K그룹도 현대차와의 '배터리 선순환 생태계 구축'을 위해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주유소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는 자세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물류와 결합, 꺼져가는 오프라인 불씨 다시 살릴까
미래학자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는 ‘교통’과 ‘물류’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점차 하나의 ‘모빌리티’ 비즈니스로 통합될 것이라 봤다. 실제로 수년간 모빌리티 산업의 중요한 트렌드인 승차공유 분야에서 최근 배송, 커머스, 결제 등의 서비스가 융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초 페이스북과 디지털 결제 업체인 페이팔(PayPal)이 동남아 승차공유 업체인 고젝(Gojek)에 투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고젝이 승차공유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할 때 페이스북이나 왓츠앱(What’s App)을 통한 디지털 결제 서비스를 접목하는 것을 구상했다는 뜻이다. 모빌리티 플랫폼을 노리는 ‘카카오T’가 카카오페이로 결제되는 것과 유사하다.
모빌리티 산업의 발전으로 고객들에게 자동차와 정비·관리·금융·보험·충전 등 주요 서비스를 함께 결합해 제공하는 사업 모델도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서비스 사업을 유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통합 모빌리티 플랫폼’등이 트렌드로 떠 오르고 있다. 앞으로 이 플랫폼이 완성되면 기업들은 차량 내·외부와 다양한 고객 접점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해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현대기아차는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IT기반 물류 솔루션사인 로지스팟과 현대기아차, 그리고 배달브랜드 ‘부릉(VROONG)’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지난 7월 중순 모빌리티 플랫폼 기반 스마트 물류 솔루션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들 회사는 MOU 체결을 통해 차량 데이터 기반으로 솔루션을 고도화하고, 연내 솔루션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르면 연내 고객사에 적용까지도 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오프라인 점포가 주요 기반인 유통업·금융업 등과의 협업이 다양한 형태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제주 무수천 주유소에서 '드론 배송'을 시연한 바 있다.
GS 편의점 앱을 통해 물품 주문이 들어오면, GS칼텍스 주유소가 인근에 있는 GS25의 상품을 드론에 실어 배달하는 서비스다. 배송 거리는 왕복 2km 안팎이에 불과했지만, 당시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은 "주유소는 물류 차량이 진입하기 용이하고 물품 적재 공간도 충분하다"며 "뿐만 아니라, 전국에 분포돼 있으니 물류 거점화에 매우 적합하다"고 강조하면서 향후 발전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