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업(無業) 청년들의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_카카오점’

부서배치, 등산, 회식 등 보통의 사내문화 문화 구현

가상회사 소속감과 일상 속 성취감이 자신감으로 연결

SOVAC 2020에서 카카오프로젝트100이 발표한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소개 영상. 이미지. SOVAC 2020 영상 갈무리.

[미디어SR 권혁주 기자] "이 회사는 백수들이 운영하는 가짜회사입니다"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의 채용 공고다. 니트컴퍼니의 ‘니트(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지난 3월 23일부터 6월 23일까지 니트족 청년 100명은 카카오의 행동변화 플랫폼 카카오프로젝트100을 통해 ‘곰도 사람이 되는 100일’ 간 가상 회사 니트컴퍼니의 생활을 체험했다.

니트컴퍼니의 입사 지원 자격은 ‘무업(無業)상태의 만39세 이하 청년’이다. 면접관 아닌 면접자가 면접 내용을 평가해 스스로 입사 여부를 결정한다.

사실상 회사 ‘놀이’이지만 입사 절차와 사내 문화는 일반적인 회사와 굉장히 비슷하다. 입사지원과 면접을 거친 지원자는 부서배치와 명함도 받는다. 잦은 지각 시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등산과 월 1회 회식이라는 '사내 복지(?)'도 있다.

카카오프로젝트100 담당 매니저 Juni는 “지원자들이 일반 회사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유대감, 그리고 적절한 통제감까지 체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설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니트컴퍼니의 임직원들은 모두 같은 듯 다른 업무를 한다. 업무 내용은 ‘나를 바꿀 소일거리를 한가지 정해 매일 실천하고 인증하기’이다. 직원들은 매일 9시부터 오후6시 사이 ‘오후 4시에 사진찍기’, 조깅하기 등 무직 생활 속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생활 루틴을 유지하기 위한 업무들을 수행한다. 매일 이루는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참가자들의 일상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니트컴퍼니 임직원의 일일 목표 수행 과정. 자료. SOVAC 2020 영상 갈무리.
니트컴퍼니 임직원의 일일 목표 수행 과정. 자료. SOVAC 2020 영상 갈무리.

니트컴퍼니 사원 ‘져미’씨는 100일 동안 하루에 한 편 시를 필사한다. 카페로 출근한 져미씨는 ”오늘따라 좀 눈 에 밟힌다 싶은 시를 쓴다”고 한다. 이날은 신경림 시인의 ‘별’을 필사하고 일과를 마쳤다

져미씨는 “졸업과 퇴사가 겹치면서 사회적으로 아무 소속이 없게 됐다. 나를 설명해줄 말이 없었다”면서 “나랑 같은 처지인 사람 어디 없나 했는데, 제 주변엔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참가 이후 아 나랑 비슷한 사람들 많구나, 그럼 뭐 나 혼자는 아니니까 땡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져미씨는 요즘 ‘누가 행복해?’ 물어오면 ‘나 너무 행복해’라고 답한다.

이렇듯 자발적으로 모인 니트족 참가자들과 100일간의 가상 회사 운영을 마무리한 후, 카카오프로젝트100은 참가자들의 인증 결과를 모아 전시를 열고 종무식도 진행했다.

카카오프로젝트100 담당자 Juni_정연주씨는 “우리사회 니트족 대책 대부분은 니트의 문제를 단순히 일자리의 문제로 보고 대부분 취업률을 높이려는 데 국한돼 있었다”면서 “그러던 와중 순수하게 소속 없는 니트들 끼리의 네트워킹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를 발견하고 니트컴퍼니_카카오점을 함께 열기로 했다”고 프로젝트의 배경을 밝혔다.

카카오프로젝트100의 '니트컴퍼니' 사원 채용 공고. 자료. 카카오프로젝트100.
카카오프로젝트100의 '니트컴퍼니' 사원 채용 공고. 자료. 카카오프로젝트100.

니트족은 개인의 문제 아니야

여러 사전에서 “니트족은 취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할 의지는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구직자나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족과 다르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낡은 정의다.

한국 사회는 산업 구조 개편으로 일자리의 절대량이 줄고, 진로 아닌 진학 중심의 교육으로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선 구직자, 프리터족과 니트족의 구분이 모호하다. 취업이 어려운 외적 환경이 내적 취업 의욕 저하로 이어져 구직자에서 니트족으로의 전환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 같은 이유로 직장, 학교에 소속되지 않는 청년들을 NEET족으로 집계하면 한국의 니트족은 2017년 이미 200만명을 넘겼다(OECD 기준).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니트족인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6월 고용동향’에서도 25~29세 실업률은 10.2%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99년 이후 21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 구조적으로 니트족이 늘어나고 있지만, 니트족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못하다. 취업 병목 현상, 사회 생산력 감소 등을 이유로 니트족이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니트컴퍼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카카오 관계자는 “조사 결과 청년 니트족이 왜 발생하는지 또 청년 니트들이 겪는 정서적인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움직임은 적었다”면서 “NEET란 단순히 소속돼있지 않고 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않는 상태에 대한 것인데, 부모의 과보호나 높은 취업 기대치 등 니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카카오 정책팀은 기존 취업 역량과 일자리 기반의 니트 연구와 달리, 니트컴퍼니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자들이 겪은 정서적 변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에게 니트 컴퍼니란? - 뭐라도 되겠지, 리프레시, 활력, 미래, 변화, 같이의 가치

연구 대상자는 니트컴퍼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16명의 니트족이다. 16명 중 취업 활동 중인 구직 니트족이 8인, 비구직 니트족은 8인이다. 연구 방법은 반구조화 초점집단 인터뷰와 마인드맵핑, 카드분류 등 임상에서 이뤄지는 심리 상담 및 분석의 기초를 따랐다.

카카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각 3시간씩 총 6시간의 1차 인터뷰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인터뷰 동안 니트컴퍼니 프로젝트 참여 계기, 활동 내역, 현재 심리 상태, 미래 계획 등을 진술했다.

연구진들은 1차 인터뷰 6시간 동안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와 문장을 분석하여 81개의 주요 진술문을 추려냈다. 참가자들은 81개의 주요 진술문을 토대로 공동체, 자신감, 가치관 등 핵심 가치의 중요성을 스스로 1점부터 7점까지 평가했다. 실험 결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문장 81개의 카드 분류(Card sorting)과정을 거쳤다.

니트컴퍼니 참여자의 핵심 가치 네트워크. 자료. 카카오 정책팀.
니트컴퍼니 참여자의 핵심 가치 네트워크. 자료. 카카오 정책팀.

연구결과 다차원 척도법을 통해 참여자들이 느낀 핵심가치는 11가지로 키워드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 가장 높은 중요성을 가진 주제는 몰입(6.12)과 자신감(5.43) 그 뒤로는 소속감(5.27)과 루틴(.5.15) 였다.

요약하면 참가자들에겐 100일간의 프로젝트로 인한 자신감과 소속감 확인이 가장 큰 성과였던 셈이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100일간의 활동이 구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새로운 목표 설정과 달성에 따른 자신감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한다.

또한 니트 컴퍼니 프로젝트 임직원들은 프로젝트 종료 후에도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새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으로 퇴사하고, 상담 치료를 받던 프로젝트 참가자 A씨는, 니트 컴퍼니 프로젝트 이후 건축회사에 취직해 새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 정책팀은 “연구 결과 참여자들이 100일간의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참여자들 간의 격려와 지지, 이를 통한 서로의 책임감 상승이었다”고 밝혔다

카카오프로젝트100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니트컴퍼니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에게 소속감과 자신감 등을 만들어내고 고취시켰다는 것에 의미를 둘 뿐 아니라, 경쟁에 쫓기는 청년들에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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