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디자인 기자
김민영 디자인 기자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홍사승 

쌍용양회의 대표집행임원 회장

홍사승 회장은 1967년 쌍용양회 경리로 입사해 2009년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홍 회장은 1948년생으로 경기상고와 국민대학교 경영학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과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쌍용양회에 경리로 입사해 자금부장, 상무이사,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역임하고 2011년 회사를 잠시 떠났었다. 

이후 대한시멘트 회장을 맡다가 2017년 12월 초 쌍용양회의 대표집행임원 회장으로 돌아왔다. 대표집행임원은 2016년 쌍용양회에 도입된 제도다. 대표집행임원은 이사회에서 의사결정과 감독기능만을 갖고, 집행임원은 실질적인 업무진행을 담당한다. 

COO, CFO 등이 각 부문에서 집행임원을 하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역할을 대표집행임원이 맡는 식이다. 

홍 회장은 쌍용양회 재직 당시 원가절감, 자산 유동화 노력 등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왔고, 사업구조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1분기 쌍용양회 실적은 연결기준 매출 3139억원, 영업이익 307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6.8%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42.7% 증가했다. 

모두 홍 회장이 시멘트 출하량 감소에도 꾸준히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박차를 가한 효과가 긍정적 수치로 나타난 결과물로 풀이된다.

특히 홍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원가 절감을 위한 친환경 순환자원 설비투자를 계획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친환경 순환자원설비는 합성수지 등 순환자원을 대체연료로 사용하는 시설로 유연탄을 사용할 때와 비교해 연료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쌍용양회는 2016년 4월 폐열발전 설비에 1100억원대의 투자를 결정하는 등 원가절감 시설 구축 마련 계획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면서 업계에서는 과감하게 보일 수 있는 결정을 이어갔다. 당시 시멘트 업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신년사에서 "2020년 마무리되는 생산혁신 투자공사는 쌍용양회가 실질적으로 초격차 경쟁력의 기반을 다지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쌍용양회는 홍 회장이 돌아온 이후인 2018년 4월부터 차세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2018년 9월에는 마침내 동해공장에 세계 최대 규모의 폐열발전 설비를 준공했다. 

황동철

쌍용양회 전 대표. 

2016년 4월 쌍용양회 대표에 취임했다. 황 전 대표는 제29대 한국시멘트협회장에 선임 되기도 했다. 시멘트 인생 외길을 걸어왔다는 공을 인정받은 결과다.

황 전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입사한 이후 기획 및 재무담당 임원 등 핵심 요직을 거쳐 계열사인 쌍용머티리얼 대표와 쌍용레미콘 대표를 겸직한 바 있다.

황 전 대표는 쌍용양회를 이끌면서 시멘트사업 역량을 높이기 위한 경영효율성 제고에 골몰해왔다. 황 전 대표는 계열사를 맡아 단기간에 최대 경영성과를 이끌어 자립경영과 지속가능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 전 대표는 인수.합병에 따른 구조재편과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시멘트업계의 상황에서 앞으로의 생존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일찍이 노력했다. 

특히 황 사장이 취임했던 해 1월, 쌍용양회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875억8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으면서 준법·윤리경영에도 신경을 많이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쌍용양회를 포함해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 등 총 6개 업체가 시장점유율과 시멘트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쌍용양회와 한일시멘트는 컴퓨터 바꿔치기와 같은 방식으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법인과 개인에게 총1억65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조치를 받았다. 

황 전 대표는 취임했던 해 5월 기존의 윤리규범을 개정하고, 7월에 100페이지가 넘는 윤리경영 가이드북을 발간해 쌍용양회와 계열사, 협력사의 모든 임직원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김성곤 창업주 

쌍용그룹 창업주.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는 쌍용양회를 비롯해 금성방직, 고려화재해상보험, 동양통신 등을 설립하고 쌍용그룹을 1980년대까지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어낸 주역이다.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의 굴곡을 고스란히 느끼며 당시 재계를 리드했다. 그가 재계를 리드했다는 것은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것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특이점은 국민대학교를 인수하고, 성곡학술문화재단 설립, 유도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자이자 체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김성곤 창업주는 학창시절에도 자신감 있는 성향에 체육에도 재능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1913년 경북 대구 달성군 현풍면 출생으로 대구고등보통학교와 현재의 고려대학교인 보성전문을 나왔다. 대구고등보통학교 때는 축구선수였고, 보성전문 때는 유도·축구·럭비선수를 할 만큼 체육에 관심이 컸다.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부청 재무과 및 대구상공은행에 근무한 이력이 있드며 1939년 `삼공유지` 라는 비누 제조업체를 최재영, 이종건과 함께 설립하며 기업가로서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당시 삼공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비누는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추풍령 이남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삼공유지를 기반으로 기반을 다진 김성곤은 금성방직에 이어 쌍용양회를 차리면서 사세를 확장하는데 골몰했다. `쌍용`이란 회사명은 쌍용양회 영월공장이 세워진 강원도 영월군 서면 쌍용리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김성곤 창업주는 공장용지인 강원도 영월지역에 내려오는 전설을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설에 따르면, 영월군 서면 쌍용리의 쌍용굴에 두 마리 용이 살고 있었는데 승천을 위해 천 년간 정진하다 하나의 여의주를 받았다.

그러나 두 마리 용은 서로 여의주를 양보하다 결국 모두 승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는 감동해 또 하나의 여의주를 내려보냈고, 결국 두 마리 용 모두 승천하게 되었다. 

김성곤 창업주는 이 전설에 감화돼 전설 속의 쌍용을 회사 이름으로 따왔다. 이때부터 기업의 이름을 하나둘씩 쌍용이라는 이름으로 통합, 쌍용그룹이 탄생했다. 1997년 IMF 이후에도 쌍용건설, 쌍용정유(에쓰오일), 쌍용중공업(STX그룹)이 모두 분리된 상황에서 쌍용양회는 살아남았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살아 생전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과 팝송 `오마이파파`를 좋아하는 등 낭만가적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특이점은 정치에도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정치에 관심을 보인 것이 한순간 재산증식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기업 수명은 재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성곤 창업주는 1950~1960년대 정치의 파란만장한 역사에서도 살아남아 권력의 맛을 보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이기붕의 권유로 당시 자유당에 입당해 재정부장을 지낸 이후 1958년 제4대 민의원 의원에도 당선됐다.

5.16쿠데타 이후에도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 재정경제위원장, 민주공화단 재정위원장 및 당무위원이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해나갔다.

하지만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정치판에서 박정희와 척을 지게 된 김성곤 창업주는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은 이후 후유증을 겪다 1975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것으로 알려졌다.

허기호

한일홀딩스 대표이사 회장.

과거 한일시멘트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시멘트 시장점유율을 4위에서 2~3위권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일시멘트그룹 오너3세로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시멘트업계 오너 3세 중 가장 먼저 회장에 올라 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1966년생으로 서울 출생이다. 1985년 성남고등학교, 1989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미국 선더버드 국제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장손이다. 녹집자홀딩스와는 형제기업이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과 사촌지간이다. 한때는 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보유하기도 했지만, 2014년 5월 보유주식 10만주를 전량 매도했다.

허 회장은 1990년 시멘트 제조 원료인 유연탄 수입회사였던 한세인터내쇼날 과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허 회장은1997년 한일시멘트 이사로 입사해 1999년 총무·경리. 자재담당 상무를 지낸 뒤 2001년 관리본부장 전무를 역임했다.
2003년 한일시멘트 경영기획실장 부사장을 거쳐 마침내 2005년 한일시멘트 대표이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허 회장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시멘트 점유율 4위였던 한일시멘트는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허 회장은 한일시멘트 사장 취임 첫해 반도체 검침장비를 생산하는 대만회사 CCP를 약 50억원에 인수하고 2015년 이를 300억원에 매각해 5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친환경 경영에도 관심이 많은데 쌍용양회와 마찬가지로 폐열발전 설비 구축과 순환자원 재활용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일시멘트는 2017년 초에 사모펀드 LK투자파트너스와 손잡고 현대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업계의 주력제품인 포틀랜트시멘트의 출하량에서 한때 상용양회를 제치기도 했다. 

이현준

제30대 한국시멘트협회 회장이자, 쌍용양회 대표집행임원 부사장

1962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쌍용양회에 입사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2018년 6월 제30대 한국시멘트협회장으로 선임됐다. 

건설경기와 맞물리는 시멘트 업계의 특성상,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지속해서 시멘트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협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공을 인정받아 2020년 2월 협회장에 재선임됐다.

이 협회장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원사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협회장으로서 어깨가 무겁다"면서 "상시적인 수요감소 상황에서 우리 시멘트산업이 제대로 평가받고, 행정부와 국회의 정책적인 지원을 끌어낼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경영여건이 개선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노련미는 쌍용양회에서 업계의 굴곡을 모두 경험한 저력으로부터 나온다. 30년 넘게 쌍용양회에서 근무하며 재무, 기획, 경영, 감사 등 핵심부서들을 두루 거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1985년 쌍용양회에 입사해 쌍용양회가 2000년 일본 태평양시멘트에 경영권이 넘어갔을 때도,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2016년 쌍용양회를 인수할 때도 모두 이 협회장이 있었다.

이 협회장은 쌍용양회를 이끄는 두 명의 대표집행임원 중 한 명이다. 이 협회장은 쌍용양회가 한앤컴퍼니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대표집행임원으로 중용됐다. 이후 2019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감사보고서에 명시된 이 부사장의 담당 업무만 6개에 달한다. 대표집행임원, 경영기획, 경영관리, 법무, 감사, 내부회계관리자 등이다.

이훈범

아세아시멘트 대표이사 사장. 시멘트업계 3위인 아세아시멘트를 이끄는 수장.

아세아시멘트는 2018년 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아세아시멘트가 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국내 시장 점유율이 19.1%로 늘어났다. 쌍용양회, 한일시멘트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아세아시멘트는 내륙에 근거해 시멘트를 운반하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멘트를 공급하는 내륙사고, 한라시멘트는 강원도 옥계에 위치해 시멘트 전용 항구를 보유한 해안사로 서로 간 공급망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장은 2018년 초 한라시멘트를 3691억원에 인수하면서 외형 확장에 집중했다. 인수 첫해 아세아시멘트의 연결기준 매출은 8348억원으로 4612억원이었던 2017년에 비해 83%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장은 지난 4월 이병무 아세아그룹 회장으로부터 지주사 아세아 지분 5만주를 증여받으면서 아세아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이로써 아세아그룹은 이 사장과 동생인 이인범 아세아제지 사장의 3세 경영이 본격화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사장은 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한라시멘트가 안고 있던 사모펀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의 투자금 회수문제로 인한 차입금 5000억원도 갚아나가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한편 이 사장은 뉴욕대 MBA(경영학석사), 딜로이트&투시컨설팅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00년에 귀국했다. 2002년 위성방송 수신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계열사, 라딕스(옛 대륭정밀) 상무로 재직했다. 주력 사업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2013년 5월에는 지주사로 전환, 같은 해 10월에는 사업다각화를 지시하기도했다.

 

남북경협

홍사승 회장이 크게 관심을 보였던 분야.

1994년 쌍용양회가 북한 평안남도 순천 시멘트공장 개선사업을 벌일 때, 홍 사장은 최고재무책임자였는데, 이때부터 남북 경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순천 시멘트공장 협력사업이 북핵 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1996년 아쉽게 중단됐다.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추진한 북한 경수로 건설사업에서 쌍용양회는 2002년 경수로 건설에 사용할 특수시멘스 3만2000t을 동해시 북평항에서 함경남도 신포항으로 공급했다. 

이후에도 북한 수해 피해복구를 위한 대북 지원 등에 시멘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1990년대 시작한 대북사업은 중단됐지만, 쌍용양회는 북한 시멘트공장 설비 개조와 항만을 이용한 시멘트 수송에 노하우를 쌓게 됐다.

2018년 4월부터는 남북경협주로 묶이면서 관련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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