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CEO 조찬간담회에서 강연 중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 : 구혜정 기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CEO 조찬간담회에서 강연 중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개선하기 위한 고삐를 바짝 거머쥐는 것으로 보인다. 입법을 추진하며 관행을 개선하고 중소기업벤처부와 불공정거래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연달아 결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11일 영풍그룹 계열사인 ㈜인터플렉스에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대해 과징금 3억5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급 사업자에게 공정을 위탁했으나 발주자가 발주를 중단하자 수급 사업자에도 임의로 위탁을 취소한 것이다.

2017년 위탁 계약 당시 ㈜인터플렉스는 수급 사업자에게 매월 일정 수량 이상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인터플렉스 공장 내에 설치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2년 동안 특정 수량 이상의 물량을 납품할 수 있도록 보장했으며 단가도 보장 물량을 고려하여 결정했다.

수급 사업자는 당초 계약한 물량의 20~32% 수준만 납품받은 상황이었으나 ㈜인터플렉스는 수급 사업자에 자신의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ERP시스템)을 통해 수시로 납품을 지시하다가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수급 사업자의 손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였다.

㈜인터플렉스의 이러한 행위는 수급 사업자에게 책임을 돌릴 사유가 아님에도 수급 사업자와 충분한 협의없이 임의로 위탁을 취소한 행위로 하도급법 제8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부당한 위탁 취소 행위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를 통해 시스템으로 발주하더라도 위탁 내용, 수량‧단가 등이 결정될 때가 위탁 시점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를 뒀다. 또한 원사업자가 서면으로 수급 사업자에게 물량을 보장하고 보장 물량에 따른 설비 설치까지 요구한 후 수급 사업자의 귀책 사유가 없음에도 위탁을 취소하여 수급 사업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행위를 제재하여 유사 사례 발생 방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2월부터 이어진 하도급 불공정 거래 제재

지난 4월에는 삼성중공업이 제조원가보다도 낮은 수준의 하도급대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협력사 책임이 없어도 위탁 내용을 맘대로 바꿔 협력사에 피해를 떠넘겨 공정위가 36억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서면발급의무 위반행위, 부당한 하도급 대금결정 행위, 부당한 위탁취소 행위 등을 일삼았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206개 사내 하도급 업체에 작업 내용과 하도급대금 등 주요사항을 기재한 계약서를 작업이 이미 시작된 후에 발급하고, 작업의 난이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낮췄다.

또한 본 공사 외 수정추가공사를 위탁하면서도 대금을 산정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게 한 뒤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사내 하도급 업체와의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고, 작업이 끝난 후 삼성중공업이 사후에 결정한 금액으로 일방적인 계약이 체결됐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사와 협의없이 위탁 내용을 변경하기도 했다. 설계변경이나 선주요구 등으로 위탁 품목이 필요 없거나 수량이 줄어들게 되면 해당 품목에 대한 발주를 취소하거나 변경했다. 협력사는 동의 여부만 결정할 수 있고, 변경에 따른 손실 등을 협의하는 절차는 전무했다. 심지어 변경 사유조차 적시되지 않아 협력사는 이유도 모르고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삼성중공업이 이같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의 종합세트였을 뿐, 여전히 제조업과 건설업 등 산업 전방위에 불공정 행위는 만연하다.

지난 2월 동호건설은 최저가로 입찰한 A업체를 선정하고도 정당한 사유없이 5차례 반복적으로 가격협상을 진행해 기존 입찰가에서 6억원 가량을 깎아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경쟁 입찰에 의해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최저가로 입찰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한 것으로, 하도급법 제4조 제2항 제7호를 위반하는 행위다. 동호건설은 재발방지 명령과 함께 2억5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어 리드건설, 대보건설, 동호건설, 성찬종합건설, 화성토건 등이 줄줄이 하도급 대금 및 지연이자 미지급 행위 등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공정위 처분을 받고도 하도급 거래 행위를 개선하지 않는 곳도 있다. (주)동일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상습 법 위반업체로 지정되었고, 2018년에는 입찰참가제한조치를 받은 바 있으나 지난해 12월 다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57억6100만원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나아가 ㈜동일과 대표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공정위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적발해낸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를 한 대림산업과 한샘, ㈜크리스에프앤씨, 대보건설 등 4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강성천 중기부 차관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거래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경제적 이익요구와 납품대금 미지급, 수·위탁 거래의 기본인 계약서 미발급 등 중소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법 위반행위”라면서 “이번 고발요청을 통해 유사한 법 위반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고 동종업계에 경각심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샘 사옥. 사진. 구혜정 기자
한샘 사옥. 사진. 구혜정 기자

기술유용, 공정 경쟁에 치명적이지만 피해액 산정 어려워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유용하는 행위는 불공정 거래 행위 중에서도 수급 업체에 가장 치명적이면서 혁신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로 꼽히지만,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한 위법의 정도와 피해액 산정이 어렵다. 현실적으로 공정위 처분에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A사의 기술 자료를 유용한 행위에 대해 기술유용에 대한 제재로는 역대 최대로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업체는 세계 3대 피스톤 제조업체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100개 강소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으나 현대중공업이 하자 발생 시 대책 마련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A사에 작업표준서와 공정순서, 공정관리 방안 등을 포함한 기술자료를 요구한 뒤 다른 하도급 업체에 넘겨 부품을 동일한 부품을 개발하도록 했다. ‘원가 절감’이라는 명목이었다.

결국 A사는 현대중공업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고 기술 자료를 현대중공업 측에 넘겼으나 1년 뒤에는 일방적으로 거래가 중단됐다. 

문종숙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감시팀장은 미디어SR에 “미납금 등은 피해금액 산출이 정확하지만 ‘기술 유용’과 같은 위법행위는 위법의 정도와 그 피해를 계량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액 과징금 제도를 택하고 있다”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미흡하다고 판단하거나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더라도 현행 규정상 과징금 부과 고시에 상한액이 10억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기술유용으로 인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례는 최근 5년간 이번 사건을 합쳐 7건뿐이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및 중재 신청건수는 2016년 68건, 2017년 70건, 2018년 89건, 2019년 111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신고 건수에 따른 누적 피해액만 5400억원으로 추산되지만 이같은 기술 유용 및 탈취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대부분의 하도급 구조가 수직계열화를 따르기 때문에 원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한 번 업계 내에서 소문이 나면 장기적으로 수주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임신혁 하도급법 전문 변호사는 미디어SR에 “하도급법과 함께 공정위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 사업자의 꼼수로 인해 실제 집계된 기술유용 사례보다 실제 기술 유용 사례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공정위가 어렵게 기술유용 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최종 판결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원청에 대한 실질적인 패널티로 이어지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서울고법 행정6부(이창형 최한순 홍기만 부장판사)는 두산인프라코어가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임 변호사는 미디어SR에 “최근까지도 원 사업자가 하도급 업체의 기술 유용을 적발하기가 어려워 처벌 사례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면서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기술유용 등을 적발하고 처벌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에 부과된 3억원대의 과징금은 2017년 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기업 기술유용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 처음으로 공정위가 기술유용을 적발한 사례로, 이번 판결 또한 법원이 대기업의 기술유용을 인정한 첫 사례다.

하지만 재판부는 “과징금 산정시 관련 고시를 잘못 적용했다”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3억8200만원 중 3억6200만원을 취소했다.

공정위, 불공정 거래 행위 개선 '장기전'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입법 및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해 하반기에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배상 규모를 현행 3배에서 10배 이내로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으로 기술 유용 행위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고 신고 활성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도급 거래 모범업체에 대한 범부처 차원의 인센티브 제공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법 위반 행위를 자진 시정할 경우 벌점과 과징금 경감 등 혜택이 제공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10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공정위는 올해 초 설을 앞두고도 이같은 신고센터를 운영한 바 있다.

공정위는 본부 및 지방사무소와 하도급 분쟁조정 협의회 등 전국 5개 권역에 10개소를 설치하고, 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은 통상적인 신고처리 방식과 달리 하도급 대금 조기 지급에 중점을 두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은 명절에 자금수요가 증가하는데 이 시기 대금을 받지 못하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위는 법위반 행위 조사는 통상적인 사건처리 절차에 따라 추진하되, 추석 명절 이전에 신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원사업자에게 자진시정이나 당사자 간 합의를 적극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에게 회원사들이 하도급 대금을 추석 명절 이전에 제때 지급하도록 적극 독려할 것을 요청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추석 명절 이전 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자금난 해소 및 경영 안정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 하도급 예방 분위기가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 삼성물산·현대건설 등 10대 건설사들은 공정위 주관 아래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영위기를 겪는 하도급 건설사들과 ‘대금 100% 현금 지급’ 등 내용이 담긴 상생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협약식에서 “하도급거래 모범업체에 대한 범부처 차원의 인센티브 제공 체계를 정비 중”이며 하도급법 위반 거래를 자진시정시 과징금과 벌점을 경감하는 등의 제재 완화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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