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회의감을 드러내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3일 이동걸 회장은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시에는 HDC현산이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며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신의 성실 원칙에 입각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어 "7주 동안 엄밀한 실사를 한 상황에서 상황 변화가 있다면 있는 것만 점검만 하면 되는데 자꾸 (현산이) 재실사를 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제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결단의 시점이 오고 있다"며 "모든 당사자가 거래 종결 시점에 맞춰 결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HDC현산은 지난달 30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12주 동안의 실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산은과 금호산업 측의 대면 협상은 피한 채였다. 이동걸 회장의 결단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은 지난해 12월 2조5000억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인해 거래 종결이 늦어지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이 회장이 정몽규 회장에게 인수 의행 의지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HDC현산에 "시장 신뢰를 받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과정을 보면 시장 신뢰를 주장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측면이 있다"며 "시장 신뢰를 못 받는 경우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 많은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저희는 항상 신뢰를 앞세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계약금 반환 소송은 없을 것"이라며 "현산에서 계약금 반환 소송은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금호와 산은 측은 하등 잘못한 것이 없다"며 "계약이 무산될 위험과 관련해선 현산 측이 제공한 원인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HDC현산은 극구 “재실사 요청은 계약금을 반환받기 위한 구실이 아니다”라고 항변한 상황이다.

하지만 항공업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결국 계약금이나 귀책사유가 걸려있으니 양측이 서로 물러서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사옥. 사진. 미디어SR DB
HDC현대산업개발 사옥. 사진. 미디어SR DB

지난주만 해도 산은은 HDC와 대면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이 회장의 발언은 산은의 강경한 입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회장의 태도가 이처럼 변화한 것은 취임 이후 준비했던 굵직한 M&A들이 모두 좌초 위기에 놓이거나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17년 9월 취임 당시 금호타이어와 KDB생명을 언급하며 임기 내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발언과 달리 이 회장은 임기 내 대우건설, KDB생명, 아시아나항공, 대우조선해양 등 매각 완료가 이뤄진 기업이 없다. 금호타이어는 매각이 완료됐으나 인수자인 더블스타와 잡음이 불거지면서 위태로운 길을 걷기도 했다.

때문에 이 회장은 인수 계약의 책임을 HDC현산에 묻겠다면서도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약간의 ‘당근’도 제시한 셈이다. HDC현산이 일시적 위기로 판단을 내릴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HDC현산이) 코로나 위기라는 불확실성에 매몰되지 않고 항공산업을 긴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2차 세계대전 직후 서로 다른 판단으로 기업 운명이 갈린 미국의 리테일 업체를 예로 들었다.

그는 1945년 미국의 리테일 산업에서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두 회사가 어떤 판단을 해서 한 회사(몽고메리 워드)는 쇠락의 길을, 다른 회사(시어스)는 그 후 30~40년간 전 세계 리테일을 평정하는 대기업으로 거듭났는지를 잘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소매 체인인 몽고메리 워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 용사들이 실업자가 돼 공황에 빠질 것으로 예측해 투자를 가능한 줄이는 경영 전략을 취했다.

반면 경쟁 업체였던 시어스는 은행 대출을 통해 교외로 사업을 확장하며 수요 증가에 대비했다. 전후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고 몽고메리 워드는 큰 타격을 입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같은 예시를 통해 이 회장은 장기적으로 코로나19 이후까지 고려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신속히 추진하라는 의사를 비쳤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연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특효약이 없을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이른바 ‘C-쇼크’가 예상보다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C-쇼크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정 회장이 인수 포기를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HDC현산 측이 줄곧 계약 추진 의사가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재실사 요구’만 내걸고 있어서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실제 추진 의사가 있다면 인수 확답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 되는데(안한다)”라고 HDC현산의 요구에 대해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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