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CI. 사진. 현대중공업 제공
현대중공업 CI. 사진. 현대중공업 제공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해 공정위로부터 역대 최고액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하도급법상 기술유용 혐의로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이미 이 건으로 검찰에 기소된 상황이며,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등 4명이 대전지방법원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현대중공업은 하도급업체인 A사에 피스톤 관련 기술자료를 달라고 요구한 뒤 이를 확보해 2015년 경쟁업체인 B사에 넘겼다. 피스톤은 선박 엔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현대중공업은 디젤 엔진을 자체 개발한 후에도 피스톤은 해외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었으나 업계에서 제작기술력을 인정받아 온 A사에 부품 국산화를 제안했다.

A사가 부품 개발을 완료하자 현대중공업은 2015년 3월부터 꾸준히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A사는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현대중공업에 의존하고 있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15년 12월부터 3개월간 단가를 11% 낮추게 됐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2017년부터는 A사와의 거래를 아예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대신 B사 등 다른 업체로부터 피스톤을 납품받았고, 공정위에 따르면 A사는 이로 인해 정상 거래를 하던 2015년 대비 2018년 매출이 57% 급감하고 영업이익은 무려 579%나 쪼그라들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 포괄적으로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자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향후 발주물량을 통제할 것”이라거나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거래 중단을 압박하기도 한 사실이 확인됐다.

현대중공업의 기술 유용 사건 경위. 자료. 공정위

현대중공업은 A사의 기술 자료가 “제품 하자 발생에 따른 대책 수립”을 하려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이 요구한 자료가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섰으며 하자가 발생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자료까지 현대중공업이 요구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공정위는 기술 자료의 경우 사전 협의를 통한 서면 교부가 의무임에도 현대중공업이 이를 지키지 않아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자사의 비용절감을 위해 다른 업체 B사에 A사의 기술 자료를 그대로 전달했으며, 공정위는 그 증거로 현대중공업이 B사에 전달한 문서 중 명칭에 대한 오기(誤記)까지 A사가 제공한 것과 똑같은 문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에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의 기술유용 행위가 ‘매우 중대한 법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과징금 최고 상한액(10억원)에 가까운 9억7000만원을 부과했다.

기술유용에 대한 과징금 상한이 5억원에서 2018년 10억원으로 상향된 뒤 나온 첫 사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공정위에 따르면 기술유용으로 인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례는 최근 5년간 이번 사건을 합쳐 7건뿐이다.

꾸준히 기술 유용 및 하도급 갑질 행위와 관련한 토론회를 주최해온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및 중재 신청건수는 2016년 68건, 2017년 70건, 2018년 89건, 2019년 111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신고 건수에 따른 누적 피해액만 54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 연구‧개발팀에 근무했던 한 대기업 직원은 미디어SR에 기술 탈취와 관련한 고충으로 인해 양심상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직원은 “근무 당시 하청업체가 가진 기술에 대해 이 기술을 언제까지, 얼마에 맞춰 개발하라는 식의 업무가 대부분이었다”면서 “(대기업 내) 연구개발부서도 오히려 기한에 맞춰 같은 기술을 개발하려다보면 업무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극에 치닫게 된다”는 현실을 전달한 바 있다.

대기업 내부에서도 이같은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있으나 해결은 요원하다. 여전히 겉으로 드러난 기술 유용 및 탈취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대부분의 하도급 구조가 수직계열화를 따르기 때문에 원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한 번 업계 내에서 소문이 나면 장기적으로 수주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또한 문종숙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유용감시팀장은 미디어SR에 “미납금 등은 피해금액 산출이 정확하지만 ‘기술 유용’과 같은 위법행위는 위법의 정도와 그 피해를 계량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액 과징금 제도를 택하고 있다”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미흡하다고 판단하거나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더라도 현행 규정상 과징금 부과 고시에 상한액이 10억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을 기준으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하도급 관련 법안은 모두 7건이다. 이들 법안 모두 불공정하도급 거래관행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 기술유출·유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10배의 범위에서 배상하도록 배상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하도급법을 발의했다.

또한 이성만 더민주 의원은 기술을 빼앗긴 하도급 업체의 손해액을 추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법적 대응을 시사한 상태로, “공정위 판단은 존중하지만 회사 입장은 다르다”면서 공정위 의결서를 받으면 검토 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사진.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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