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간 법적 공방 비화 가능성 마저 제기돼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항공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진. 정혜원 기자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항공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진. 정혜원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제주항공이 요구한 선행조건 해결 시한(15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스타항공 노사는 인수‧합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향후 법정 공방까지 예상되는 등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건은 사실상 물건나 간 것이 아니냐는 '무산(霧散)설'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 노사는 지난 10일 직원들의 2개월치 임금 반납 여부를 두고 투표를 진행한 데 이어 근로자 대표단은 임금 반납 동의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추후 협의에 따라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 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휴업 수당은 월 40억원 가량으로 지난 4월부터 적용됐으며, 임금 체불이 시작된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밀린 임금은 250억원에 달한다.

이스타항공 직원 1261명 중 42%가 투표에 참여해 75%가 임금 반납에 찬성했으나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이하 조종사노조)는 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재 전체 1600여명의 직원 중 조종사 노조는 220여명으로, 근로자 대표성은 사측과 협의 중인 근로자 대표단에 있다. 근로자 대표단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직군별로 지원자를 받아 찬반 투표를 거친 뒤 선임됐다.

조종사노조는 큰 틀에서 임금 반납에는 동의한다. 다만 제주항공이 인수 후 인력 감축 중단 또는 고용 유지 등을 명확히 전제한 뒤에야 임금 반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사측이 임금 반납 동의를 서두르는 배경을 의심한다. 제주항공의 인수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을 반납하게 될 경우, 인수 계약도 무산된 채 고용도 유지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 실소유주인 이상직 의원만 체불임금에 대한 책임을 털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김유상 이스타항공 경영본부장은 미디어SR에 “당연히 제주항공에 인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임금 반납 동의서"라며 "현재 인수‧합병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몸집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동의서에는 인수 관련 선결 혹은 전제 조건이 명시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분주한 이스타항공, 미지급금 해소 중?

이스타항공은 올해 1분기 기준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로 자본 총계가 –104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이스타항공은 올해 3월 말부터 국내선과 국제선의 운항을 모두 중단했으며 항공기 리스사, 정유업체 등 관계사에 미지급한 것도 상당 금액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은 총 17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이스타항공 사측은 이 규모를 줄이기 위해 리스사, 정유업체 등 관계사와 협상을 벌여 미지급금 해소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국토교통부에도 공항시설 사용료 감면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유업계도 사실상 2분기 최악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어 대금 납부 유예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때문에 이스타항공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앞서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3월 2일 이후 이스타항공에 쌓인 채무를 오는 15일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계약을 종결할 수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이스타홀딩스 측에 발송했다.

또 이스타항공의 태국 현지 총판인 타이이스타젯이 임차한 항공기에 대해 이스타항공이 지급보증한 문제와 이스타항공의 노사 분규에 대해서도 해결을 요구했다.

이에 지난 2일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미지급채무 1000억원 중에서 이스타항공이 부담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명시해 제주항공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직 의원 일가가 포기한 인수대금 410억원에서 부실채권과 세금, 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제주항공이 실제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는 금액이 약 150억~200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

그러나 양측은 마지막 의견이 오고 간 지난 7일 이후 추가 논의는 없다고 밝힌 상황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현재 15일까지 선결 조건 이행을 요구한 상황이고 제주항공의 입장 발표는 그 이후가 될 것”이라며 “추가적으로 논의되는 사항은 없으며 지난 번 입장 표명으로 제주항공 측의 의사표시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더 이상의 논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 공방 없어 조용하지만 이견은 여전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반박한 입장 자료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까지 미지급금이 해결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한 가운데,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법정 싸움에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제주항공 측은 앞서 7일 입장자료를 통해 이스타항공의 실소유주인 이상직 의원 일가가 이스타홀딩스 지분을 헌납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이스타홀딩스 보유 지분에는 제주항공이 지불한 계약금과 대여금 225억원에 대한 근질권이 이미 설정되어 있어, 이스타 측이 제주항공과 상의 없이 지분 헌납을 발표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제주항공측은 “게다가 지분 헌납에 따라 이스타항공에 귀속되는 금액은 80억원에 불과하다”면서 “체불임금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라면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인수 후 운영자금으로 쓰기 위해 100억원을 이스타항공에 대출해준 뒤 이스타홀딩스 지분에 질권을 설정한 것으로, 질권을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해당 지분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공매 절차를 거친 후 대금을 갖게 된다”면서 헌납을 발표할 권리 자체는 아직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해당 근질권도 계약 귀책 사유가 누구인지 가려낸 뒤 제주항공 측이 재판에 이겨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인수계약 파기의 귀책 사유가 누구인지 먼저 밝혀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이스타홀딩스가 가처분을 신청한 뒤 재판을 통해 근질권 행사의 적법 여부를 따져볼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법적 공방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또한 계약 시점 후의 미지급금에 대한 책임 여부에 대해서도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의 주장이 엇갈린다. 향후 법적 공방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선행 조건과 관련해서도 사실 리스비나 유류비 등 미지급금은 이미 실사 과정을 통해 제주항공 측도 전부 확인한 사항”이라며 "타이이스타젯 관련 채무보증도 인수‧합병 계약의 선결 조건이라는 점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주항공 측은 같은 입장 자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모든 피해를 제주항공이 책임지기로 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타이이스타젯 보증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증빙을 받지 못했으며 계약 체결 후 미지급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고 그 외에도 이행되지 않은 선행조건이 다수 존재한다”는 이유를 들어 계약 진행이 불가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주항공 측은 특히 “체불임금은 근로기준법상 경영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불법행위 사안으로서 당연히 현재 이스타 경영진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해결할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양측의 입장 차이를 보면 이스타항공 근로자 대표단의 임금 반납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사실상 미지급금을 해소하지 못하면 인수 계약은 무산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제공: 국토교통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제공: 국토교통부

정부 개입과 양사를 둘러싼 온도차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돼 15일까지 양측 간 갈등이 해소되고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최근 국토교통부에 이어 고용노동부까지 양측을 중재하는 데 나선 가운데 제주항공의 2대 주주인 제주도의 부정적인 의견 표명 등에 따라 인수 계약의 향방은 아직 오리무중 상태다.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최근 국토교통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인수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제주항공 측은 지난 10일 고용노동부와 면담한 자리에서 "체불 임금을 해소해도 (이스타항공의) 전체 미지급금의 15%밖에 되지 않는다"며 인수에 다소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나서서 지난 3일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상직 의원과 면담을 갖고 항공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해 인수합병이 당초 계획대로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향후 1~2년정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항공업계가 역대급 위기에서 탈출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제주항공의 경영환경도 이미 녹록치 않은 상태로, 자칫 ‘동반부실’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제주항공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158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며, 제주도도 이에 참여하기 위해 40억원의 추경예산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에 제주도는 이스타항공 인수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주도 측은 "말 그대로 신중히 결정해달라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제주항공 지분 7.75%를 보유한 제주도는 AK홀딩스(56.94%)에 이은 2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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