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 기자단 문유선, 이진호] 제일기획이 최근 남녀 1035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7%가 제품을 구매할 때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90.2%는 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으며, 비윤리적인 기업의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응답도 71.2%에 달했다. ‘착한 기업’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생소하지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다. 공존과 상생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제품이나 사업 명칭에 ‘착한’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착한 기업’에 호감을 갖는 것일까? ‘착한 기업’ 열풍속에서 소비자는 과연 어떤 기업이 착한 기업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소비자가 기업에 사회공헌을 요구하며 ‘착한 기업’이라는 이름을 쫓게 된 배경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역사적 배경에 따른 보상심리가 있다. 한국의 기업은 60년대부터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계획으로 고도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과도한 이윤추구에 따른 불공정 경쟁행위와 탈세, 빈부격차, 환경오염 등 문제를 야기했다. 노동문제에서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열악한 근무환경, 저임금, 장시간 근로가 용인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절차의 투명성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과거 압축성장 과정에서 관행으로 치부되던 기업의 부정행위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시선은 불신을 넘어 반 기업정서로 확대됐다. 그 보상심리로 기업에 근로자의 복지향상, 이윤의 사회 환원, 소비자 후생 향상 등 소비자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착한 기업 열풍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소비자의 영향력 증대를 들 수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고 SNS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소비생활에 있어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업 활동에 반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소비자는 직접 기업 활동의 감시자로 활동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는 스스로의 권리와 함께 기업의 책임에 대한 인식도 발전시켰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단순 구매자로서 소비활동만 할 뿐, 기업의 활동에 관여할 힘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는 수요자와 공급자라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 좀 더 높은 차원의 이해 관계자로서 기업의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요구할 수 있게됐다. 소비자의 인식은 기업 활동의 목적을 단순한 영리의 추구에 한정시켜선 안 되고 사회 내에서 일정한 공익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기업의 CSR은 소비자를 향해 있다. 기업 CSR 활동의 시작은 소비자를 향한 출발점이다.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착한 기업’으로서 이미지를 어필해 브랜드파워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금까지의 사회공헌 활동 홍보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회공헌활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유치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SR 활동이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 수단에 머물고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흔하다. 엘카코리아는 에스티로더, 크리니크, 바비 브라운, 맥, 라메르 등 유명 해외 화장품 브랜드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 10여년간 핑크리본 캠페인에 참여, 유방암 예방활동과 무료검진, 유방암 환우돕기에 해마다 1억원 이상 기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자사 백화점 매장 테라피스트로 있었던 직원이 매장 내에서 양수가 터져 아이를 조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직원은 의사로부터 조산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급 휴직을 쓰고자 했지만 회사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회사는 ‘법적으로 책임이 없으나, 직원들이 모금을 했으니 이걸로 마무리 하자‘며 돈을 건넸고 ‘방귀 뀌다가도 하는 것이 조산’이란 발언으로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에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엘카 코리아에서 매년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통해 한국 여성 인권과 건강권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회사 소속 여성 노동자에 대한 모성권 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과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기업이 CSR을 하나의 경영 원칙으로 두고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마케팅 방식의 하나로 진행해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기업의 이중적 태도에 대해 소비자 역시 적극적으로 비판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엘카 코리아는 여전히 국내에서 4700억원의 연매출과 7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국내 1, 2위를 다투는 화장품 수입업체다. 더욱이 지난 5월 엘카 코리아가 실시한 패밀리세일 첫날부터 수백명 인파가 몰려들었다. 수입 화장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패밀리세일을 찾은 여성들의 의견이었다.

제일기획의 설문조사가 현실에 반영되고있다면, 소비자들은 엘카 코리아의 비윤리적 경영 실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패밀리세일 줄에 서있지 않았어야 했다. 소비자들은 사회공헌 활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단지 ‘인식하고 있을 뿐’ 실제 구매행태를 바꾸지는 않는다.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기업만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역시 그러하다.

이런 소비자의 태도는 기업의 이중성을 강화한다. 소비자가 비윤리적 경영태도를 보이는 회사의 제품을 계속 구매한다면 그 기업은 자신들의 경영 원칙을 소비자에 맞출 이유가 없다. 사회공헌활동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계속 피상적으로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CSR이 하나의 트렌드로 머물게 된다면 사회공헌활동의 미래는 밝지 않다.

CSR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브랜드 이미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소비자는 기업의 CSR 활동을 평가할 정보가 부족하다. 구체적 평가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았다. 한국 기업들의 CSR은 적절한 평가를 통해 시장에서 소비자의 브랜드 파워로 연결되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각 기업의 이미지에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는 기업이 원하는 ‘착한’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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