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기자단 심혜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제지업체 유한킴벌리가 개발로 인한 산림파괴를 막고 건강한 숲을 만들자는 취지로 1984년 시작한 캠페인의 슬로건이다.

지난 2000년 국내 최초 유방건강 비영리 공익재단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한 아모레퍼시픽은 2001년부터 유방건강을 주제로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핑크리본’ 캠페인을 13년째 주관하고 있다.

요즘엔 이런 단순 캠페인을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 다양하게 펼쳐지고있다. ‘청소년들에게 음료수 대신 하루 6잔 물 마시게 하기(웅진 코웨이)’, ‘8살 뚜이에게 새 집이 생겼습니다(아시아나 항공)’ 등 최근 눈에 띄는 광고들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자신의 활동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착한 기업,특CSR에 적극적인 기업을 원한다. 기업들이 사회적 요구에 응해 CSR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기업의 CSR 활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나타난 대기업의 독과점 심화, 방만 경영 등 폐해를 덜기 위해 CSR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것. 이런 흐름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끌어온 미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다.

미국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며 당시까지의 수정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바꿨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당시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침체속에 물가가 크게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채택됐다는게 정설이다.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하고 시장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부의 시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불황을 극복하고 나이키, 맥도날드 등 수많은 다국적기업을 배출하며 세계화 시대의 명실상부한 선두주자가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부작용을 마주하게 됐다. 네그리와 하트(A. Negri & M. Hardt)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폐해는 ‘초국적 기업의 권력화’다. 내수시장을 넘어 국제시장의 ‘살아있는 권력’이 된 초국적 기업은 국경에 구애받지않으며 자원을 할당하고 노동을 배분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초국적 기업은 정치계 로비에 따른 정경유착, 개발도상국 노동력 착취 등 폐해를 발생시켰다.

미국의 스포츠브랜드 나이키는 이런 흐름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례다. 나이키는 비용절감을 위해 모든 생산을 개발도상국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런데 1993년 7월 미국 CBS TV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공장의 노동자가 시간당 19센트의 급여를 받으며 일주일 중 단 하루, 일요일을 제외한 6일간 일하며 노동착취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보도가 나자자 나이키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이미지쇄신을 위해 고용 개혁을 단행한다. 나이키는 스니커즈 생산 노동자의 최저연령을 18세, 의류 생산 노동자의 최저연령을 16세로 각각 제한하고, 모든 공급업체에 미국의 청정대기기준을 적용토록 하며,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연이어 도입했고, 결과 역시 미국에서와 마찬가지였다. 시장 자율이란 명목아래 전개된 수많은 친기업 정책에 힘입어 몇몇 대기업들이 급성장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자본을 이용해 정치세력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나갔고, 겉모습이 근사한 복지·문화사업의 울타리에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끌어들이면서 독점적 사업구조의 기반을 다졌다. 상당수 대기업은 탈세와 뇌물, 노동자 탄압, 독과점체제를 이용한 가격담합, 하청업체에 대한 횡포를 일삼으며 이윤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기업들은 이런 악습을 버리고 CSR 활동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그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소비자와 근로자의 의식 변화다. 자신의 권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적 태도가 정착되면서 경제 영역에서도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기업의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소비자단체가 영향력을 급격히 키웠다. 쾌적한 근무환경과 노동에 따른 적절한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힘도 양적·질적으로 변화했다. 이는 시민사회에 적잖은 파급효과를 일으켜 일반국민들 또한 기업의 행위가 옳은지 그 정당성을 따져묻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기업이미지가 곧 그 기업의 경쟁력인 사회에서 이는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이제 기업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방어책의 일환으로 ‘인간중시 경영’을 내세운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요인은 정보화 시대다. 1990년대 후반이후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 환경이 급격히 전개되는 상황. 기업과 소비자 간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소비자는 기업을 감시하는 일이 쉬워졌다. 특히 SNS의 엄청난 파급력과 확산속도로 인해 기업은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감시에 노출돼있다. 결국 기업들은 좀 더 빨리 적극적으로 CSR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SNS 같은 신매체의 등장이후 주주와 소비자 외에도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기업내 임직원, 정부, 지역사회, 관련기업, 언론 등 이해관계자들은 정보매체가 다양해지고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기업을 향한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기업은 가능한 이해관계자 모두를 포섭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바꾸게됐다. 이처럼 기존의 주주중심경영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고려해 경영하는 방식을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모델이라 한다. 지속가능경영의 일환으로 CSR경영의 초석이 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세계화’다.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초국적기업의 힘을 강화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내기업의 국제시장 진출도 활성화했다. 비교적 일찍이 CSR 활동에 눈을 뜬 초국적 기업들처럼 국내기업들도 글로벌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CSR경영을 필수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11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발표한 ISO26000 등 기업윤리에 대한 국제표준들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초국적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갖가지 국제표준에 적극 대응할 수 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이 CSR을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CSR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업경영의 한 방식으로 완전하게 뿌리내리기까지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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