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구혜정 기자
서울특별시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대한항공이 서울시를 상대로 송현동 부지매각 추진을 방해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신청하는 초강수를 뒀다. 

대한항공은 서울시를 피신청인으로 한 고충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청했다고 13일 밝혔다.

송현동 48-9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결정하기 위한 일련의 행정절차의 진행을 중단해달라는 취지다.

대한항공이 소유한 송현동 부지는 현금 확보를 위해 매각할 제1순위 자산이었다. 경복궁 옆의 거대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던 바로 그 땅이다.

1만 1000평 (3만6642㎡) 규모의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곳으로, 매각 예상 금액도 5000억원 수준으로 점쳐지고 있었다.

현재 대한항공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인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이에 대한항공은 유휴 자산이나 비사업 부문의 자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구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특별시가 이 부지를 역사문화공원으로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예상 매각 금액이 한참 낮게 책정되거나, 매입을 원하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서울시가 개발 인‧허가권을 쥐고 있어 사실상 부지를 매입하더라도 매입자가 원하는 대로 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한항공 측은 “총 15개 업체가 입찰참가의향서를 제출한 바 있으나 서울시의 문화공원 지정 및 강제 수용 의사가 언론을 통해 공표되자, 제1차 입찰마감일인 10일에 15개 업체 모두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가 유찰된 탓을 서울시에 돌렸다. 서울시의 도시계획시설결정 시도가 위법이며, 서울시가 사실상 매각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장기 미집행 중인 공원 및 송현동 부지 인근에 소재한 무수한 공원이 있다는 점에서 서울시의 공원 조성 계획이 ‘(일반적‧개별적)필요성’ 및 ‘공공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사진. 다음 지도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사진. 다음 지도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해당 부지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특수성이 있다”면서 “1900년대 후반 친일파 사대부의 거주지로, 삼성생명과 대한항공이 소유한 뒤 줄곧 시민이 밟아볼 수 없던 땅이라 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공성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에 이 땅은 경복궁을 보호하던 숲이 있던 곳이었으나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안동 김 씨 김병주가 이곳에 보란 듯이 저택을 마련했고, 이후 친일파 윤덕영 형제에게 넘어갔다.

이들이 1919년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설립된 일본의 조선식산은행에 소유권을 넘겼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로 쓰였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데다 인근에 학교만 3곳이라, 당초 상업적인 개발이 어려운 부지로 평가받는다.

앞서 삼성생명 역시 미술관을 세우려다 실패했고, 그 다음 땅주인인 대한항공은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다 학교 주변에 호텔 설립을 금지하는 학교보건법에 막혀 개발을 포기했다.

그 결과 23년간 땅은 그대로인 채 주인만 바뀌어왔고 시내 한복판에 섬처럼 남은 상태다.

공원 조성하면 돈은 언제 받나...대한항공, 안절부절

서울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대한항공이 처한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다”면서 “한시라도 빨리 (해당 부지를) 매입해 대금을 치르는 것이 대한항공 측에도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공원 조성 계획으로 인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비판했다. 해당 부지를 매입할 서울시 예산이 부족한 상태며, 현행법상 분할지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사 착수 시기를 2022년 이후로 조정해 토지보상금 지급 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예상대로 공사를 지연하게 될 경우 대한항공은 당장 급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된다.

대한항공이 밝힌 바에 따르면 공원 수용이 계획되어 있으나 미집행된 곳의 사업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1조9964억원, 2021년 이후에는 14조 9633억원이 필요하다.

이미 계획 중인 사업에 필요한 비용도 많아 송현동 부지 매입에 예산을 집행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토지보상법상 일괄보상이 원칙이므로, 서울시가 2021부터 2년에 걸쳐 토지보상금을 분할지급한다는 내부 방침은 이를 위반한다고 반발했다.

서울시가 공사 착수 시기를 조정하면 보상금 지급은 2022년에나 가능하므로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대한항공에는 치명적이다.

물론 토지보상법 제62조에 따르면 토지소유자인 대한항공이 승인하면 서울시는 보상금을 분할지급할 수 있다. 다만 자금 조달이 시급한 대한항공이 이를 용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한항공은 또한 서울시가 대략적으로 산정한 보상금액 4670억원도 적절한 가격이 아니라는 입장이며, 서울시가 재원 확보 등을 이유로 언제든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공공개발기획단은 지난 4일 서울시보에 ‘북촌지구단위 계획 변경안’에 대한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내용의 열람공고를 이미 게재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서울시가 토지 보상금액을 4670억원으로 책정한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시는 주민 및 종로구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공원 조성 계획에 착수하겠지만, 시의 의지가 확고해 기존 계획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은 이에 “당초 계획대로 송현동 부지에 대한 2차 입찰을 진행할 계획이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녹록치 않다”며 “절박한 심정을 담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 민원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그럼에도 “송현동 부지 매각 진행과는 별도로 서울시와는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실히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대한항공은 채권단인 국책은행으로부터 송현동 부지가 당초 매각을 예정했던 자산이라고 지적하면서 대규모 자금 지원에 걸맞는 추가적인 자구안(재무구조 개선안)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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