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공익법인들. 사진 : 미디어SR 데이터베이스

[미디어SR 이승균 기자] 정부의 공익법인 관리 체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관청이 공익법인에 대해 인가를 해주고도 사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나 나눔의 집 외에도 상당수 공익법인의 회계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9일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 복수 정부부처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기부자가 낸 기부금이 용도에 맞게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고 있는 중앙부처는 아예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익법인이 기부금을 유용하더라도 신고할 수 있는 창구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익법인 공시자료를 취합하는 국세청 조차 결산서류에서 미비점이 발견되더라도 직접 조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기부자나 제3자가 문제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창구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정 공익법인에서 탈세 등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관련 자료를 모아 관할세무서나 직접 단체에 이야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지난 3월 불성실 혐의가 포착되는 공익법인에 대한 검증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기로 했으나 탈루 항목 위주 사후관리,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고 있어 다수의 일반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실정이다.

실제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를 통해 잘 알려진 공익법인의 결산 서류를 조회한 결과 다수 공익법인에서 수억원의 예산을 사용하고도 지출 명세서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공익법인은 자산 규모 100억원 이상으로 외부 회계 감사를 받고 감사보고서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나 표지만 공개하는 꼼수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의 한 회계사는 미디어SR에 "기획재정부에 서류만 제출하면 성실 공익법인으로 지정된다"면서 "현실적으로 공시 자료를 살펴보는 사람이 없어 사익 편취를 하더라도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상증세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따른 기부금품 지출 명세서 작성 원칙에 대한 해석조차 모호한 실정이다.

기부금이 아닌 수익사업의 수익과 기부를 받았더라도 그해 기부받은 금액이 아니라면 지출명세서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부 공익법인은 이같은 해석을 토대로 법인 투명성의 기본이 되는 지출 명세를 약식 기재하거나 기재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에 구체적인 상증세법 시행령 시행규칙 해석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앞서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기부금이 아닌 예산 사용은 기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1000개 공익법인 2명이 관리, "관리 감독 불가능하다"

중앙부처의 관리 감독 소홀은 권한을 위임받아 공익법인 관리 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에게도 불만이다. 

2000여개 내외 비영리법인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사업 실적 보고를 받고 있으나 1000개 내외 체육법인을 담당자 두 명이 담당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사업 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중앙부처에서 오히려 공익법인 업무를 회피하고 있어 지자체가 허가를 주로 해주고 있고 전국적인 사업을 원하는 공익법인이 지자체에 와서 인허가를 받아 담당하는 법인의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2명의 담당자가 1000개가 넘는 공익법인을 맡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개별 공익법인이 벌이는 목적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법제 해석을 요청해도 누구 하나 제대로 답변해주는 것이 없다"면서 "인가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라고 회신하고 있으나 법무부에 나온 업무 편람을 토대로 매뉴얼 대로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부처는 물론 주무관청에서도 공익법인 업무 전담자가 없고 개별 부서에서 겸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형 사회복지법인의 한 관계자는 "세법이 개정돼 자산의 1% 의무 지출 조항이 생겼는데 국세청 그 누구도 기준자산이 무엇인지조차 속 시원히 답변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부처 한 관계자는 "담당자가 매뉴얼을 힘들게 숙지하더라도 수시로 담당자들이 변경되고 있어 일일이 답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 시민공익위원회 설치 TF 법무부는 묵묵부답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당시 기부금 유용의 창구로 활용된 미르 재단 사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공익법인의 건강한 성장과 투명성 및 공정성 강화를 위해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국정과제로 선정했으나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3월 법무부에서 `공익법인 총괄기구 설치에 관한 TF`를 구성했으나 법무부는 공익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해서 내세우고 있다.

공익법인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법무부가 내놓은 시민공익위원회 설치 정부안이 그동안 다수 전문가가 강조해 온 설립은 간편하게, 사후 관리는 철저히라는 기본 구조와 정치적인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어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시민공익위원회 설치 정부안 추진 일정에 대해 수차례 문의했으나 답변받지 못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은 오히려 공익법인을 관리감독하는 실무자들이다.

1000개 내외 비영리단체를 관리하는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시민공익위원회 설치를 2년이상 끌어오고 있어 결국 부처별 규칙에 얽매이는 공익법인도 자유롭게 사업을 하기 힘들다"면서 "일부 공익법인은 관리 감독이 안돼 시민사회의 공익법인에 대한 믿음도 잃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