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부문 수익 증가, 브로커리지 수익 감소…애널리스트 위상 축소
코로나19 탓, 브로커리지 시장 증대…애널리스트 다시 늘어날까
전 애널리스트 중 유튜버로 변신해 무림강호에 뛰어드는 사례도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총 57개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는 모두 1077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당시 1500명 정도였던 애널리스트들이 10년 새 500명 가까이 감축된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감소 추세는 비단 중소 증권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증권사 역시 예외가 아닐 정도로 애널리스트 수난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5월 기준으로 주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수를 살펴보니 NH투자증권이 74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삼성증권이 71명으로 바짝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신한금융투자 69명, KB증권 65명, 미래에셋대우 61명, 한국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 각 52명 등 7개 사가 50명 이상의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메리츠증권 39명, 대신증권 38명, 키움증권 30명 등의 분포를 보였다.
사라지는 애널리스트, 왜?
선망의 대상이었던 애널리스트들이 퇴출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업계에서 RA(Research Assistant)부터 애널리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견습생 신분인 RA가 애널리스트 타이틀을 얻고 공식 활동하기 까지는 길고도 험난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오랜시간 힘겨운 수습 과정을 거쳐 정식 애널리스트 타이틀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억대 연봉을 받는 등 대접이 달라진다. 하지만 요즘에는 고생끝에 애널리스트가 된다고 해도 예전처럼 사회적 인정을 받기가 어렵다.
증권가의 '꽃'이 '낙엽'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증권사의 수익 구조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기존에는 증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리테일 사업이었다. 따라서 `브로커리지` 즉 개인 또는 법인 고객들을 유치해 이들의 주식과 채권 등의 매매를 담당하고 발생하는 수수료를 취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꼽혔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의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 비중은 2011년만 해도 67.9%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브로커리지 수수료 비중은 30% 중반대로 급락했다.
최근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해외 대체투자 등 IB(투자은행)가 증권사 포트폴리오에서 파이를 넓히면서 브로커리지에서 IB(투자은행)쪽으로 갈아타는 애널리스트들과 RA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적은 인력으로 큰 규모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는 IB부문에 그동안 공을 들여왔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과거의 애널리스트들은 미래 수익을 담보삼아 도제식으로 양성돼왔다"면서 "하지만 요즘에는 과거와는 양상이 확달라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에는 IB가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브로커리지 보다 IB쪽을 선호하는 금융 인력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애널리스트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로커리지의 감소 추세와는 달리 지난해 IB부문 수수료는 36%로 전년 동기 보다 8.6%나 몸집을 불리며 점차 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이 내놓은 2019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IB부문의 존재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지난해 IB부문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은 전년보다 33.8% 증가한 2648억원에 이른다. 전체 순이익 대비 39.86% 비중으로 2142억원으로 수위를 달리던 트레이딩 부문의 수익도 넘어섰다.
NH투자증권은 전체 순이익의 52.46%에 해당되는 2508억원의 IB수수료 수익을 거둬들였다. KB증권의 경우, 전체 순이익 대비 IB 비중이 무려 59.46%에 달했다. 한국투자증권도 IB수수료 수익이 전체 순이익의 40%인 2886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수탁수수료 규모는 2907억원에서 2374억원으로 기세가 꺾였다.
일각에서는 수년 간 과열된 리테일부문의 무료 수수료 경쟁 탓으로 브로커리지부문의 수익이 대폭 감소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분위기도 애널리스트 감소 추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지만 일부 애널리스타 개인자격의 유튜버로 변신해 SNS공간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쌓아가는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는 감소세지만 유튜버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고 무림강호에 뛰어든 전직 애널리스트들도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 두곳 모두 초대형 IB 신용등급을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한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대형 증권사를 곤경에 빠뜨렸던 유동성 이슈가 일단락됐고 올 1분기 실적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펀더멘탈 저하 수준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신중한 접근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의 올 정기평가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AA)와 NH투자증권(AA+), 한국투자증권(AA), 삼성증권(AA+), KB증권(AA+) 등 초대형 IB의 신용등급이 그대로 유지됐다.
코로나19가 애널리스트, 다시 활짝 피게 할까
코로나19는 일상생활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브로커리지 부문의 수요가 늘어나 애널리스트들이 다시 각광받게 될지도 모른다.
IB쪽에 큰 관심을 보였던 주요증권사들은 올 1분기 IB쪽 실적에서 상반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IB 부문만 놓고 보면 미래에셋대우가 782억원의 순영업수익을 기록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한 실적이다.
NH투자증권의 수익은 668억원이었으나 이 역시 12% 감소한 수치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26%나 수익이 증가했다. KB증권도 분기 순이익은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IB부문 순이익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량 늘었다.
이로 인해 증권사의 전체적인 실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형 증권사의 주 수익원으로 떠오른 IB사업은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향후 사업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주식 거래 확대로 브로커리지 부문의 이익기여도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하지만 증권사의 주 수익원은 여전히 IB가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속에서 자금 조달금리 상승과 부실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규제 강화 등 여파로 인해 예전과는 달리 IB부문의 고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최근 증권사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면서 한쪽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면 다른 쪽이 빠진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사업 구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보완기능을 고려한 신축적 운영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안정적 경영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확산을 계기로 브로커리지 부문이 IB부문의 수익을 앞서는 상황이 지속되면 애널리스트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동학개미운동과 같은 현상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브로커리지 수익이 높아지는 그같은 상황이 수년간 지속되면 애널리스트의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럴 경우 애널리스트 감소세가 멈춰지고 증가세로 선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가 줄어드는 현상, 바람직한가
애널리스트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면 부실 보고서가 양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지금도 한 명의 애널리스트가 맡아야 할 업무가 많은데, 애널리스트가 더 줄어들면 양질의 보고서가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수익원이 IB쪽으로 치중되면서 애널리스트의 숫자도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영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각 증권사별로 애널리스트가 줄어든 탓에 그들이 생산하는 리서치 보고서가 부실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면 투자자가 증권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가 줄어든다고 해서 보고서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맞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애널리스트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것일뿐 옳고 그름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증권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애널리스트가 사라지는 것은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섹터의 담당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이에 따라 남아있는 애널리스트가 자기 업무 이외에 책임져야 할 섹터가 더 늘어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