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김민영 디자인 기자.

[미디어SR 이승균 기자] 문주현 엠디엠 회장은 경험과 아이디어 하나로 20여년 만에 국내 최정상 디벨로퍼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부동산개발업자를 넘어 금융과 건설을 묶은 총지휘자로,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서 나날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문 회장은 1958년 전남 장흥의 가난한 시골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편이 어려워 농사를 지어야 했으나 `인생은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광주 직업훈련소(현 한국폴리텍대학)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하루 15시간씩 공부에 매진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27세 나이에 경희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이후 나산실업에 입사한다.

나산실업에서 문 회장은 부동산의 매력에 눈뜨게 된다. 지금은 일반화된 주상복합, 주거용 오피스텔 개념을 처음 개발해 입사 6년만에 별(임원)을 다는 기록을 세운다.

문회장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준 안병균 나산실업 전 회장을 존경하며 마음속 스승으로 깍듯이 모신다는 전언이다.

오늘날 그가 얻은 `대한민국 베스트 디벨로퍼`라는 명성도 사실은 안병균이라는 `거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나산실업이 갑작스레 부도가 나자 그는  불과 5000만원으로  엠디엠을 창업한다. `홀로서기`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업가적 특유의 안목과 원만한 인간관계 등에 힘입어 문 회장은 창업이후 승승장구하게 된다.

해운대 대우 월드마크 센텀, 판교 프루지오 월드마크, 동탄 더샵 레이크파크 에듀타운, 광교 레이크파크, 이편한세상 삼송 오피스텔, 광교 레이크시티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전국의 땅을 주무르며 요리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얻은 별명이 바로 '토지(土地) 셰프' 다. 이제는 문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한다.

그는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한 뒤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 2015년 한국자산에셋운용을 세워 국내 최초로 부동산 개발과 신탁, 캐피탈, 자산운용 등 부동산 관련 모든 계열사를 수직계열화하는 경영수완을 선보인다.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문 회장은 사회공헌에도 유달리 관심이 많다. 엠디엠 창업 3년만에 10억원의 거금을 손에 쥔 그가 가장 처음 한 일은 바로 '문주장학재단' 설립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힘겹게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을 볼때마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물심양면으로 돕는다는게 어느새 그의 일상이 됐다.

문 회장은 2001년 5억원을 재단에 출연하고 지난 4월까지 20년간 무려 3023명의 학생에게 57억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등 사회적 책임 구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금도 장학재단 출연재산 582억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운용하며, 젊은 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전도사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안병균

안병균 회장은 나산실업 창업자다. 부동산에 관해 문외한에 가깝던 젊은 시절의 문주현 회장을 디펠로퍼 업계의 1위로 이끈 주인공이다.

1980년대 후반 연매출 2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나신실업에 입사한 문 회장은 용적률이라는 용어 조차 제대로 모르던 말단사원에 불과했으나 안 회장의 사업 구상과 인사이트를 단기간에 배우고 익혀 안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기에 이르른다.

오피스텔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안 회장의 지시로 문 회장은 곧바로 시장조사에 뛰어들게 된다. 그 날부터 문 회장은 마포 오피스텔, 강남역 지하상가 등을 직접 발로 뛰며 감각을 익힌다.

문 회장은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내다봄으로써 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그후 선릉역 샹제리제센터를 기획 분양해 수익형 부동산 붐을 일으키게 된다. 

선릉역의 샹제리제센터는 안회장의 인사이트가 녹아있는 일종의  대표작이다. 안 회장의 뛰어난 안목과 문 회장의 부지런함이 멋진 작품을 빚어낸 셈이다.

안 회장은 이를 계기로 경기도 포천 골프장 개발, 빌딩, 건설과 인테리어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의류 브랜드 조이너스를 만든 안 전 회장은 문 회장과 함께 성공의 역사를 차근차근 일궈갔으나 IMF구제금융으로 치닫던 외환위기의 광풍만은 비껴갈 수 없었다.

안회장은 유통업에 진출하며 영동백화점을 인수한 이후 유통, 종합건설, 관광·레저, 컨설팅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자금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1998년 외환위기의 와중에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는다.

김규철

김규철은 한국자산신탁 대표이자 문 회장이 일을 믿고 맡기는 장흥 고향 후배다. 2007년 12월 문 회장이 그를 엠디엠의 부사장으로 발탁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김 대표는 문 회장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한국자산신탁이 매물로 나오자 유력 금융지주를 제치고 인수에 성공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자산신탁 부사장, 사장을 거쳐 2017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김 대표는 한국자산신탁 인수 성공 이후에도 곧장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해 2016년 한국자산신탁을 직상장한다.

여신전문 금융기관인 한국자산캐피탈과 자산운용사인 한국자산에셋운용을 설립해 엠디엠의 부동산 금융 수직계열화 작업을 주도한 것도 김 대표다.

엠디엠이 부동산 개발에서 금융으로 중심축을 옮기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 문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귀남

"사업 수완이나 도전정신보다 배려와 희생정신을 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문주현 회장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문 회장의 고향 선배인 이 전 장관은 문 회장의 큰딸 주례를 설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문 회장은 동향 모임에서 이귀남 전 장관을 한결같이 정성껏 챙기며 친분을 유지해 왔다. 이 전 장관도 문 회장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매번 자리를 함께 하며 격려하곤 했다.

고향(장흥)의 법조계 및 산업계 대표가 의기투합한 모양새다. 문 회장은 동향 모임 자리에서  "이귀남 전 장관님을 잘 보필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장생회(장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이 전 장관을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생회

장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남 장흥 출신의 문주현 회장에게 장생회는 장흥을 넘어 사회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네트워크다.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문화 예술인, 기업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장흥군 향우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문 회장은 장생회와 같은 뿌리로 서울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장흥 출신 젊은이들 모임인 탐진포럼과 장생회가 합쳐진 '장생탐진포럼'의 고문으로도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별 강연에 나서는 등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같은 장생회 출신 안황권 경기대 교수가 문주장학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박진순

한림건축그룹 회장이다. 그는 문 회장을 가장 닮고 싶은 사람으로 꼽는다. 박 회장은 문 회장이 걸어온 길을 걷고자 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로 문 회장의 팬이다. 문 회장은 그에게는 어려운 상황에서 만난 인생 선배로 통한다.

2015년 골든튤립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의 설계를 맡은 박 회장은 당시 신탁회사가 분양가격이 높아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문 회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문회장의 사업가적 감각을 토대로 엠디엠이 이 사업에 합류한 뒤 사업이 물흐르듯 추진되기 시작했다.  한국자산신탁이 신탁사업으로 시행한 이 호텔은 현재 '강릉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박 회장은 문 회장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부동산개발협회(KODA)의 정책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업계의 발전을 위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바둑

문주현 회장의 취미는 바둑이다. 공인 아마 5단 바둑 실력자로 알려지고 있다.

본인은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명예 5단' 단증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며 겸손해 한다. 

문회장은 서울시 탁구협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운동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인지 탁구나 바둑 등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통한 사회공헌에 나설 때 큰 행복감을느낀다고 한다.

특히 문 회장은 바둑을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업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두뇌 스포츠로 여긴다. 집을 지어 파는 일과 집을 지어 승부를 가리는 바둑은 닮은 꼴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바둑에서 맥점 하나로 단번에 상황이 역전되듯 사업에서도 아이디어 하나로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전투형 바둑을 즐기는 문 회장에게 바둑은 취미를 넘어 사회공헌의 무대이기도 하다.

문 회장은 한국여자바둑 프로리그전을 창설해 4년 이상 후원하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기원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제여류프로기전에서 한국 기사가 두차례나 우승하며 기염을 토할수 있었던 데는 문회장의 남다른 바둑사랑이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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