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공식 초청돼

배우 안재홍. 사진. 넷플릭스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사냥의 시간’의 장호는 불완전한 인물이다. 결핍된 정서를 보여주는 그에게 준석(이제훈)의 무리는 안식처이자 곧 가족이다. 그래서 그들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던 장호는 현실과 마주하고 가장 큰 성장을 보여준다. 안재홍이 완성한 장호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기에 어딘지 모르게 더욱 눈길이 간다. 그래서 그의 성장이 더욱 깊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장호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주목했다는 안재홍이 보여준 장호의 양극단은 ‘사냥의 시간’의 페이소스를 견인하는 힘이 됐다. ‘사냥의 시간’에서 안재홍이 펼쳐낸 변주가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Q. 초반에는 장난기가 많고 친구들의 관심을 갈구하던 장호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안쓰러움을 자아내며 성장을 이뤘어요. 장호의 캐릭터 방향을 어떻게 잡고 만들어갔나요?
안재홍:
영화를 관통하는 것이 장호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장호는 큰 변화를 겪어요. 초반에는 희망 없는 청춘의 모습이지만 갈수록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돌파하죠. 한(박해수)에게 총을 겨눈 것도 장호로서는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장호의 성장기처럼 변화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었어요.

Q. ‘사냥의 시간’은 우리나라의 근 미래적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내 관심을 받았어요. 평소에도 이런 세계관에 흥미가 있는 편인가요.
안재홍:
잘 접해보지는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게는 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왔어요. 디스토피아를 추구하는 SF물은 아니지만 가상의 세계관을 가진 작품인 만큼 쉽지 않기에 더욱 귀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죠. 공간 속에 흠뻑 빠져서 뛰어놀았어요. 2030년이라는 임의의 시대상을 만들어서 장면마다 세팅이 필수적이었어요. 미술과 조명의 리터칭도 들어갔지만 로케이션 자체에도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에요. 독특한 분위기가 많이 느껴져서 더욱 재미있고 신났어요.

배우 안재홍. 사진. 넷플릭스

Q. 203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시대를 짐작할 수 없는 소품들도 눈에 띄었어요. 
안재홍:
세계관 구축을 위해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지하주차장 장면에서도 클래식 자동차로만 배치를 해놓으셔서 영화 속 시대상을 만들어주셨어요. 연기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런 세심함 덕에 시대와 공간을 쉽게 믿을 수 있었어요. 저 역시 굳이 세계관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고 꾸며주신 대로 믿어가며 촬영에 임했죠.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야기인 만큼 붕괴된 시스템에서 절박한 청춘이 느끼는 마음에 몰입하려 했어요.

Q. 장호는 극 전반에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에요. 그래서 다소 무모한 준석의 계획에도 쉽게 동화되죠. 결핍된 정서가 많은 장호를 어떻게 해석했나요?
안재홍:
제가 설정한 장호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상처가 짙게 남은 인물이에요. 사회의 폭력에 일찍부터 노출된 만큼 상처도 깊고 그로부터의 외로움도 클 거라 생각했죠. 그 세계에서 끄집어내준 게 준석이어서 더욱 그에게 의존한 것 같아요. 그런 인물이 한이라는 존재를 만나 도망만 치다 끝내 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느껴지길 바랐어요. 늘 외로워하며 누군가에 의지만 하던 장호가 어려움에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작품의 전환점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연기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예요. 기존에 이런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던 만큼 장호가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안재홍:
연기자는 해보지 못한 역할을 연기할 때 가장 신나요. 흔치 않은 만큼 귀하기 때문에 더 잘해내고 싶었죠. 다소 까칠한 면이 있고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누기까지 하는데, 이런 인물을 나중엔 응원할 수 있게 페이소스를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연기하면서도 기분 좋고 특별한 시간들이었어요. 저라는 연기자가 가진 면을 변주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장호를 연기하며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캐릭터에 애착이 커요. 끝까지 고민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배우 안재홍. 사진. 넷플릭스

Q. 독특한 헤어스타일도 눈에 띄어요.
안재홍:
장호의 스타일링이 대본에 나와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로에서 삭발 상태로 공연할 때 감독님이 그걸 보시고는 이런 모습이 장호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죠. 인물의 외면을 대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삭발과 함께 애쉬 컬러로 탈색해봤어요. 스트릿 패션도 캐릭터성을 더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선택하게 됐어요. 의상팀의 고생이 정말 많았던 작품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거칠게 보이고 싶어서 특수 분장 정도만 하고 메이크업은 따로 하지 않고 임했어요.

Q. 장호에게 호흡기 질환이라는 설정이 붙은 것도 생각할 여지를 더욱 준 것 같아요. 장호가 호흡기를 이용할 때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신경을 쓰게 됐거든요(웃음).
안재홍:
장호가 뭔가에 의존하는 성향이 짙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 같아요. 호흡은 곧 생존과도 직결돼 있으니까, 삶 자체를 나타낼 수 있는 장치였다고 생각했어요. 이 외에도 장호는 자는 척을 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엿듣곤 하는데, 의존적인 인물인 만큼 준석과 기훈(최우식)이 나누는 이야기가 궁금하고 또 그들에게 붙어있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Q. 이외에도 장호는 혼자 총을 다룰 줄 모르는 등 핸디캡이 많은 인물이에요.
안재홍:
감독님은 장호에게 핸디캡을 많이 부여하려 하신 것 같아요. 총에 공포심을 가진 사람이 나중엔 한을 향해 총을 겨누고 준석을 위해 총을 쏘게 되니까요. 핸디캡을 극복하는 그 순간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극에서 장호의 특기가 자동차를 탈취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총도 못 쏘고 호흡기 질환도 가진 인물이 장기를 발휘할 때 더욱 재미와 신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기를 부여받았을 때 장호가 자기 몫을 해낸다는 느낌이 들어 짜릿했어요. 감독님이 준석이가 이야기를 운반하는 인물이라면 장호는 정서를 운반하는 인물이길 바라셨는데, 장호를 통해 페이소스가 확실히 느껴진 것 같아요.

배우 안재홍. 사진. 넷플릭스

Q. 도박장을 터는 장면과 준석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네는 장면은 장호라는 인물의 양극단을 가장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안재홍:
저도 그 두 장면이 가장 애착가요. 장호가 가진 거친 모습과 그의 마지막 진심을 털어놓는 장면을 통해 장호로서 양극단에 놓인 감정을 보여줄 수 있었죠. 저 역시도 연기하면서 인물을 넓게 보여드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캐릭터를 변주해낸다는 건 늘 기분 좋은 작업이에요.

Q. ‘킹덤’에 이어 ‘사냥의 시간’까지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이게 됐어요. 전 세계 공개에 대해 기대감도 클 것 같은데.
안재홍:
190여 개의 나라들에 동시 공개돼 기쁘고 설레요. 제가 ‘트래블러’ 촬영 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는데, 맥주를 파는 펍의 직원 분이 넷플릭스에서 저를 봤다면서 아는 척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이번에도 ‘사냥의 시간’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사냥의 시간’은 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인 작품이에요. 특히나 배우들의 친밀감은 연기가 아닌 실제로 느껴졌죠.
안재홍:
신기하게도 친밀감을 따로 쌓을 필요가 없었어요. (이)제훈 형과 (최)우식이, (박)정민이와 (박)해수 형까지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난 건데 마음이 그냥 잘 맞았어요. 같은 작품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사냥의 시간’에서 모이게 되니 좋았죠. 친해지기 위한 시간이나 노력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 자체로 어울려졌고, 그 자체로 배역으로서 느껴졌어요. 마음이 잘 맞았던 만큼 그런 모습이 작품에도 잘 담긴 것 같아요.

배우 안재홍. 사진. 넷플릭스

Q. 동료 배우들이 모인 만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요. 그 나이대의 배우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나요?
안재홍:
또래 배우들끼리는 사실 다 같은 마음이에요. 좋은 작품을 만나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연기자로서는 가장 좋은 갈망이죠. 별 다를 것 없이 작품과 연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Q. 이번 작품이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공식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영화제에서의 기억이 어떻게 남았을지 궁금해요.
안재홍:
영화제의 가장 큰 극장에서 ‘사냥의 시간’이 상영됐어요. 1600석 전석이 매진됐죠. 배우들 중에서 제가 가장 먼저 입장했는데, 정말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셔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고요(웃음). 살면서 잊을 수 없는, 굉장히 벅차오르는 순간이었어요. 관객 분들이 영화에 집중하는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느껴져서 더욱 기뻤어요. 베를린영화제는 관객들이 냉정해서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으면 자리를 뜬다고 들었는데, 무대 인사를 할 때도 관객 분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환호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Q. ‘사냥의 시간’이 배우 안재홍에겐 어떤 작품으로 남게 될까요.
안재홍:
‘사냥의 시간’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좋은 갈망으로 시작했던 작품이에요. 작품에 참여해 기뻤고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저와 닮지 않은 인물을 만들어 간, 쉽지만은 않았던 작업이었죠. 정말 치열하게 임했던 현장이었어요. 관객 분들에게 사실성을 드리고 위해 장호라는 인물로서 극단의 감정까지 몰아붙인 시간들이었어요. 감회가 새로운 만큼 오래도록 사랑 받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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