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훈의 유토피아
[인터뷰] 이제훈의 유토피아
  • 김예슬 기자
  • 승인 2020.05.07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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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토피아는 영화와 배우로서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사냥의 시간’에서 준석은 모든 일을 계획한 설계자임과 동시에  '한'이라는 위험과 맞닥뜨리는 인물이다. 우정과 죄책감, 공포 끝에 결연해지는 그의 감정 변화는 이제훈을 만나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났다. 이번 작품을 통해 넷플릭스 플랫폼을 경험한 그는 연기를 통해 더욱 폭넓은 소통을 꿈꾸고, 시류의 변화에 녹아들길 바랐다. 지난해 영화사 ‘하드컷’을 설립하며 배우로서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이제훈. 그가 밟아가는 유의미한 과정들은 분명 주목해볼 만하다.

Q. ‘사냥의 시간’의 개봉까지 다사다난한 과정이 있었어요.
이제훈:
2월 말 개봉 예정이었죠. 그에 앞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팬데믹에 처해져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죠. 걱정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저는 영화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봐 주실 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계속 기다렸죠.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동시 공개돼 기뻐요. 과거엔 국내 관객 분들의 이야기만 귀담아들었다면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사냥의 시간’을 어떻게 봤는지 말씀해주셔서 신기하고 즐거워요.

Q. 넷플릭스 공개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와요. 극장에서 개봉됐을 때의 이점과 넷플릭스 개봉 시의 장점이 엇갈리기 때문인 것 같은데, TV화면을 통해 ‘사냥의 시간’을 보니 어떻던가요?
이제훈:
지금 상황에서 넷플릭스 공개는 행운이라 생각해요. 시대가 많이 바뀌는 걸 이 산업군에 있으면서 많이 느끼고 있거든요. 기존의 영화가 2시간 정도의 분량이었다면 이젠 1시간짜리 작품도 영화가 될 수 있고, 10분 혹은 3분짜리 영화도 가능한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그런 과정을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 느껴요. 다양한 세계가 열린 만큼 변화에 발 맞춰 가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더욱 굳건히 하고 있어요.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Q. 국내 반응 외에도 해외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걸로 알아요. 인상적으로 받아들이신 반응이 있다면.
이제훈:
감독님은 미스터리 스릴러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 했는데, 해외 시청자 분들 중에는 가슴 졸이며 봤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감독의 전작 ‘파수꾼’이 드라마적 요소가 부각돼 플래시백(과거회상)과 관계성이 담겼다면, 이번 작품은 직선적인 구조의 미스터리 스릴러여서 재미있게 봐 주신 것 같아요. 한국영화에서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린 것도 고무적으로 봐 주셔서 좋았어요.

Q. ‘사냥의 시간’과 준석 캐릭터의 어떤 면에 끌렸나요?
이제훈:
저는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 시나리오, 감독, 제작자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윤성현 감독과는 전작인 ‘파수꾼’을 찍으면서 영화적 동지로서 많은 걸 공유해 와서, 굳이 뭔가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아는 사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빨리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근거렸어요. 이 사람이 꿈꾸는 이야기 장르를 어떻게 펼쳐내고 거기서 제가 어떻게 투영될지를 기대했죠.

Q. 촬영 때마다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만큼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제훈:
감독은 ‘파수꾼’ 때도 정서적인 압박을 많이 줬어요. 기태가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사람에 대한 나약함을 표현하려 했죠.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제가 나약함과 누군가에 쫓기는 공포감과 두려움, 괴로움을 체험하게 될 거라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돼서 정말 힘들었어요. 학창시절 돈 뜯기기 직전의 두근거림, 수영을 못 하는데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순간, 산을 오르다 균형을 잃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뻔한 아찔한 감정들을 매번 현장에서 느끼려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폐해졌어요. 누군가에 쫓기며 공포에 사로잡힌 순간들을 추운 환경에서 느끼려 했던 점이 괴로웠죠. 다만 현장에 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 감독 덕에 그걸 극복해낸 것 같아요. 속으로는 계속 그만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만큼 지쳤지만,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정과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던 터라 후회하지는 않아요.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Q. 도박장 자물쇠를 총으로 쏘는 장면에서 머뭇거리는 준석과 친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준석은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이제훈:
계획을 하나씩 이행하다 마지막 자물쇠만 쏘면 사람들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으니 두려웠던 거죠. 경비에게 제압당할 가능성도 있으니,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무시무시함이 인물들에 내재돼 있던 것 같아요. 의연하게 극복하기엔 경험이 부족하고 치기어린 인물들이니까. 감독은 그런 미숙한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9년 전 ‘파수꾼’을 찍을 때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윤성현 감독과 관계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9년 만에 감독과 현장에서 만난 소회는 어땠나요?
이제훈:
‘파수꾼’이 없었다면 제 배우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 작품은 제게 중요해요. 배우로서의 태도와 자세를 윤성현 감독이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영화 속 인물이 허구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사실감을 주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걸 윤성현 감독과 작업하며 많이 느꼈어요. 메소드 연기에의 접근법이라는 기본적인 제 베이스를 굳건히 뿌리내리는 데는 윤성현 감독이 주효했거든요. 제가 9년 간 많은 작품을 하며 성장해온 동안 윤성현 감독은 이번 영화가 두 번째 작품인데, 그럼에도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고 느꼈어요. 서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영화 만족도와 매 신에서 도달하고 싶은 목표치가 있어 포기하지도 않았죠. 더 만들어보자는 시너지를 통해 지금의 영화가 탄생한 것 같아서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Q. 윤성현 감독 외에도 박정민까지 함께 하면서 ‘파수꾼’ 멤버들의 재회로 주목 받았어요.
이제훈:
함께 한다는 의미가 컸어요. 분명히 새로운 시도이고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작업에 임했죠. 조성하 선배님도 ‘파수꾼’에서 제 아버지 역할로 나오셨는데 여기선 형님으로 나왔잖아요. 그런 것도 재미있었어요. ‘파수꾼’의 기태와 백희의 연장선상에 놓인 듯한 준석과 상수의 관계도 흥미로웠어요.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Q.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의도치 않았더라도 ‘사냥의 시간’을 ‘파수꾼’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반응이 많아요.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한 만큼 이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해요.
이제훈:
연기 앙상블에 있어 주어진 대사 외에도 애드리브가 많았는데, 그렇게 틀에 갇히지 않고 살아있는 자유로움이 감독이 추구하는 연기적 방식이에요. 상황에 빠져드는 신기한 경험이었죠. 그런 면이 ‘파수꾼’이라는 영화의 연장선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박정민 배우의 장면에선 ‘파수꾼’ 때의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직선적으로 보면 누군가에 쫓기는 심리 스릴러겠지만 은유적 부분에선 ‘한’이라는 존재를 신으로 볼 수도 있고, 세상과 마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계속 회피하고 도망가도 결국 세상에 맞설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냥의 시간’이 우리가 인생을 받아들임에 있어 선택과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후의 선택은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영화적 해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Q.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와요. 
이제훈:
신나게 즐기고 놀다 한 명씩 떠나니 준석으로서는 외로웠을 거예요. 꿈꾸는 유토피아에 도달했지만 결국 나머지 친구들은 불행해지고 준석 자신도 불행해진 거죠. 그러다 다시 돌아가는데, 저는 이걸 사냥감이 됐다가 사냥꾼이 돼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봤어요. 은유적으로는 인생의 선택일 수도 있겠죠. 내 선택으로 오게 된 결과를 받아들일 건지, 회피하고 도망갈 건지를 고르는 거니까요. 두렵고 죽음의 공포가 있지만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게,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Q. 극 중 준석처럼 스스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을까요?
이제훈:
제가 찍은 작품을 많은 분들이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겨주는 순간들이 제겐 유토피아예요.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행복하거든요. 미처 생각 못했던 해석과 못 봤던 부분을 누군가가 일깨워주는 과정들을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그런 것들을 보여드릴 수 있어 즐거워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돈을 정말 많이 벌면 저처럼 꿈을 꾸는 사람들을 모아 시네마테크 같은 극장을 만들고 싶어요.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GV(관객과의 대화) 같은 시간도 갖고, 영화에 빠지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인생에 있어 제일 행복한 것 같거든요. 그런 장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꿈꾸고 있어요.

Q.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이제훈:
저는 배우 일이 정말 좋아요. 부자가 될지 배우로 평생 살지 고르라면 저는 무조건 배우예요. 그렇게 계속 영화를 하고 한 가지에 대한 꿈을 꾸며 살고 싶어요. 돈이 꿈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수단이라 생각하거든요. 영화와 배우로서 꿈을 꾸고 살아가고 싶은 게 저의 희망이자 유토피아예요.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배우 이제훈. 사진. 넷플릭스

Q. 최근에 영화사를 만들었잖아요. 꿈에 대한 실현이자 배우로서 기획과 제작으로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단계 같아요.
이제훈:
배우로서 연기생활을 하다 보니 연기만 잘하는 것을 넘어 더욱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배우를 못 하게 됐을 때 어떻게 살 것 같은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계속 영화만 생각나더라고요. 조명 스태프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촬영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영화 관련된 모든 일이 좋거든요(웃음). 

Q. 그래서 모든 면을 경험할 수 있는 제작에 뛰어든 걸까요. 앞서 언급한 유토피아를 직접 만들어가는 느낌 말이에요.
이제훈:
제작자가 된다면 여러 부분에 대해 디테일을 더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됐어요. 아직은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제가 어떤 결과물을 보여드릴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내려놓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늘 영화에 있어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책임의식을 갖고 배우 이상의 뭔가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그래서 양질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원이 되고 싶어요. 그렇기에 지금의 길을 선택한 만큼, 저의 과정들을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세요. 

김예슬 기자 yeye@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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