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청와대 본관. 제공 : 청와대

# 미리 준비하자는 건 옳다

[김병헌 한국공공PR연구원 대표] 시경(詩經) 빈풍편(豳風篇)은 중국 주(周)나라 태조 무왕(武王)의 동생 주공(周公)이 어린조카 성왕(成王)이 왕위에 오르자 지어 올린 내용이다. 백성들의 생업 영위의 어려움을 알리고 그 방책을 적고 있다. 빈풍편으로 명명된 데는 당시 주나라의 국가명이 빈나라였기 때문이다. 주공은 조선의 세조처럼 어린 조카를 왕위에서 밀어내고 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끝까지 성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중국에선 최고의 정치가로 추앙받는다. 이러한 빈풍편을 그림으로 그린게 빈풍도(豳風圖)다. 당시 백성들이 주업이었던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된 내용을 월령의 형식으로 읊은 빈풍칠월편(豳風七月篇)을 주로 발췌해 그림으로 묘사했다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로도 불린다. 조선에도 빈풍칠월편을 여덟장으로 그린 빈풍도가 전해진다.역대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삶이 고단하고 힘든데 대한 고뇌를 엿볼 수 있고 이에 대비하려는 그들의 심정이 여실히 보여줘 위민정치의 상징으로 꼽힌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지변 수준의 엄청난 재해에 맞닥뜨린 국민들의 삶은 형태나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뿐 고단함의 강도는 비슷할 듯 하다. 빈풍도를 통해 옛날 위정자들의 무거운 책임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 청와대가 노동절인 지난1일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둘러싼 논의에 불시를 붙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제로 들고 나온 것이다.

상두주무(桑土綢繆)란 고사와도 관련이 있다. 새는 폭풍우가 닥치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구멍을 막는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하여 닥쳐 올 재앙을 막는다는 의미다. 고사 역시 시경 빈풍(豳風)편에 연유한다. 사상 초유의 전국민 긴급재난 지원금 지급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180석을 지닌 슈퍼여당이 입법화에 적극 나설 경우 한국 사회는 재난에 대비하는 ‘일자리 복지 체계’를 세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5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당정은 전국민고용보험제의 대상을 '취업자 전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점으로 삼아, 구체적인 제도 설계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포스트 코로나로 인한 다른 경제적 어려움은 접어두고 국민 생업과 관련된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그 파장은 짐작조차 어렵다. 실제 대량 실직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자영업자나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1천만명을 넘는다. 이들에 대한 안전망 확충이 필요성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52만명으로 전체 근로자 2735만명 중 49.4%. 대부분 정규직 같은 이른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다. 나머지 1400만명 중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등 특수직역 연금 가입자들 324만명을 제외하면 1000만명 정도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위기는 혁신을 부른다. 우리도 곧 들이닥칠 고용  충격에 대비해 하루빨리 제도의 성벽을 보수할 타임”이라며 제도 개선 필요성에 거들었다.

# 너무 서둘면 오만으로 비친다

고용안전망 강화는 여느 정부때나 항상 고민해왔다. 이번이 어찌보면 기회이기도 하다. 6월부터 시작되는 21대 국회에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만 가진다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대폭 넓히는 법안도 얼마든지 통과가 가능하다. 고용보험 확대는 사회적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다. 우선 추진될 필요가 있다. 노동계에선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과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1천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적지 않은 관계전문가들도 이번 경제위기를 포함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등은 경제 충격이 왔을 때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경제위기 등 국가 재난으로 으로 문제가 생길 때 해결하려면, 국가 재정이 더 많이 들어간다“면서 ”폭넓은 사회보험 체계를 갖추는 게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64장의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신종여시 즉무패사(慎终如始 則無敗事)’란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거의 완성 단계에서 많이 실패하지만 일을 시작할 때처럼 마무리도 신중하게 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라는 뜻이다.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에도 신종여시(慎终如始)는 언급된다. 일의 마지막도 처음과 같이 신중히 해야한다는 뜻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불을 질러놓고서는 고용보험 전국민 확대를 밀어붙이기보다는 일단 여론을 향배를 보는 듯 하다. 물론 신중한 건 좋다. 최근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서 경험했듯이 특정 정책 이슈를 밀고 나가려면 여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핵심적인 관건은 재정의 여력과 안착을 위한 토양 조성 여부다.

# 지금은 위기 회복에만 전념하자

그래서 소통을 통한 전폭적인 국민 여론이 꼭 성공을 담보하는 전가지보(傳家之寶)가 아닐수 있다는 대목을 지적하고 싶다. 그만큼 고용보험 확대의 현실화에는 기술적인 난관등 여러 어려움이 있다.소득원천징수 체계 등 시스템 손질은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법을 만드는 등 대수술이 필요하다. 또 피보험자가 가입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소득 산정 등의 설계도 녹록치 않다. 청와대가 ‘중장기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수퍼여당과 청와대는 21대 국회 개원과 맞물려 여론전을 본격화하려는 유혹에 기울어지는 듯 보여 걱정이 앞선다.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대학(大學)은 ‘만물에는 근본(本)과 끝(末)이 있고 일에는 마침(終)과 시작(始)이 있다(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며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가릴 줄 알면 도에 가깝다(지소선후 즉근도의/知所先後 則近道矣)’고 말하고 있다.

굳이 대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세상 일에는 앞과 뒤가 있고,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모든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 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할 것인가 하는 선택에서 고민이 생겨난다. 코로나19 방역은 6일부터 생활방역 단계로 접어들면서 성공적인 마무리 수순이다. 고용보험 전국민 확대가 시대적 소명이라고 해도 지금은 선 순위가 아닌 듯 하다. 소통도 좋고 신중한 접근도 좋지만 시급한 일의 순서를 세밀히 파악하고 먼저할 일부터 하나씩 집중해 처리하자. 욕심내면 안된다. 아직은 경제위기 특히 실업대란 방지, 실물경제 회복이 지상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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